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 전략] HBM 이후, 한국 AI산업 성장은 ‘전력 반도체’에 달렸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2026. 9. 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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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데이터센터 등 전기 수요 폭증, 전력 변환 반도체 성능 중요
이 분야 세계 10대 기업 중 한국 全無… 그 빠진 고리를 채워야
그래픽=백형선

우리는 일상에서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인터넷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기 의존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인 AI는 말하자면 전기로 지능을 얻는다. AI가 학습이나 추론을 하려면 GPU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한다. GPU 하나당 1K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하다. 약 100만개의 GPU가 작동하는 초거대 AI 데이터센터는 약 1GW의 전력을 소모한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사실상 원자력발전소를 가까이 둬야 하는 셈이다.

인공지능이 전기를 많이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AI 알고리즘이 수학의 행렬 곱셈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 결과로 문장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때 GPU 안에 수억 개의 계산기(Core)가 동시에 곱셈 연산을 하게 된다. 회로 속에서 수많은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켜지고 꺼지기를 매우 빠른 속도로 반복한다는 의미다. 그때마다 트랜지스터로 전류가 흐르고(Switch-on) 끊어지기(Switch-off)를 되풀이한다. 이렇게 동작할 때마다 고속 전류가 흐르고 막대한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어디선가 외부에서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HBM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사용량과 지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소모는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에 책 한 권을 번역해 달라고 하면, 한 페이지 번역에 비해 수백 배의 연산이 필요하고 전력 소모량도 비례해서 증가한다. 인공지능이 이미지 한 장이 아니라 1시간짜리 영화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필요한 계산량과 전력 소모량은 100만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CoT)하거나 상상하는 동안에도 전기는 계속 소비된다. 많은 사용자가 여러 AI 에이전트를 동시에 쓴다면 전기 사용량도 그만큼 치솟는다. AI 에이전트는 잠들지 않고 24시간 일한다. 결국 AI의 지능은 전력 사용량에 비례하게 된다.

원자력발전소나 LNG 발전소는 주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이 회전하며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교류 전기가 발생한다. 발전과 송전 과정에서는 전압을 초고압으로 올리고 전류를 낮춰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실리콘 반도체로 만든 GPU와 HBM은 대개 1V의 낮은 전압과 1000A의 대용량 전류를 필요로 한다. 디지털 계산에는 일정한 직류 전압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데이터센터에선 전력 흐름을 교류에서 직류로 바꾸는 여러 변환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발전소는 바닷가에 주로 위치하고 AI 데이터센터는 도시 근처의 내륙에 자리한다. 전기의 장거리 전송·변환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전력 반도체 시장은 화합물 반도체가 대세다. 한국 기업은 생산 규모와 기술력 등이 부족해 관련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인터넷 캡처

전기가 AI 데이터센터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 직류 전압으로 변환해야 한다. 교류(AC)를 직류(DC)로 바꾸는 장치를 AC-DC 변환기라 부른다. 다시 1V까지 내리기 위해 DC-DC 변환기가 설치돼야 한다. 이처럼 AI 데이터센터의 전기 공급망은 공간적으로 그리고 계층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AC-DC 변환기와 DC-DC 변환기는 ‘전력 반도체’로 이루어져 있다. 효율을 높이고 작은 공간에 설치하기 위해서다. 전력 반도체의 성능이 AI 데이터센터의 전기공급 효율, 전력손실, 신뢰성, 냉각, 크기를 결정하고 결국 경제성을 좌우한다. AI 데이터센터의 건설 비용과 유지 비용이 전력 반도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전력 반도체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반도체 물질과 트랜지스터 구조가 다르다. 먼저 고전압과 고전류에 견디는 능력이 우선된다. 보통 IGBT라 부르는 실리콘(Si) 계열의 전력 반도체가 있다. 주로 초고전력 공급용이고 대형 구조인 전기철도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에 사용된다. 다음으로 SiC(실리콘카바이드) 물질로 만드는 전력 반도체가 있다. 전기 자동차에 많이 쓰인다. 마지막으로 GaN(질화갈륨) 물질로 만드는 전력 반도체는 고효율·소형화가 중요한 AI 데이터센터의 GPU 전원 공급장치에 적합하다.

인공지능 패권 시대에 AI 주권을 확보하려면 GPU, HBM뿐만 아니라 전력 반도체 분야의 자립이 필요하다. 자립 조건에는 반도체 결정 성장 기술, 공정 기술, 설계와 패키징 기술, 그리고 테스트와 냉각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생산을 위한 재료, 부품과 장비 생태계 구축도 필요하다. 최종적으로 전력 반도체를 생산하고 판매하고 공급할 기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 세계 10대 전력 반도체 기업 중 한국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 미만이다. 해외 공급이 차단될 경우 우리는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없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과 기회는 세 가지 병목 현상을 극복하는 데 달려 있다. 이 병목 현상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독자 인공지능’도 ‘인공지능 자주독립’도 없다. 인공지능 패권의 세 가지 결정 요소로는 먼저 메모리 반도체가 있다. 메모리가 인공지능의 성능을 결정한다. 둘째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이다. 이때도 전력 반도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들 반도체를 포함한 AI 데이터센터의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 조달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전력 반도체 분야까지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 HBM 이후 한국 AI 산업의 성장은 전력 반도체에 달렸다.

아마존웹서비스(AWS) AI 데이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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