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나온 흡혈귀의 화려한 부활, 미학적 성취가 뚜렷한 공포영화

▲ 영화 <노스페라투> ⓒ 유니버설 픽쳐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 리뷰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가 100년 전 독일 고전 공포영화의 피를 빨아 현대적으로 부활했다.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피를 수혈한 이 작품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섬뜩한 매력을 품고 있다.

1830년대 초반, 어린 소녀 '엘렌'(릴리 로즈 멜로디 뎁)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초자연적 존재를 향한 위험한 기도를 올린다.

'엘렌'의 부름에 응답한 것은 영원한 어둠의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1838년, 이제는 '토마스 후터'(니콜라스 홀트)와 결혼한 '엘렌'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남편 '토마스'가 부동산 거래를 위해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의 성으로 떠나면서 '엘렌'의 악몽이 다시 시작된다.

'토마스'는 트란실바니아에서 기괴한 백작을 만나고, '엘렌'은 점차 심해지는 발작과 환영에 시달린다.

'올록 백작'이 도시로 몰고 온 쥐 떼와 함께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고, '엘렌'은 자신과 '올록 백작' 사이의 오래된 연결고리를 마주해야만 한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1922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노스페라투>를 재해석하면서 원작의 본질적 공포는 유지하되,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에거스 감독은 "뱀파이어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죽음조차 지울 수 없는 어둠의 트라우마"라고 말하며, 섹시한 흡혈귀가 아닌 민속 신화 속 공포스러운 존재로서의 뱀파이어를 그려내고자 했다.

<노스페라투>의 강점은 단연 시각적 완성도다.

흑백과 컬러의 경계를 오가는 회화적 구도, 움직이는 그림자를 활용한 섬뜩한 연출, 고딕 건축물과 어우러진 미장센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촬영 과정에서도 자린 블리슈크 촬영감독은 35mm 필름과 특수 렌즈를 사용해 19세기 낭만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비주얼을 구현했으며, 실제 촛불을 사용한 자연광 촬영으로 창백한 달빛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음악적 성취도 주목할 만하다.

로빈 칼로안 음악감독은 60명의 현악 연주자, 풀 합창단, 다양한 금관악기와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참여한 방대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단순한 공포 영화의 배경음악을 넘어 멜랑콜리한 비극성과 왜곡된 로맨스를 담아내고자 했다는 의도는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고대의 희귀한 관악기와 피리를 활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사운드는 영화에 신비로운 질감을 더한다.

제작진은 시각적 리얼리티 구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5,000마리의 훈련된 쥐를 실제로 사용해 전염병의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했으며, 트란실바니아의 코르빈 성 등 실제 로케이션에서의 촬영을 통해 진정성 있는 고딕 분위기를 담아냈다.

183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의상 디자이너 린다 뮤어는 리젠시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 사이 과도기의 복식을 정교하게 재현했다.

60개의 세트장을 설계한 미술팀의 노력은 단순한 영화 세트가 아닌 실제 19세기 공간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또한, '올록 백작' 역의 빌 스카스가드는 하루 6시간의 분장 과정을 거치며 그로테스크한 존재감을 완성했고, 목소리 연기를 위해 '몽골 목노래'까지 도입하는 헌신을 보여줬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 각색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엘렌'이라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1922년 원작에서 '엘렌'이 타인에게 구원받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이번 버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인물로 재해석됐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에게 강요된 순결과 희생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나, '엘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능적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가 된다.

'엘렌'의 악몽과 환영이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억압된 여성의 욕망이 발현되는 통로로 그려지는 점은 흥미롭다.

이성적 통제와 사회적 규범으로 억눌린 여성의 본능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표출되는 과정은 19세기 여성 히스테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엘렌'을 맡은 릴리 로즈 멜로디 뎁의 열연도 돋보이는데, 억압된 욕망과 공포 사이에서 흔들리는 '엘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빙의 장면에서 보여주는 신체적 연기는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1992년)와 비교하면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드라큘라>가 가진 농밀한 로맨스와 매혹적인 감성은 이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인물들 간의 감정선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며,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단조로워지는 전개와 예측할 수 있는 결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퀘어'를 제외한다면, 13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이다.

결국, <노스페라투>는 고전적 공포영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답안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레퍼런스 작품이 등장해, 내러티브 면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시각적 연출과 예술성만큼은 올해 최고의 공포영화로 손꼽을 만하다.

고전 공포영화나 미학적 호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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