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반도체의 시작과 성장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은 1979년 대한전선 계열사인 대한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업 확장은 1989년 고(故) 구본무 LG 회장이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LG반도체는 경북 구미와 충북 청주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1990년 1메가 D램, 1991년 4메가 D램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95년 그룹명이 럭키금성에서 LG로 변경되면서 금성일렉트론도 LG반도체로 사명을 바꾸었다.
LG반도체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1995년 순이익이 9000억원에 달했고, D램 시장에서 세계 6위까지 올라섰다. 당시 구본준 고문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LG반도체에서 전무,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IMF 외환위기와 빅딜의 소용돌이
LG반도체의 승승장구는 1997년 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급격히 꺾이게 된다. 김대중 정부는 재벌 그룹들의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빅딜'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추진했다.
1998년 7월, 정부는 '5대그룹 7대 업종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반도체 업종에서는 세계 4위 현대전자와 6위 LG반도체의 통합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두 그룹 모두 미래의 먹거리인 반도체 사업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8년 12월 24일, 컨설팅 회사 아서D리틀이 "현대전자가 통합주체로 적합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LG그룹의 반발과 최후의 결단
LG그룹은 이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구본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면 LG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다. 1999년 1월 6일, LG반도체 강제 매각이 결정된 후 구본무 회장이 통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결국 LG는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1999년 4월 6일, 구본무 회장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30분간의 독대 끝에 LG반도체의 지분 100%를 현대에 넘기고 경영권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구본무 회장은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 기왕 포기하는 거 지분 전체를 현대에 넘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자로의 흡수와 그 후
1999년 5월 20일,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지분 59%를 2조 5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통합된 현대전자는 세계 최대의 D램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1999년 기준으로 연간 6억 2000만 개의 64M D램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합병은 양사에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LG반도체 인수 전 현대전자의 자체 부채 규모는 9조 3000억원이었다. 여기에 LG반도체 인수 비용이 더해지면서 회사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현대전자는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
LG그룹의 반도체 사업 재도전과 현재
반도체 사업 포기 이후 LG그룹은 디스플레이 사업에 주력했다. 반도체에 대한 상실감은 디스플레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로 이어졌고, 과감한 투자로 LG디스플레이는 10년 이상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LG그룹은 반도체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LG전자는 TV, 가전제품용 반도체를 꾸준히 개발해 자사 제품에 적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칩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LG그룹이 반도체 사업을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LG반도체의 교훈
LG반도체의 흥망성쇠는 한국 재벌 구조조정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정부 주도의 강제적인 구조조정이 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이는 기업이 핵심 사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준다. LG그룹이 반도체 사업 포기 이후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