"인테리어 업자에게 선금 2000만원 줬는데.." 공사 중 사라진 업자 앞에서 결단했다

나이가 들면 오래 살던 집을 한 번쯤 고쳐 살고 싶어집니다. 삐걱거리는 문짝과 낡은 화장실을 바꾸고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노리는 사람들도 있어, 평생 모은 돈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경기 고양 일산에 사는 이경애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3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했고, 남편과 함께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두 딸은 모두 결혼해 서울에서 살림을 꾸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창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고, 화장실 타일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습니다. 올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남은 인생 살 집인데 제대로 한번 고쳐 봅시다." 부부는 퇴직금 일부로 집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아파트 우편함에 인테리어 업체 전단지가 꽂혀 있었습니다. '같은 단지 시공 다수, 상담 무료.' 경애 씨가 전화를 걸자 다음 날 깔끔한 차림의 업체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집 안을 둘러보며 막힘없이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사모님, 이 평수면 4,500만 원이면 새집처럼 만들어 드립니다. 이번 달에 계약하시면 자재를 미리 싸게 잡을 수 있어서 500만 원 빼 드릴게요. 대신 자재비로 선금을 좀 넉넉히 주셔야 합니다." 그가 말한 선금은 2,000만 원이었습니다.

경애 씨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절반 가까운 돈을 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대표는 휴대전화 속 사진을 넘기며 말했습니다. "이 단지 몇 동 몇 호도 제가 했습니다. 다들 만족하세요." 남편도 "사람 좋아 보이는데 합시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만 경애 씨에게는 30년 교사 생활에서 몸에 밴 습관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경애 씨는 계약서를 한 줄 한 줄 읽고, 공사 일정과 지급 조건을 꼼꼼히 적어 넣게 했습니다. 대표의 사업자등록증과 신분증도 사진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선금은 반드시 업체 명의 계좌로 보냈고, 대표와 나눈 대화는 문자로 다시 한 번 확인받았습니다. 대표는 "사모님 정말 꼼꼼하시네요" 하며 웃었지만, 경애 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 기록부를 쓰던 버릇 그대로였습니다.

공사가 시작되자 경애 씨 부부는 서울 딸네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경애 씨는 매일 아침 아파트에 들러 공사 현장 사진을 찍고 공책에 작업 내용을 적었습니다. '첫날 주방 철거, 둘째 날 화장실 타일 철거, 작업자 네 명.'

그런데 공사 열흘째 되던 날, 현장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철거만 끝난 집 안에는 뜯겨 나간 싱크대와 깨진 타일 조각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경애 씨는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실이라고 알려 준 주소에 찾아가 보니 빈 상가였습니다. 경애 씨는 뼈대만 남은 집 한가운데 서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퇴직금으로 낸 2,000만 원이 철거된 벽과 함께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아랫집에서는 먼지와 소음 때문에 항의가 들어왔고, 관리사무소에서는 공사를 마무리하라는 공문이 붙었습니다. 남편은 밤마다 한숨을 쉬며 "내가 사람을 잘못 봤소" 하고 자책했습니다. 경애 씨도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큰딸이 달려와 엄마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엄마, 왜 우리한테 미리 말 안 했어요. 선금을 그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요." 경애 씨는 고개를 숙였지만, 이내 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실수했다. 그래도 엄마가 기록해 둔 게 있으니 그냥 당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며칠 뒤 관리사무소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같은 단지에서 똑같은 업자에게 선금을 떼인 집이 세 집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창피해서 쉬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애 씨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울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옵니다. 같이 움직이면 길이 있을 거예요." 경애 씨는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피해 가구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공책 한 권과 출력한 사진 묶음을 꺼냈습니다.

공책에는 계약 날짜와 선금 송금 내역, 대표가 보낸 문자, 공사 열흘 동안의 작업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은 계약서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애 씨의 기록은 네 집 모두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피해 가구들은 경애 씨의 기록을 들고 함께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경애 씨는 사업자등록증 사진으로 업체의 다른 주소를 찾아냈고, 그 주소로 내용증명도 보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정리한 공책을 들고 다니며 "우리 집사람이 30년 선생님이었소" 하고 경찰관에게 설명했습니다.

두 달 뒤,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표가 이름만 바꾼 새 업체로 파주의 다른 아파트에서 같은 수법으로 계약을 받다가 붙잡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받아 간 선금은 확인된 것만 1억 원이 넘었습니다.

담당 경찰관은 경애 씨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어머님이 정리해 주신 공책 덕분에 수사가 빨랐습니다. 날짜별로 송금 내역과 문자가 정리돼 있어서 같은 수법이라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경애 씨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공책을 쓰다듬었습니다.

대표는 처벌을 줄이려고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요청했습니다. 경애 씨는 대표 앞에서 공책을 펼쳐 보이며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합의는 해 드리겠습니다. 단, 우리 네 집 선금은 한 푼도 빠짐없이 돌려주셔야 합니다. 날짜와 금액은 여기 다 적혀 있습니다."

대표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몇 달에 걸쳐 피해 가구들에 선금을 돌려주었습니다. 경애 씨도 2,000만 원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다른 피해자들은 경애 씨의 손을 잡고 "선생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다 포기했을 거예요" 하며 고마워했습니다.

경애 씨는 이번에는 동네에서 20년 넘게 가게를 해 온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찾았습니다. 계약서에는 공정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확인하고 돈을 내는 조건을 넣었습니다. 선금은 공사비의 10분의 1만 냈습니다. 새 업체 사장은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하며 오히려 반가워했습니다.

그해 늦가을, 경애 씨 부부는 새로 고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 창문 덕분에 찬바람이 들지 않았고, 화장실에는 미끄럼 방지 타일과 손잡이가 놓였습니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집은 당신 공책 한 권이 지은 집이오."

이삿짐을 다 정리한 날 저녁, 부부는 아파트 앞 오래된 김치찜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푹 익은 묵은지에 돼지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김치찜 한 냄비가 상 위에 놓였습니다. 남편이 고기를 찢어 아내 밥 위에 얹어 주며 말했습니다. "고생 많았소, 선생님." 경애 씨는 웃으며 남편 그릇에 김치를 한 줄 더 얹어 주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스스로 왕과 공작이라 부르는 두 사기꾼이 그럴듯한 말로 마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다 결국 정체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콤한 말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확인하는 사람만이 속지 않습니다.

집수리처럼 큰돈이 드는 일일수록 선금은 적게, 계약서는 꼼꼼하게 챙겨야 합니다. 업체 주소와 사업자등록을 직접 확인하고, 공정이 끝날 때마다 나누어 지급하세요. 그리고 오가는 말과 돈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두세요. 그 기록이 내 노후 자금을 지킵니다.

올가을 경애 씨는 남편과 함께 일산 호수공원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호숫가 버드나무 사이로 붉은 노을이 번졌고, 잔잔한 물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벤치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허클베리 핀의 모험'

Copyright © 책뭉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