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갈비뼈 어긋난 채로 업무복귀…‘치료기간 깎기’ 18%→22%
“처음 제대로 치료했으면 만성이 안 됐을 건데 너무 속상하지. 그랬으면 뼈가 잘 붙어서 나았을 거예요. 근데 (치료를) 하다 말다 하니까 영원히 안 붙은 형태가 돼 버렸죠. 진통제 없이 못 잘 정도로 아픈데 이대로 평생 살아야 된다는 게….”
현대중공업에서 용접 일을 하는 유연종씨는 2023년 11월14일 공장 안 시설물에 부딪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뼛조각이 폐를 찔러 구멍도 생겼다. 병원 진단명은 ‘다발성 늑골 골절’과 ‘외상성 기흉’. 근로복지공단은 3개월하고도 2주를 산재 승인(요양급여 지급)했다.
회복은 더뎠다. 뼈가 붙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고통도 심했다. 유씨가 3개월 추가 연장을 신청했으나 공단은 ‘1개월 연장 후 치료 종결하라’고 통지했다. 유씨를 직접 진료한 주치의보다 서류만 보는 공단 자문의사의 행정적 영향력이 더 컸다. 다른 도리가 없던 그는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조심하면 되겠지”하고 공장으로 돌아갔다.
퐁당퐁당 치료는 한계가 뚜렷했다. 몸을 웅크리고 작업하니 뼈가 눌리고 통증이 심해졌다. 2024년 5월22일 결국 개인 휴직을 내고 병원에 갔더니 ‘뼈가 더는 붙지 않는다’는 진단이 나왔다. 당사자와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의 강력 항의로 근로복지공단이 뒤늦게 9주 요양연기를 결정했지만, 한 번 어긋난 뼈는 다시 붙일 수 없었다.
사고 진료계획 승인율 82.4%→76.9%
2023년 11월 정부가 일하다 병들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나일롱 환자’로 낙인 찍은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치료기간 깎기’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와 질병을 가리지 않았다.
2024년 10월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최근 3개년 업무상사고 및 출퇴근 재해 진료계획서 승인 현황을 보면, 업무상사고 진료계획서 승인율(주치의 진료기간이 그대로 인정된 비율)은 2022년 82.4%, 2023년 80.6%에서 2024년 8월 76.9%로 대폭 떨어졌다. 같은 기간 출퇴근 재해도 80.8%→79.6%→75.7%로, 2024년 들어 수직 하락했다. 1~8월 합산치긴 하나, 현재 흐름대로라면 2024년 진료계획서 승인율은 처음으로 80%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진료계획서란 산재로 요양 중인 피해자가 치료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때 의사를 통해 제출하는 계획서다.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보고 치료할 기간과 방법 등을 적어내면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가 적정성을 심의해 인정 여부를 정한다. 환자를 직접 보고 내린 주치의의 판단을 자문의가 서류만 보고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구조다.
부분승인율(주치의 치료기간보다 적게 인정한 비율)이 불승인율(주치의 치료기간을 아예 인정 안 한 비율)보다 높았다. 2022년 17.0%에서 2023년 18.7%로, 2024년 22.4%로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같은 기간 불승인율은 2022~2023년 0.7%에서 2024년 0.8%로 소폭 올랐다.
‘고정 수입 보장’에 공단 눈치 보는 주치의
질병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문종필씨는 30년 간 조선업 취부(용접 전 재료를 고정하는 일) 일을 하다 어깨와 목에 근골격계 질환이 왔다. 2024년 4월 요양 3개월을 인정받고 치료를 시작했으나 좌우 어깨 파열로 양쪽 다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치의가 재차 3개월을 연장하겠다는 계획서를 내자 공단은 ‘1개월만 연장하고 치료를 끝내라’고 통보했다. 결국 문씨는 왼쪽 어깨 수술 후 5개월 만에 오른쪽 어깨까지 수술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왼쪽 수술 후) 지금도 화장실 가기 힘들 정도로 아프거든요. 팔이 위로 잘 올라가지도 않고요. 그런데도 의사가 공단 통보를 받자마자 환자 상태를 거의 보지도 않고 막바로 (오른쪽 어깨 수술) 날짜 잡아버리더라고요. 저희가 치료 받는 데가 다 공단 지정 병원이니까, 환자 상태보다 공단 지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더라고요. 그게 진짜 억울하고 화가 났죠.”
산재보상보험법상 노동자의 산재 보상은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다. 병원 입장에선 지정을 받으면 일정 규모 이상 환자 수가 늘 보장되는 셈이다. 경제적 종속 구조로 인해 주치의가 공단 통보를 가급적 거스르지 않으려는 이유다.
최근 3년 간 업무상질병의 진료계획서 승인율은 2022년 83.9%, 2023년 82.0%에서 2024년(1~8월) 75.4%로 올들어 대폭 낮아졌다. 반면 진료계획서 기간 일부를 감축해 승인한 ‘부분승인율’은 2022년 15.3%, 2023년 17.2%이다가 2024년 23.5%로 훌쩍 올랐다. 불승인율도 2022년과 2023년은 0.7%이다가 2024년 1%로 올랐다.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크게 줄었고(2022년 81.3%→2024년 70.7%), 뇌심혈관계 질환(83.0%→78.4%)과 정신질환(74.6%→70.7%)도 낮아졌다. 이전보다 소폭 는 것은 직업성 암(84.5%→87%) 뿐이다.
재해 당한 것도 서러운데 ‘깎기’ 합당한가
산재카르텔 논란은 2023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처음 불거졌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환자·공단병원·근로복지공단 간 유착관계가 있다며, 꾀병과 금전적 이익으로 산재보험을 악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노동부가 3개월에 걸쳐 특정감사를 실시한 결과 브로커의 일부 수수료 착복 사례가 확인됐을 뿐, 3자 카르텔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정부가 ‘장기요양환자가 많다’는 인식을 2024년 2월 공개적으로 드러낸 뒤, 공단이 개개인 상태도 고려 않고 요양기간을 마구 잘라내고 있다. 재해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큰 노동자에게 충분한 치료기회를 주긴커녕 일터로 내몰고 ‘꾀병 환자’ 편견까지 덧씌우는 게 과연 정부 역할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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