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쓰시던 방을 정리하던 날이었습니다. 서랍 안쪽에 손때 묻은 수첩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숫자만 빼곡히 적힌 낡은 공책이었습니다. 몇 장을 넘기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날짜와 금액만 적혀 있었다
한 줄에 날짜가 있고 그 옆에 금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장부인가 싶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식들에게 보낸 돈의 기록이었습니다. 등록금이나 결혼 준비금처럼 큰 금액도 있었습니다. 받은 쪽은 기억하지 못하는 날짜들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은 기록이 남는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부담이 될까 봐 그러셨을 것입니다. 대신 조용히 적어 두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 기록은 자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확인에 가깝습니다. 내가 이만큼은 했다는 표시였을 것입니다.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부모의 사정은 대개 지나고 나서야 보입니다. 함께 살 때는 당연한 배경처럼 여겨집니다. 자리를 비운 뒤에야 그 자리의 크기를 알게 됩니다. 그때는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흔적뿐입니다.

수첩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넣어 두었습니다.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부모님께 물어볼 것이 있다면 미루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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