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들도 놀 수 있다 [어느 웹소설 작가의 단상]

첫째날 밤에 주문해서 먹은 빙수. 다들 수다를 떠느라 사진이 이것밖에 없었다.

웹소설 작가들도 친구 작가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난 것인가. 웹소설 작가들은 혼자 작업을 하기에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웹소설 작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지금 교류하는 지인들을 만났다. 그 인터넷 카페에는 채팅방이 늘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자주 모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의 한 작가가 카톡방을 만들고 채팅방에서 만났던 작가들을 초청했다. 카톡방은 그 후로 8년에서 9년 가까이 유지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카톡방에서 수다만 떨었고 실제로 보지는 않았다. 볼 자신이 없기도 했다. 작가 중에 나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기도 했고 성격상 온라인에서 알게 된 지인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했다. 그런데 연말에 하는 작가 초청 행사에 초대되어 같은 카톡방 작가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행사는 서울인데, 그중에 집이 부산에 있는 이도 있어서, 그는 상경하면 어디선가 숙박을 해야만 했다. 그 작가는 자신이 방을 잡을 테니 1박을 하면서 노는 것은 어떠냐고 했다. 나는 카톡방에서야 자주 대화를 나눴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는 이들과 과연 1박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처음 참석한 작가 모임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나는 친한 친구하고도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고, 방을 잡고 논 적도 없다. 그런데 1박을 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카톡방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긴 했으나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이야깃거리가 끊이지가 않았다. 아마도 같이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서로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공유할 수 있고, 척하면 척 알아들을 수 있어서인 듯하다. 예를 들면, 어떤 작품이 플래폼 심사에 떨어졌을 때 이것을 남편에게 설명하려면 플래폼이 무엇이고 떨어진다는 것이 무엇이고 심사는 또 무엇인지 배경 설명을 한참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동료 작가에게는 저 한 문장만 이야기해도 바로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해 준다.

처음에는 초청 행사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그 후로도 카톡방 작가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모여서 방을 잡고 숙박을 하면서 밤새 수다를 떠는 모임을 열었다. 그런 모임은 ‘작가의 밤’이 아니라도 다양한 이유로 열렸다. 외국에 사는 작가가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해서, 부산 사는 지인이 서울에 올 일이 생겨서, 그냥 오랜만에 심심해서 놀고 싶어서. 서울 근처에 사는 작가들이 모일 때도 있는데, 그때는 숙박을 하지 않고 차를 마시거나 뮤지컬을 보았다. 뮤지컬을 봐도 작품을 보는 관점이 ‘작가의 관점’이기에 서로 통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저런 부분들은 웹소설로는 굉장히 불호인 것 같다’ ‘이 부분은 개연성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작가 아닌 지인에게 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하지만 작가 지인들에게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3박 4일 동안 작가 모임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작가들이 모이면 대체 뭘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관광을 하는지, 아니면 같이 글이라도 쓰는 것인지. 다른 작가 모임은 잘 모르겠으나 우리는 글도 쓰지 않고 관광도 하지 않는다. 에어비엔비로 작가들이 모두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있는 숙소를 구한 후에,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그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수다를 떤다. 3박 4일 동안 그것이 가능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능하다. 더 길게도 가능하다. 이번에도 3박 4일 동안 함께 있고 나서 집으로 돌아간 후에 카톡방에 올라온 대화들이, ‘아 더 떠들 수 있었는데 아쉽다’였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가. 마치 그런 챌린지라도 참여하는 것처럼 작가들은 끊임없이 듣고, 말한다.

작가들은 쓰는 것이 업이라서 그런지 말하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향형인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밤새 떠들 수 있다. 하지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는 들어주어야 한다. 나와 같은 카톡방에 속한 작가들은 우선 잘 들어준다. 물론 그 듣는 방법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끝까지 상대의 말을 전혀 추임새도 넣지 않고 쥐죽은 듯이 들어주는 이도 있고, 들으면서 제가 생각나는 말을 적절히 보태는 이도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즉,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뭘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며 최근에 가장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나를 궁금해하는 이들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매끄러운 연설도 아니요, 잘 짜여진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나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말이든 들어준다. 3박 4일이 아니라 30박 31일이 되어도 상관 없는 이유다.

어느덧 집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가끔 그 모임이 떠오른다. 어떤 속박도 없었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적당한 시간에 취침에 들어갔던, 모여 앉은 순간부터 수다가 시작되었던 그 모임에서 한 존재가 온전히 이해받는 자유로움을 누렸다. 집에서는 그런 것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챙겨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을 분배해야 한다.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집에서는 쉽게 입을 떼지 않는다. 아이 역시 묻는 말이나 제가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입을 닫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딱히 하는 일도 없고, 밥도 대개는 배달로 해결하면서 온종일 모여 수다를 떠는 그런 모임에서의 일상과 집에서의 일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마음에 저장해 두었던 말들을 글을 쓰면서 해결하고, 이래서 내가 작가로 사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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