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역사상 첫 공산당의 정당을 만든 사람입니다.
첫 공산당을 만들었다고 하면
당연히 남성을 떠오르시겠지만
여성이었습니다.

바로 김알렉산드리아죠.
그녀의 풀네임은
김알렉산드라 페트르브나 스탄케비치.
이국적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김알렉산드라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알렉산드라가 태어나기도 전
함경도 사람이시던 그녀의 부친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남단의 한인촌으로 넘어왔고
이때 김알렉산드라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이른 나이에 여읜 김알렉산드라는
아버지의 러시아인 친구였던
표트르 스탄케비치에게 입양되어
그의 재정적 지원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0대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의 아들과 혼인하여 슬하에
2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김알렉산드라는 소학교의 교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수한 외국어 실력 덕분에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우랄지방에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한인노동자들을 목격하고는
우수한 언어실력을 바탕으로
심지어 중국인노동자들까지
그들의 소송문제를
직접 처리해주었습니다.

소송 해결 후 김알렉산드라가
우랄노동자동맹까지 만들자
그녀의 명성은 금세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를 입당시킨 후
러시아 원동지역 한인사회에 대한
당의 선전작업을 맡겼습니다.

이로써 김알렉산드라는 한국인 중
최초로 공산당에 가입한 인물이 되었죠.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김알렉산드라는
본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내 한인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레닌이 김알렉산드라를
무척 신임했다죠.

1918년 일제의 만주 진출 야욕을 파악한 김알렉산드라는
볼셰비키의 지원 하에
러시아 한인들을 규합해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조선인정치망명자회의’를 조직했고

또 1918년 5월 김알렉산드라는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공산당 한인사회당을 조직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러시아는
백군과 적군의 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볼셰비키당(적군)에서 적극적으로
한인사회당의 적위대를 협력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 내 백군과 연합해
한인사회당의 적위대를 궤멸시켰습니다.
이때 몇 명은 도망에 성공했고,
일부는 체포되었는데
김알렉산드라는 체포되어
1918년 9월 총살되었죠.

사형집행 전 김알렉산드라는
여덟 걸음만 걷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집행인이 숫자 8의 의미를 묻자
김알렉산드라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연해주의 차가운 땅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 조선에 살고 있는 인민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김알렉산드리아 사후
한인사회당은 와해되었지만
그녀의 제자 겸 동료들이었던
김철훈, 오하묵, 이동휘 등이
고려공산당을 창당해 공산당의 계보를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