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에르메스는 없고 톰브라운·버버리는 있는 ‘아주 불편한 경험’

브랜드 인기→10대 유행→가품 등장→브랜드 이미지 추락→수요 급감
[사진=Thom Browne]

글로벌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의 가격이 10년 새 최저가를 기록했다. 리셀 플랫폼인 크림에서는 인기제품 ‘4바 밀라노 스티치 가디건’이 90만원에 거래될 정도다. 티셔츠 한 장에 200만을 웃도는 가격에도 구하기 어려워 ‘프리미엄’까지 붙었던 과거와 전혀 딴판이다. 브랜드 이미지 추락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과거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들이 눈 여겨봐야 할 현상으로 평가된다.

남녀노소 안 가리는 인기에 취한 사이 서서히 침몰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 이미지

12일 리셀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미국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의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4바 밀라노 스티치 가디건 네이비’는 91만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6월 130만원에 거래되던 해당 제품의 가격은 불과 약 1년 만에 30% 가량 떨어졌다. 같은 브랜드의 ‘도니골 트위스트 케이블 4바 가디건 블루(64만5000원)’도 1년 새 약 20% 하락했다.

‘리셀가’의 추락은 최근 해당 브랜드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것과 관련 깊다. 정식수입 제품은 물론 병행수입 제품까지 수입이 급감하면서 미리 제품을 들여 온 업자들이 서둘러 재고를 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클래식함과 고급스러움으로 매장만 둘러보려 해도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던 몇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다.

▲ 리셀 플랫폼에서 거래되고 있는 ‘톰브라운 4바 밀라노 스티치 가디건 네이비’ 제품. [사진=KREAM]

톰브라운 수요 급감의 배경에는 브랜드 이미지 추락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 톰브라운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점차 수요층도 넓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SNS 등을 통해 일부 불량 청소년들이나 불법적인 일과 관련된 인물이 톰브라운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확산됐다. 이후 톰브라운을 속칭 ‘양아치 브랜드’라 부르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가파른 수요 증가는 또 다른 부작용도 만들어냈다. 해외수입 브랜드 제품을 완벽하게 모방한 이른바 ‘짝퉁’ 제품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도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는 톰브라운 제품이라 적힌 가디건 제품이 27만6000원에 판매 중이다. 해당 제품과 동일한 디자인의 정품 제품의 공식 홈페이지 가격은 156만원이다

직장인 이진영 씨(31·남)는 “최근 패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브랜드에는 나도 모르게 기피하게 된다”며 “특히 불량 청소년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더욱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톰브라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고급 브랜드이고 제품 가격도 꽤 비싼데 어떻게 학생들이 구매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명품 리뷰 유튜버 하빠가 제작한 10대 일진 패션 패러디. [사진=유튜브 갈무리]

비슷한 일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정식 명칭은 ‘트렌치코트’이지만 제품의 높은 인기 덕에 정식 명칭마저 ‘버버리 코트’로 착각하게 만든 글로벌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과거 모국인 영국에서 브랜드 이미지 추락 때문에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당시 영국의 불량 청소년을 일컫는 ‘차브족’ 사이에서 버버리 체크무늬 야구모자가 크게 유행하면서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버버리 기피 여론이 생겨났다. 결국 버버리 본사는 해당 야구모자 생산을 중단했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톰브라운, 버버리 등과 같은 명품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일 경우 수요가 급격하게 늘더라도 공급량을 조절해 희소성을 유지하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공급량을 늘릴 경우 흔하지 않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주력 소비층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에르메스와 샤넬이 오랜 기간 ‘명품 중의 명품’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비결 또한 ‘절제의 미덕’이 꼽혔다.

한 패션업계 전문가는 “사실 패션산업은 브랜드로 시작해 브랜드로 끝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특히 명품 브랜드의 경우 과거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만큼 ‘아무나 살 수 없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지켜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품 제품을 구매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비싼 옷을 산다는 것을 넘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처럼 인식되는 효과도 부여하는데 이것이 사라지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되면 자연스레 해당 브랜드 제품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며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10대, 그 중에서도 ‘문제아’로 인식되는 이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라면 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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