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신라면, 일본 '매운 라면' 기준 됐다
일본 소매점서 쉽게 접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아
내년 '신라면 40주년', 일본 법인 매출 200억엔 목표
최근 해외에서는 '한국 인스턴트 라면'이 대세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인 일본에서도 한국 라면이 불티나게 팔린다. 한인 타운이 형성된 신오쿠보의 한인 마트에는 한국 라면을 비롯한 한국 식품을 구하려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크게 늘었다. 주요 마트에는 한국 라면 제품만 모아 놓은 코너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꼭 한인 타운이나 한국 제품 코너를 찾지 않아도 일본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 제품이 있다. 대형마트, 슈퍼, 편의점 등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제품, 바로 농심의 '신라면'이다.
신라면은 일본의 '매운 라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라면 시장은 맵지 않은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신라면이 본격적으로 판매망을 넓히면서 매운 라면 시장이 형성됐다. 일본에서 매운 라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이 신라면이나 다름 없다. 덕분에 일본 현지에서 신라면은 '매운 라면의 기준'으로 불린다.
농심 신라면 일본 팝업스토어가 한창이던 지난 10일 오후 정영일 농심재팬 마케팅부문 겸 특수영업부문 부장과 도쿄에서 만나 신라면의 일본 사업 현황에 대해 들었다.
매운 라면 시장 개척
농심은 1981년 도쿄사무소를 세우고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신라면은 농심의 일본 진출 초기부터 일본 공략의 선봉장에 선 제품이다. 신라면은 개발된 해인 1986년부터 일본 내에서 재일교포와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비공식적으로 유통됐다. 이후 농심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망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2002년 1월 일본 현지법인인 농심재팬을 설립했다. 이때부터 일본 내 영업망과 상품을 확대하면서 일본 매출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신라면은 농심의 주력 제품이지만 일본의 주류 인스턴트 라면과는 전혀 다른 종류로 분류된다. 일본 인스턴트 라면은 돈코츠, 쇼유(간장), 미소(된장), 시오(소금) 등의 4대 맛을 대표로 하고 있어 신라면의 매운 맛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심은 신라면을 내세워 기존 일본 라면과는 다른 매운 라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종의 '틈새 시장' 공략인 셈이다.
정 부장은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과 한국 라면, 특히 농심 라면의 특별한 차이점으로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이 얼큰하며 별첨 스프가 많이 들어가 있고 끓일수록 맛있는 라면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농심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일본 시장에 친화적인 순한 맛의 '신라면 김치'를 집중적으로 육성 중이다. 일본인 고객의 입맛에 맞는 덜 매운 라면으로 매운 맛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신라면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제안하는 한편 이를 즐기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도쿄 하라주쿠에서 신라면 브랜드를 알리는 팝업스토어도 진행했다.
일상 파고든 신라면
현재 신라면은 일본 매운 라면 시장의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일본은 인스턴트 라면의 종주국인 만큼 수많은 제품이 새롭게 출시되고 경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매점 매대에 제품이 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한번 매대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인기가 떨어지면 신제품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하지만 신라면은 현재 일본의 거의 모든 주류 소매 채널에 입점해 있을 정도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일본의 전국 단위 유통 대기업인 이온그룹 산하의 대형 슈퍼마켓(GSM), 슈퍼마켓(SM)은 물론 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로손 등 일본 3대 편의점, 돈키호테·다이소 등 디스카운트 전문점, 드럭스토어, 수입 전문점 등 전 유통 채널에서 신라면을 판매 중이다. 신라면이 일본인의 일상에 완전히 파고든 셈이다.
특히 신라면은 다른 일본 제품과 함께 일반 라면 매대에 진열돼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주요 한국 라면 제품들이 별도의 한국 제품 코너에 진열된 것과 다르다.
정 부장은 "도쿄 등 수도권 지역을 포함한 동일본 관동 지역이 전체 매출의 약 60% 이상을 차지한다"며 "일본 소매 유통점이 약 12만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80%에 해당하는 10만 점포에 신라면이 입점해 있다"고 귀띔했다.
신라면의 인기 덕분에 그동안 사실상 없다시피 했던 일본의 매운 라면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전체 일본 라면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6590억엔이다. 이 중 약 6%인 400억엔이 매운 라면에서 나왔다. 농심은 신라면 오리지널, 김치, 볶음면 등 전체 신라면 브랜드의 매운 라면 시장 점유율이 약 25%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운 라면 시장이 성장하자 일본의 대기업들도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는 "닛신의 몽고탕면 시리즈, 신면(辛麺), 동양수산 등 대기업들의 매운 맛 라면 출시가 계속되면서 매운 라면 카테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신라면 브랜드 중심으로 이 시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1000억원 브랜드
지난해 신라면의 일본 매출은 전년보다 25% 성장한 약 110억엔을 기록했다. 일본에서도 '1000억원 브랜드'가 된 셈이다. 정 부장은 "올해 신라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23% 가량 성장한 135억엔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 자체 추정치에 따르면 김치, 블랙 등을 포함한 신라면 전체 브랜드 매출은 일본 내 라면 브랜드 중 상위 10위 이내로 진입할 전망이다. 신라면의 성장에 힘입어 농심 일본법인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6%에 달한다.
물론 남은 과제도 있다. 신라면은 일본의 소매점 대부분에 입점해 있지만 일본 대기업의 입김 탓에 편의점 등 일부 소매점에서는 아직 봉지라면만 판매하고 있다. 일본 라면 시장은 컵라면의 비중이 80%를 차지한다. 따라서 신라면이 일본 시장 내에 더욱 확고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컵라면 유통 확대가 필수적이다.
농심은 앞으로 일본에서 신라면 브랜드를 더욱 확장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농심은 현재 '신라면 라이트', '신라면 블랙', 비국물 타입의 '신 볶음면' 등으로 다양한 신라면 제품을 판매 중이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에는 신제품 '신라면 치킨맛'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심은 신라면 외의 '차세대 신라면'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농심은 일본에서 드문 해물 맛 매운 라면인 '너구리', 일본에 없는 식문화인 짜장면을 라면으로 만든 '짜파게티', 한국식 냉면인 '둥지냉면(일본명 '후루루냉면')'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하고 있다. 정 부장은 "너구리와 짜파게티는 각각 일본 내에서 연간 5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잠재력이 높다"며 "특히 젊은 층 중심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어 일본 내에서 제 2의 파워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은 올해 일본법인 매출액이 174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신라면 출시 40주년을 맞는 2026년 일본법인 전체 매출을 200억엔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는 일본 내 라면 제조사 중 6위에 해당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농심은 현재 일본 라면 제조사 중 7위 수준에 올라있다.
정 부장은 "신라면은 라면 발상지이자 종주국인 일본 내에서 한국 라면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식 매운 라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면서 "신라면의 이런 선구자적인 역할이 있었기에 다양한 한국 라면과 한국 식품이 일본에 정착한 계기가 됐다는 것을 평가 받고 싶다"고 전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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