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동화 바람이 불면서 신차 디자인 트렌드는 크게 둘로 나뉘고 있다.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실내공간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주행거리에 예민한 전기차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것이 외관 디자인에서 최우선 순위다.
급격한 공력학 도입에 따라 디자인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다. 자동차 디자인은 브랜드 헤리티지와 패밀리룩을 차체에 녹여내는 것이 기본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성능이 개선되면서 디자인은 점점 발전해갔다. 과거 생각도 못했던 양산차 디자인이 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지면서 디자이너 자유도가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서 그릴 자체의 역할이 필요없어 졌다. 그러면서 헤드램프 디자인은 더 중요해졌다. 인상을 결정짓는 눈매에서 화려한 라이트 펑션과 디자인 헤리티지, 패밀리룩을 계승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행자 안전 규정 등의 이유로 헤드램프의 형상과 방식,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에는 헤드램프를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공기역학에 있어서 가장 유리한 디자인은 물방울 내지 쐐기형이다. 전면 노즈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공기역학에 유리해진다. 지금은 헤드램프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좁은 면적에서도 충분한 밝기를 낼수 있어 노즈를 얼마든지 낮게 만들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헤드램프는 일정 면적 이상의 크기의 반사판을 갖춰야하는 규제 속에 형상의 자유도가 떨어졌다.
이런 점을 개선하고자 나타난 '리플렉터블 라이트(팝업식 라이트라고도 부른다)'는 1960~90년대 수 많은 스포츠카에 적용되었다. 특히 일본 제조사에서 개발한 스포츠카 상당수가 리플렉터블 라이트를 탑재했다.
노즈를 낮춰 평상시 공기저항이 유리해졌지만 램프를 켜면 공기저항이 되려 증가하는데다 팝업 모터, 배선 등 부품이 증가해 무게 배분이 나빠지는 단점도 생겼다. 미국의 헤드램프 규제가 완화되면서 과거의 상징이 된 디자인 요소로 남게 됐다.

이러한 방식의 전조등이 나오게 된 것은 공기저항과 미적인 완성도를 위한 유행이 아닌 미국 법규의 규제가 더욱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은 전조등에 규격화된 부품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차체 곡선에 맞게 비스듬하게 들어간 전조등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형상 제한뿐만 아니라 전조등 높이 규제도 있었다. 공기저항 감소 등의 이유로 차체를 유선형으로 다듬다 보니 전조등을 넣을 공간이 안 나와서 이런 복잡한 시스템이 된 것이다.

포르쉐 911(930)
바짝선 둥근 헤드램프로 대표되는 클래식 포르쉐 스포츠카 역시 리플렉터블 라이트를 적용한 모델이 존재한다. 기원은 레이스를 위한 ‘슬랜트 노즈’에서 시작한다. 포르쉐의 상징적인 헤드램프는 그럴싸한 아이덴티티로 자리잡는데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모터스포츠에서는 되려 방해요소가 됐다. 조금의 차이라도 결과를 바꿀 수만 있다면 뭐든 시도 해봐야하는 모터스포츠에서는 ‘눈’을 없앨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포르쉐 935
포르쉐 935를 개발한 포르쉐 엔지니어인 노베르트 싱어는 규정집의 빈틈을 활용해 헤드램프의 장착 위치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것을 깨닳고 매끈한 보닛을 만든 대신 헤드램프의 위치를 범퍼 하단으로 낮췄다. 포르쉐는 결과적으로 ‘슬랜트 노즈’라고 불리우는 스타일을 적용하면서 팩토리 팀과 커스터머팀이 총 120회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확실한 수확을 거뒀다.
당시 유럽에서는 “일요일 경기에서 우승하고 월요일에 스포츠카를 팔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터스포츠의 성패가 스포츠카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포르쉐 911은 우승과 동시에 확실한 홍보가 이어졌다. 일반 모델에도 슬랜트 노즈를 적용해달라는 요구도 나오게 된다.
결국 포르쉐는 911(930)을 개조한 슬랜트 노즈 모델까지 개발해 판매했다. 양산형 모델은 조사각과 시야의 문제로 범퍼에 위치하던 헤드램프가 팝업식으로 올라오게 바뀌었다. 정통 포르쉐인 911을 제외한 가지치기 모델인 914를 비롯한 944, 928 등의 다양한 모델에도 리플렉터블 라이트가 적용되었다.

클래식 로터스 엘란
사라질 수도 있는 그릴과 달리 앞으로도 헤드램프는 전면 디자인 영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는 기술의 발전으로 리플렉터블 라이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과거에 이러한 도전도 있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헤드램프가 단순히 밤길을 비추는 기능을 넘어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까지 발전한 지금 자동차 제조사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김태현 에디터 th.ki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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