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저도, 방송에서 사라졌습니다.”

1960년대 한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가수 김상희, 그녀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드라마 같았습니다. ‘삼오야 밝은 달’, ‘코스모스 피는 길’, ‘울산 큰 애기’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사랑받았지만, 그 노래 너머엔 꺾이지 않는 한 여인의 운명 같은 인생이 숨어 있었습니다.

고려대 법대 출신, 전교 1등 수재. 법조인의 길이 유력했던 그녀는 우연히 본 합창단 오디션을 계기로 전속가수로 데뷔합니다. 하지만 본명 최순강으로 활동할 수 없었기에, 흔한 성씨 ‘김’과 친구 이름을 붙여 ‘김상희’라는 예명을 갖게 되었죠.

그러던 1970년대 초, KBS PD 유훈근과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꿔놓습니다. 양가 모두가 반대한 결혼. “왜 종갓집 장남에게 가수를 며느리로 들이느냐”는 비난 속에서도 두 사람은 결혼을 강행했고, 심신이 지친 남편은 결혼식 당일 실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그 이후였습니다. 남편 유훈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보 비서관으로 정치에 투신했고, 그 여파로 김상희는 방송 금지 대상이 되며 사회적 감시까지 받게 됩니다. 결국 남편은 미국 망명, 김상희는 세 아이를 데리고 이화여대 앞에서 햄버거 장사를 시작합니다.
가요계의 여왕에서, 길거리 장사꾼으로. 그녀는 말합니다.
“언젠가는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고.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됩니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고, 그녀는 무대로 돌아옵니다.
81세가 된 지금도 KBS1 ‘가요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녀. 여전히 반듯한 자세로, 청춘을 노래합니다.

김상희의 인생은 단지 ‘스타의 화려함’이 아닌, 시대를 관통한 여성의 강인한 서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우리를 위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