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4시마다 찾아오는 이웃남…철학과 교수가 폭주한 이유

▲ 영화 <오후 네시> ⓒ 홀리가든

[영화 알려줌] <오후 네시> (4PM, 2024)

<오후 네시>는 은퇴한 철학과 교수 '정인'(오달수)과 그의 아내 '현숙'(장영남)이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부부의 일상은 얼핏 완벽해 보였다.

'현숙'은 정원을 가꾸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고, '정인'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은퇴 후의 여유를 만끽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의문의 이웃 '육남'(김홍파)의 등장으로 방해받기 시작한다.

매일 오후 4시,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의 방문은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함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육남'의 방문과 그가 보이는 불가해한 침묵(어쩌다 단답의 말은 이어간다)은 부부의 일상을 서서히 좀먹어 들어간다.

그사이 '정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어두운 감정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은퇴할 때만 하더라도 음주 운전을 하던 트럭 노동자가 사고를 냈음에도 '지식인으로서의 품위와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던 그의 태도는 점차 균열을 보이고, 내면에 숨겨져 있던 폭력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보다 더 그가 싫어졌다. 죽이고 싶도록!"이라는 '정인'의 마음속 대사가 암시하듯, 그의 감정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한편, '현숙'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려 한다.

교양 있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현숙'의 모습은, 점점 과격해지는 '정인'과 대비되며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여기에 정인 부부의 딸 같은 제자 '소정'(민도희)과 '육남'의 아내 '사라'(공재경)의 존재는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준다.

<오후 네시>는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아멜리 노통브는 특유의 잔인함과 유머러스한 필체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로, 소설 <오후 네시>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과 일상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송정우 감독이 <오후 네시>를 영화화하게 된 것은 <파이란>(2001년)의 시나리오를 쓴 김해곤 각본가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는 송정우 감독과의 술자리에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 <오후 네시>의 영화화를 제안했고, 송 감독은 원작을 읽은 후 그 독특한 매력에 매료되어 연출을 결심했다.

특히 드라마적 요소에서 시작해, 블랙코미디를 거쳐, 스릴러로 이어지는 장르적 혼종성이 새로운 시도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송정우 감독은 총 4년의 프로덕션 기간 중 절반인 2년을 원작의 판권 구매와 시나리오 작업에 투자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닌, 원작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영화의 초기 각본은 원작의 특성상 상당히 번역체적이고, 문어체적인 특징을 보였다고.

"맙소사"와 같은 다소 어색한 대사들이 많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송정우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대사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배우들은 실제 촬영 전 여러 차례 만나, 대사를 함께 고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원작이 가진 유럽적 정서를 한국적 맥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이웃의 방문을 대하는 태도에서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송 감독은 이를 한국의 지식인이 가질 법한 태도, 즉 "이성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기에 이웃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재해석했다.

<오후 네시>의 핵심 주제는 영화의 포스터에도 담긴 문구,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송정우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듯이, 이는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철학적 명제와 맞닿아 있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다.

특히 '육남'이라는 캐릭터를 '정인'의 또 다른 자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송 감독의 언급은, <오후 네시>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심도 있는 자아 탐구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는 이성적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자신의 본능적 충동과 대면하는 과정을 그린다.

철학과 교수라는 '정인'의 신분은 이성과 교양의 상징이지만, 반복되는 방문자로 인해 그의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는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껍데기가 얼마나 쉽게 벗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다.

그렇게 <오후 네시>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도 불릴 수 있는 현상을 통해 현대인의 위선을 파헤친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거절하지 못하고 참는 태도는 단순한 인내가 아닌,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껍데기를 둘러쓰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인간의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정인'이라는 캐릭터의 변화 과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불안과 공포의 진원지가 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도 효과적으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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