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의 붓질, ‘할머니 화가’ 인생 첫 개인전 열다

김봉현 선임기자 2026. 5. 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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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생 제주 좌기춘 늦깎이 화가 74점 선봬
델문도뮤지엄 2층 갤러리 5월2일 ~31일까지
한라산이 보이는 풍경,  종이에 수채,  53x73cm, 2026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

평생 흙을 일구던 거친 손이 나이 팔순을 훌쩍 넘겨 이제 색(色)을 일군다. 단 한번도 제도권 미술교육의 틀에 갇혀보지 않았기에, 그녀의 그림은 자유자재하고 기교 없이 신선하다. 학교가 가르쳐주지 못한 색들이, 삶의 궤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1939년 제주 한경면 출생의 좌기춘 할머니 화가. 중학교 졸업 후 평생 농부로 살아온 그녀의 손에 호미와 낫 대신, 연필과 붓이 쥐어진 지 불과 2년여. 그 흔한 미술학원에서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녀의 붓질은 역설적이게도 더 깊다. 

배운 적 없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순수한 표현의 시작점이었다. 85세 나이로 첫 개인전을 마련한 좌기춘 할머니의 전시가 감동인 이유다. 좌기춘 개인전이 5월2일부터 31일까지 제주시 도남동에 위치한 델문도뮤지엄 2층 갤러리(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삼로 316)에서 열린다. 오프닝은 2일 오후 3시.  
85세 나이로 첫 개인전을 마련한  좌기춘 할머니 화가. 제주 한경면 1939년 출생 ⓒ제주의소리
코스모스,  종이에 연필, 29x20.5cm, 2019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

붓을 늦게 들었을 뿐, 살아온 세월이 오롯이 화폭에 담겼다. 서툰 기교가 오히려 가장 정직한 예술이 된다. 그래서 소위 '책가방 끈'이 긴 전업 화가들의 눈에 그녀는 아직 아마추어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고 보면 '화가'라는 타이틀은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없다. 

생애 첫 전시에 내건 작품은 모두 74점. 팔순 중반을 바라보던 2024년 이후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이다. 가톡릭 신자인 좌기춘 할머니가 2019년 성당 그림반에서 어느 자매님이 건네준 종이와 연필로 그린 코스모스 그림이 늦깎이 화가의 길을 걷게 했다. 미국 유학 중인 손녀가 방학에 돌아와서 그 그림을 보고 "할머니! 앞으로는 그림을 계속 그려보세요. 할머니 그림이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 그림만큼 훌륭해요"라고 응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렸던 모지스(1860~1961, Moses)는 12살 무렵부터 70대 후반까지 평범한 농부로 살아갔으나 76살 무렵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80살 이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며 세상을 떠난 101살이 될 때까지 총 16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100살 이후에도 25점을 그리는 등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가로서 투혼을 발휘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은 사람이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을 만큼,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할머니 화가다. 

손녀의 권유로 좌기춘 할머니도 자신이 흠모한 천경자 화백을 떠올리며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각오했다. 손녀는 물론 아들과 며느리 등 온 식구가 그녀를 응원했다. 사실 그녀에겐 '숨은' 그림 선생이 있다.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에서 강의하는 한국화가 유창훈 화백이 그녀의 유일한 그림 선생이다.
정방폭포, 종이에 수채 31x42cm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
용담해안, 섬속에 갯바위  종이에 수채, 31x42cm, 2026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

2024년 자신의 화실로 그림을 배우겠다며 며느리와 함께 불쑥 찾아온 좌기춘 할머니를 마주한 순간, 유 화백은 그로부터 몇 해 전 아흔을 넘겨 임종하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돌아가실 때까지 유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좌기춘 할머니의 맑은 얼굴에 오버랩되면서 그 즉시 '선생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좌기춘 할머니의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그림 선생이 되어줄 분을 수소문하다 유창훈 화백을 소개받고 무작정 화실로 찾아갔던 일화다. 

허나, 유 화백은 단 한 번도 지난 2년간 좌기춘 할머니에게 그리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림을 가르치는 것 대신, 살아온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색이 되고 선이 되어 캔버스 위에 번져 나오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미 완성된 삶 앞에서, 그림 선생의 역할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비켜서는 것이었다.

유 화백은 "좌기춘 어르신과의 그림 수업은 특별했다. 대학에선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좌기춘 어르신에게는 제가 그림을 배우고 있다"라며 "그분에게는 제가 붓을 함께 잡아준 것이 아니라, 대신 그분의 삶이 그림이 되는 순간을 그저 함께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깊은 삶이 경험이 어느 순간 색이 되고 선이 되어 캔버스를 채워 가더라. 저는 그걸 지켜봤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좌기춘 화가는 말한다. "가슴이 벅차다. 이렇게 나이 들어 그림을 그리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림 그리는 생각을 하면 늘 웃음이 절로 나온다. 화북성당 늘푸른대학 그림반에서 처음 그림을 그린 것이 이렇게 개인전을 열게 될 줄이야. 내가 8살 초등학생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다. 성모님께도, 그림 종이를 처음 가져다준 카타리나 자매님께도, 가족들에게도, 제 그림 선생 유창훈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감동이다. 늦게 피어 더 깊은 전시다. 
성모님,  종이에 수채, 38.5x26cm, 2024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
안덕계곡,  종이에 수채, 53x73cm, 2026 좌기춘 作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