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슈트’ 입고 큰 숨 고른 뒤 얼음 같은 바닷속으로 첨벙!

한겨레 2024. 10.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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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남극 다이빙 직관기
푸른 빙하를 배경으로 남극해 생물을 채집하러 나선 연안생태팀 연구원들. 극지연구소 제공

연안생태팀과 아들리섬 동행
잠수 경력 500회도 방심은 금물
숨죽이며 지켜본 물결과 햇살
심해잠수 걱정될 쯤 눈부신 부상

조디악이 천천히 선착장 밑으로 접근했다.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유빙들이 떠 있는 지하 공간이 보였다. 타고 내리는 데만 신경을 바짝 쓰던 나는 어느덧 선착장 아래까지 살피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선착장은 바닷속으로 우뚝 박힌 기둥과 횡으로 가로지른 철제 파이프가 지지하는 구조였다. 기지 역사만큼이나 검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자, 받아주세요!”

오늘의 ‘노랭이’ 역할을 맡은 기상청장이 밧줄을 위로 던졌다. 조디악을 운행할 때는 기지 대원들이 주황과 노란색 방수복을 각각 입고 동승하는데, 노란 방수복의 대원을 노랭이라고 부른다. 노랭이는 목적지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뛰어내려 보트를 안전하게 해변으로 밀고 가고 위험 상황에서의 응급 구조를 맡는다. 보트를 고정할 밧줄을 던지는 일도 노랭이의 몫이었다. 그러면 선착장에서 누군가가 받아 말뚝에 맸다. 오늘은 기지 총무가 직접 나와 있었다. 첫번에 밧줄을 잡지 못하자 “그것도 몬 잡으면 우짭니까?” 하고 진해 출신의 칼 대원이 고향 말을 써가며 놀렸다. 총무는 웃었고 기상청장이 두번째로 던졌을 때 잘 잡아챘다. 조디악이 무사히 서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데 “작가님, 어디 가세요?” 하며 칼 대원이 이번에는 나를 불렀다. 다시 출동해야 하니 그대로 보트에 있으라고 권했다. “연안생태팀이랑 나가기 전에 해둘 일이 있어서요.” 나는 변명하며 계속 사다리를 올랐다.

“작가님, 우리 고래 나오는 곳까지 갈 건데 남극 와서 고래를 못 보면 기사가 재미가 없잖아요.” 고래가 나오는 곳으로 간다고, 고래…. 하지만 나는 백두봉 등반을 유도하던 월동 천사의 구슬림을 떠올리며 사양했다. 확실한 고생길이 예상됐다. “작가님, 정말 안 가실 거예요?” 칼 대원이 다시 불렀지만 “2시에 뵈어요!” 하며 줄행랑쳤다.

다이빙 전 몸 덥히려 탁구

조디악 가장 앞에 앉아 임무를 수행하는 ‘노랭이’ 대원. 김금희 제공

오전은 메모와 이메일을 정리하며 보냈다. 드라이랩에는 나 혼자였다. 포르투갈팀 멤버인 클라우디우, 구름씨 책상에는 남북의 모든 극지를 함께 누빈다는 인형이 소중히 놓여 있었다. 그에게 그 작은 펭귄 친구가 수호천사라면 내게는 푸바오가 있었다. 러기지태그와 키링, 포토카드, 파일 홀더로 현현된 귀여운 얼굴이 남극 일정을 함께했다. 푸바오를 생각하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곧 중국 길에 오를 것이 떠오르고 자연스럽게 사흘 뒤 방문하게 될 중국 장성(창청)기지가 궁금해졌다. 기지 건설 40주년을 맞아 중국 쪽에서 세종기지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장성기지는 칠레, 러시아 기지와 함께 킹조지섬의 필즈반도에 있었다.

점심으로 나온 묵밥을 맛있게 먹고 시간 맞춰 탈의실로 갔다. 방수복을 입을 생각이었는데 옆새우를 전공한 안 연구원이 세종 1호를 타고 가니까 구명조끼만 착용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안 연구원도 연안생태팀을 도우려 동승한다고 했다. 그동안 선박은 한번도 타보지 못했던 터라 신이 났다. 선착장으로 달려가니 양과 고 연구원이 장비를 옮기고 있었다. 사실 나는 두 사람을 (좋은 의미로) 매우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최근 몇년간 만난 사람 중 가장 ‘웃긴’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만담에 가까운 그들의 대화를 그대로 녹취해 옮기기만 해도 재밌는 소설이 나오리라 상상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늘 농담을 주고받으며 드라이랩과 이어진 복도에서 탁구를 쳤다. 그러면 나는 괜히 나가 탁구대 근처에서 공을 주웠고 그들의 유머를 엿들으며 같이 웃었다.

“작가님 하지 마세요. 저희가 나중에 치울게요” 하고 말리면 “저 나름대로 지금 운동 중입니다” 하고 변명했다. 그물망으로 된 수거기에 탁구공을 주워 올리다 보면 흰머리를 쏙쏙 뽑는 듯한 쾌감이 일기도 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탁구를 치는 건 다이빙 전후에 몸을 데우기 위해서였다. 탁구 마니아들인가 했더니 그런 깊은 뜻이 들어 있었다.

공기탱크·발열장비·중량추·랜턴…

응급대원 ‘파이어맨’(별명)이 배 지붕에서 수면 위를 살피며 잠수한 연구원들의 위치를 좇고 있다. 김금희 제공

이윽고 짐이 모두 실리고 우리도 세종 1호에 올랐다. 최대 25노트 속도로 달리는 10인승 소형 선박은 조디악과는 차원이 달랐다. 텐트에서 콘도로 옮겨 간 기분이랄까. 지붕이 있는가 없는가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 실감했다. 양과 고 연구원은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섭씨 0도 남극해로 뛰어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도 미안했다. 보통 사람들은 손가락도 못 넣을 바닷물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하다니, 얼마나 긴장될까. 고 연구원은 잠수 경력이 500회 이상이지만 횟수가 언제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윽고 칼 대원이 시동을 걸었고 목적지인 아들리섬으로 향했다. 하계 응급대원인 ‘파이어맨’도 조수로 타 있었다.

그의 별명이 파이어맨인 건 말 그대로 소방관이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그는 발령을 기다리는 3개월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계 지원대에 지원해 남극으로 왔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청년이 다 있나 싶었고 마주 보며 대화한 뒤에는 이렇게 말간 얼굴도 있구나 싶었으며 나중에는 인성마저 갖췄구나 하고 감탄했다. 언제든 다른 사람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이 소방관이라는 어렵고도 숭고한 길을 가는지 궁금했는데 그 표본이 눈앞에 있었다. 환한 빛을 닮은 얼굴이었다.

양과 고 연구원은 다양한 장비들을 꺼내 하나씩 착용했다. 공기탱크와 연결할 각종 호스와, 체온 유지를 위한 배터리 및 발열 부품, 슈트 팽창 밸브와 납으로 된 중량추, 여러개의 포획 주머니와 수중 생태 촬영을 위한 고프로, 랜턴 등등을 주렁주렁 달았다. 퉁퉁 부은 손처럼 생긴 방수장갑과 날렵한 모양의 오리발도 준비되어 있었다. 문득 양은 고 연구원이 최근에야 ‘난방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 전에는요?” 나는 놀랐다.

“일반 잠수복으로 수온을 감당한 거죠.”

하지만 지금의 난방 슈트 역시 몸을 데워준다기보다는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난방’ 하면 떠올리는 그런 온기가 전혀 아니었다.

“뺨은 슈트를 입어도 바닷물에 그대로 노출되잖아요. 물살이 일면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듯해요. 체온이 낮아지면 근육이 약해져서 움직임이 어렵기도 하고요.” 고 연구원은 웃으며 말하다 이번에 내려가서는 모래를 걷어차 시야를 흐려놓지 말라며 양 박사를 놀렸다.

기후변화에 내몰리는 아델리펭귄

그사이 칼 대원은 파이어맨에게 선박 운전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지나온 물길을 잘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엔진 쪽을 바라보니 새 떼의 날갯짓처럼 흰 물살들이 양 갈래로 풍성하게 일고 있었다. 30분쯤 달리자 아들리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바위 언덕이 길게 이어진 화산섬이었다. 이곳은 ‘펭수’ 캐릭터의 모델이기도 한 아델리펭귄 서식지로 유명했다. 펭귄 하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눈동자가 검고 동그란 이 펭귄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는 주변의 흰털 때문에 눈이 또렷해 보이는 거였다. 이 섬에는 30만쌍 가까운 아델리펭귄이 살고 있는데 세종기지가 자리한 바턴반도에서는 왜 아델리펭귄을 통 볼 수 없을까 궁금했다. 젠투, 턱끈펭귄과의 경쟁에서 밀려났을까. 아델리펭귄은 다른 두 종과 달리 얼음 위에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는데 어쩌면 그래서 좀 더 남쪽에 위치한 섬을 주 서식지로 삼았는지도 몰랐다. 물론 종에 상관없이 지금 남극의 펭귄들은 기후변화의 위협을 동일하게 겪고 있지만 말이다.

아델리펭귄은 과거에 비해 80퍼센트 줄었고 2100년이면 황제펭귄이 멸종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과학자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러면 우리 세대가 황제펭귄의 마지막 목격자들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눈 주변에 아름다운 황금 무늬를 지닌 사람 키만 한 펭귄도 있었지 하며 기억을 더듬을지도 몰랐다. 서로 어깨를 겯고 허들링(huddling) 하며 영하 60도의 추위를 견디던 용감한 펭귄들이었지 하고. 17세기 대항해시대의 결과로 지구상에서 사라진 도도새처럼. 슬픈 일이었다.

수면 위 공기 방울로 위치 좇고

잠수를 앞두고 촬영 장비를 챙기고 있는 두 대원. 김금희 제공

“어, 이거 왜 이러지?”

칼 대원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박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파이어맨이 선미를 살피고 돌아와 배터리 문제 같다고 전했다. 갑판에 나가 있던 고 연구원이 자기 스마트폰에 좌표가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안이 스마트폰을 보며 도분초로 표시된 잠수 위치를 불러주었다. 칼 대원은 휴대용 자기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어디로 진행하실 겁니까?” 잠수한 뒤 수중에서 어떻게 움직일 계획이냐는 질문이었다. 고 대원이 방향을 손으로 죽 가리키자 칼 대원은 배 위에서 망을 보고 있겠다고 답했다. 물범이나 고래, 유빙, 혹은 다른 나라 조디악과 선박이 접근하는지 살피고 두 사람의 동선을 주시하는 것이 지상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양이 크게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입수 전 가장 편안하게 쉬어보는 숨일 듯했다. 하선 발판이 내려가기 직전 고 연구원도 긴장을 풀며 숨을 몰아쉬었다. 손목에 찬 다이버 시계(수중 방향 시계)도 확인하고 양 박사와 대화하며 동선을 맞춘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둘은 작은 갯바위로 헤엄쳐 가 서로 마주 보다가 잠수했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갑판에서 계속 바다를 주시했다. 파이어맨은 지붕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고 안 연구원은 가장 앞에 서서 살폈다.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는 두 사람의 위치를 척척 잘 잡아냈다. “저쪽에 있네요, 지금은 옆으로 옮겼네요” 하며 가리키는 쪽을 얼른 좇으면 푸른 남극해만 일렁일 뿐이었다. “저기…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제 눈엔 그냥 다 똑같아서요.” 궁금해서 묻자 안 연구원은 수면 위로 공기 방울이 나온다고 답했다. 이제 보니 그는 옆새우뿐 아니라 바다의 아주 미세한 변화도 잡아내는 진정한 능력자였다.

두 사람이 잠수해 있는 동안 우리는 내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거의 오가지 않는 아주 고요한 주시였다. 아들리섬 근처에는 암초가 많아 선박을 운행하거나 잠수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칼 대원이 말했다. 그 순간만은 여기가 남극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지금 우리와 한 팀인 사람들이 얼음 바다에 들어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지상의 눈이 되어 사방을 지켜보고 있다. 푸릇푸릇한 여름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아들리섬의 식물들과 선박까지 들릴 정도로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수만마리의 아델리펭귄이 보였다. 수면을 스치듯 비행하는 남극제비들과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투명하고 맑은 햇살.

최대 수심 30m까지 잠수

구름 박사의 ‘수호천사’ 펭귄 인형이 책상에 놓여 있다. 김금희 제공

그때 칠레 기지 쪽 바다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이 눈에 띄었다. 남극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배가 드나들었다. 남극 여행을 위해 어느 개인이 몰고 온 값비싼 요트, 관광객들이 탄 대형 유람선과 조디악. 며칠 전 세종회관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메이데이, 메이데이” 하며 조난 신호가 무전기로 들어오기도 했다. 식당 무전기는 기지 대원들 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타 기지나 배들과의 무전 교신을 내내 전했다. 24시간 동안 켜 있는 상태였다. 이곳은 남극,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원들이 나가 보니 요트가 한척 있었고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너희 기지에 내려도 되겠니? 하고만 물었다고 들었다. 물론 상륙은 허락되지 않았다. 남극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남극해로 들어올 수 있지만 세종기지 땅을 밟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때 선박 무전기를 통해 식생팀 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약간 지친 듯한 엠 박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쪽은 잘 돌아왔으니 됐다 싶었다.

“안 보이는데….” 칼 대원이 중얼거리며 높은 곳으로 한발 올라갔다.

“저도요.” 안 연구원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까 슬며시 걱정이 들었다. 최대 수심 30미터까지 들어가기도 하니 이제는 공기 방울로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물결에 드리워지는 음영들이 죄다 양과 고 연구원의 그림자처럼 느껴졌고 파도가 만드는 포말들이 오리발을 쳐서 올라오는 신호처럼 착각되기도 했다. “저기 있다!” 칼 대원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더니 돌고래처럼 멋지게 물 위로 튀어 오른 펭귄이었다.

“아… 낚였네.”

칼 대원은 오늘따라 펭귄 녀석들이 왜 이렇게 활발하냐고 푸념했다. 그 뒤로 20분쯤 흘렀을까, “저기 나와요!” 하는 안의 외침과 함께 양과 고 연구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쓴 헤드라이트가 한낮의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났다.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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