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부산항 제1부두가 빠진다면
공간, 새로 ‘생산’되는 것…어떻게 지키느냐가 중요
눈을 의심했다. ‘부산항1부두 문화재 등록 막는 중구… 세계유산 등재 차질’(국제신문 지난 2월 14일 자 8면 보도)이란 기사였다. 부산항 제1부두를 포함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부산시, 이에 딴죽을 거는 부산 중구, 이런 내용이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의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중구가 ‘부산항 제1부두 등록문화재 신청 건’에 대한 검토 의견 제출을 보류하고 있다고 한다. ‘요청’은 지난해 10월 부산항만공사(BPA)가 했다. 문화재 소재지 지자체의 검토 의견을 받아야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일단 ‘멈춤’이다. 부산항 제1부두(이하 제1부두)를 뺀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상상할 수도 없다. 중구의 반대 이유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중구는 제1부두 부지에 구민 체육시설이나 주민친화시설이 들어서길 희망한다고 했다.
부산항 제1부두가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 말하자면 원형 보존의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기자는 2년 전에도 ‘국제칼럼’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뤘다. ‘원형을 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니’(국제신문 2021년 2월 16일 자 23면)였다. 제1부두를 원형 그대로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데자뷔다.
제1부두는 매축지인 돌제(해안에서 직각 방향으로 들어선 구조물)와 잔교(선박 등 접안시설)로 구성돼 1911년 3월 7일 준공됐다. 제1부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12년 6월 15일. 이때부터 무역 및 철도 환승형 여객부두 기능을 할 수 있었다. 일제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연락선을 띄웠다. 이렇듯 제1부두는 처음에는 ‘타자의 공간’이었다. 제1부두는 ‘신천지’로 이주하는 ‘풀뿌리 식민자’들이 조선으로 가는 첫 번째 도착지였다. 또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강제징용과 학병으로 끌려간 곳이었다. 이들이 해방을 맞아 다시 돌아온 공간이기도 했다. 거꾸로 일본의 패전 직후 한반도 전역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려던 ‘풀뿌리 식민자’들이 몰려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기간 유엔군이 들어오고 군수물자가 하역된 곳이 제1부두였다. 이 기간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는 제1부두에 접안해 군인과 민간인을 치료하는 한편 우리나라 고아들까지 돌보았다. 1963년부터 10년간 부산종합어시장(부산공동어시장)이 제1부두에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태평양을 건넌 국적 화물선 고려호가 제1부두에서 취항했다.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출항식도 제1부두에서 이뤄졌다. 제1부두에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해운업과 원양수산업의 개척 정신이 스며 있다. 제1부두는 우리나라 전근대의 출구이자 입구였으며, 수출입국의 도약대였다.
이러한 곳이기에 지역 연구자들이 제1부두를 ‘지키자’며 정기강좌를 열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운동을 벌인 바 있다. 지난 2021년 7월 1일 시작된 연구강좌 이야기다. 앞서 제1부두는 북항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처지였다가 ‘원형 보존’이 결정됐다. 이 부두를 관통할 예정이었던 도로의 선형 역시 바뀌었다. 2022부산비엔날레는 65일간 제1부두 등지에서 열렸다. 제1부두의 창고는 부산비엔날레의 거대한 전시공간으로 변신했다.
제1부두의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하는 이면에는 제1부두의 ‘태생적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제에 의해 규정된’ 공간이라는 것. 그 시작점은 1876년 부산항의 근대개항, 즉 이를 담은 조일수호조규와 같은 이른바 강화도조약 체결이었다. 이 조약은 그동안 ‘불평등’, ‘강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실상 그렇지도 않은 사실이 최근 연구들에서 밝혀지고 있다. 조약은 일제가 요구하고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었지만, 조선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조약 내용을 뜯어보면 결과적으로 조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하지도, 반대로 일제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1876년 부산항 근대개항의 중층적 함의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세계유산 제1부두’는 과연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까. 근대부산의 공간이던 은행(한성1918, 중구)과 쌀 창고(노티스, 중구), 병원(창비부산, 동구) 등에서 이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공연, 전시 등의 문화행사를 열고 즐긴다.

공간은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된다. 제1부두는 이미 2022부산비엔날레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역시 공간의 ‘생산’ 과정이다. 그것도 시민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문화재’라는 박제된 공간 개념에만 매달릴 까닭이 없다. 그래서 ‘문화재’ 역시 또 다른 공간으로 ‘생산’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제1부두 자체가 지닌, 크나큰 역사성과 장소성만큼이나….
오광수 편집국 부국장·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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