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홍창기? 구자욱의 생각은 달랐다 –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

구자욱 선수는 2023시즌 생애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특이했던 점은 시즌 중반 주장까지 맡았는데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랐습니다.

2023시즌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중계방송을 하면서 구자욱 선수를 만날 때마다 타격 이론과 타격폼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화 통화로 무려 한 시간 동안 타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한 시간의 대화를 지금부터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2023 KBO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개인 두 번째 외야수 골든 글러브를 거머쥔 구자욱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골든 글러브 수상 이후 지금까지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을 했습니다.

“몸을 최대한 다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기술 훈련보다는 몸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근력운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요. 구단에 트레이닝 파트가 새롭게 꾸려졌거든요. 덕분에 좋은 트레이너들을 소개받아서 제 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23년 시즌 중에 주장이라는 부담되는 직책을 맡았음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과연 그는 주장이라는 직책과 잘 맞았던 걸까요?

“저도 몰랐는데 제가 멍석을 깔아주면 그걸 또 잘 하나 봐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시즌 중에 주장이 되고 제 성적에 대한 책임감 말고도 또 다른 책임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주장이니까 감정 컨트롤도 더 잘 해야 하고, 주변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고요. 제 할 거 하는 거에 조금 더 할 일이 많아지고 조금 더 바빠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좀 피곤한 면도 있기는 했는데 오히려 야구라든지, 살아가기 위해서 배우는 것도 더 많고요. 주장을 맡은 것이 제게 괜찮은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학원 수업에서 배웠던 회복탄력성(Resilience, 다양한 역경, 시련,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을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구자욱 선수에게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위기가 닥쳤을 때 잘 헤쳐나가는 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끄는 거긴 한데요.

실패가 끝이 아니고 실패를 하면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슬럼프가 왔을 때도 그렇고요. 매 타석, 매 순간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건 아니다.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하거든요. 지금 회복탄력성의 개념을 들어보니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구자욱 선수와 인터뷰를 하기 전 2015년 프로 1군 데뷔 시즌부터의 HTS(타구 추적 시스템) 기록을 포함한 구자욱 선수의 타격 종합 기록을 미리 전해줬습니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2022년이 다른 시즌에 비해서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었던 겁니다. 바로 평균 콘택트 앞뒤의 위치가 좋을 때와 다를 때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에 대해서 구자욱 선수는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요?

구자욱 선수에게 공유한 구자욱의 커리어 HTS(Hit Tracking System 타구 추적 시스템) 데이터. <자료제공 - 스포츠투아이>

“저는 항상 공을 앞에서 치자는 생각을 하면서 타석에 들어갑니다. 기록을 보면서는 사실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2022년과 2023년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났나?’

이런 생각도 했고요.

사실 2022년과 2023년의 가장 큰 차이는 제 마음의 차이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2022년의 경우는 타석에 들어가면서 유독 불편함이 컸어요. 제가 해결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컸던 것 같고요. 반면에 2023년은 한결 더 편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덕분에 더 과감할 수 있었고요.

기록을 쭉 보다 보니 2015, 2016 시즌의 기록에도 눈이 가더라고요. 이 당시에 이런 기록이 나온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16년의 기록은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 두 시즌의 기록이 타구 추적 기록에 있어서 2023시즌의 기록과 비슷하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조금은 결과론 같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비슷한 건 비슷한 거고 지난 시즌에 좋지 않았던 부분이 명확하기도 하니까 참 기록이라는 게 보기에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2023시즌 여름에 구자욱 선수와 강민호 선수가 함께 더그아웃에 있을 때 올시즌 타격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민호형! 제가 타격폼을 이렇게 안 바꾸는 거 형도 지금 처음 보시죠?”라고 묻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구자욱 선수는 ‘구자욱 타격폼 ver 2023’은 성공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이보다 나은 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만족하는 분명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시즌 중에 타격폼을 바꾸지 않았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타격폼을 올해만 놓고 평가를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제가 어떻게 쳤는지 자세 다 알고 있거든요. 메모해둔 것도 많고요. 그런데 타격 폼 변화 없이 쭉 가는 타자가 좋은 타자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다들 어느 정도는 다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다들 바뀌는데 남들은 잘 모르는 거죠. 저도 그랬습니다. 2023시즌 동안 투수에 따라서도 미세한 부분이 바뀌었고, 제가 타석을 앞둔 상태에서 느끼고 있는 기분에 따라서도 수정을 했습니다. 날씨에 따라서도 미세한 부분을 바꿨죠. 큰 틀은 바꾸지 않았지만 작은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 수정을 하면서 시즌을 치렀습니다.”

10월 6일 KT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11호 홈런을 때리고 환영받는 구자욱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성공한 2023시즌의 폼을 정립하기 위해서 해왔던 노력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민호형이랑 캐스터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오 사다하루의 타격 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던 걸로 기억을 해요. 힘을 모을 수 있는 자세를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엽 감독님 이전 아시아의 홈런왕이었던 ‘오 사다하루도 제 자세로 쳤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었죠.

그런데 이게 사실 이야기가 깁니다. 제가 지난 시즌 마치고 마무리캠프에 갔어요. 거기서 아쉬웠던 성적에 대한 아쉬움도 달래고 돌아와서 겨울에는 몸도 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 완벽한 상태라는 확신을 가지고 팀의 스프링캠프인 오키나와에 갔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야구를 하는데 완벽한 준비 상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캠프에서 첫 번째 라이브 배팅을 하게 됐는데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공이 하나도 안보이는 겁니다. 이후에 라이브 배팅이나 일본 팀과의 친선 경기에서도 당연히 성적이 안 좋았습니다. 공이 안 보였으니까요.

‘와! 이거 큰일났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별의별 거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시범경기 기간에 키움과의 경기를 앞두고 다리를 모은 타격 폼으로 바꿔봤습니다. 투수는 김동혁 선수였고요. 그랬는데 극적으로 공이 보였어요. 그때부터 그 자세가 2023시즌의 자세가 됐습니다.”

2023년 구자욱 선수의 다소 다소곳해 보이는 이 타격 준비 자세는 시범 경기 기간에 극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만약 2024시즌을 마치고 있을 ‘제3회 프리미어 12’의 대표가 된다면 오사다하루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외야에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으니까 제가 대표팀에 승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만약에 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면 오사다하루 감독에게 감사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2023시즌에 저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3명의 좌타자와 스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구자욱, 김혜성 그리고 나성범 선수였는데 이들이 제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앞 스윙’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몸의 앞쪽에서 이뤄지는 스윙으로 야구선수들은 흔히 폴로(Follow) 스윙을 앞 스윙으로 통칭합니다.)

"이게 딱 뭐라고 설명을 드리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시즌 중에 이야기를 나눴을 때 타치바나 타격코치의 권유로 스윙의 폴로(Follow)를 길게 하면 타구가 살아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었을 텐데요. 사실 이와 관련해서도 단계별 훈련법이 있고 그렇다 보니 이야기로 설명드리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언젠가 직접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직접 보여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김혜성 선수나 나성범 선수 같은 다른 좋은 좌타자들도 저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네요."

구자욱은 2023년 타격 이후의 몸통 앞쪽에서의 앞 스윙을 의식적으로 크게 가져가면서 타구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또 한 명의 엄청난 좌타자가 있죠. 구자욱 선수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등장한 선수가 있습니다. 구자욱 선수와는 나이도 비슷하고 포지션도 같아서 최근 야구팬들에게 추강대엽 논란만큼이나 라이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홍창기 선수입니다. 구자욱 선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홍창기 선수는 너무 좋은 타자죠. 한마디로 강타자입니다. 제가 방송 인터뷰에서도 홍창기 선수가 제가 타격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선수라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8.17 경기 종료 후 방송 인터뷰)

개인적으로 저와는 유형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과감함이라는 단어가 저를 상징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요. 홍창기 선수를 상징하는 단어는 신중함이 아닐까요? ‘홍창기가 참으면 볼이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투수가 던지는 순간? 혹은 던지기 직전부터 공을 휘둘러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데 홍창기 선수는 그걸 참거든요. ‘저걸 어떻게 참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다가 또 어쩔 때 보면 1구부터 과감한 타격을 보여줄 때도 있고요.

그리고 홍창기 선수가 LG 트윈스 공격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그래서 모든 배터리가 홍창기 선수를 아웃시키려 노력을 하는데도 어떻게든 살아나가서 나가면 득점을 합니다. LG에게는 홍창기의 출루는 곧 득점이 되고요. 그래서 강타자인 겁니다.”

2023 골든 글러브 시상식 외야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홍창기, 구자욱, 박건우 <사진 제공 - OSEN>

타격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는 의미도 설명을 해줬습니다.

“최근 KBO 리그의 최고의 강타자가 누구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정후 선수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렇죠. 이정후 선수죠. 누구도 이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걸 인정하기 때문에 이정후 선수에게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준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정후 선수가 한시즌 홈런 50개 치나요? 아니죠. 홍창기 선수 역시 마찬가지죠. 홍창기 선수도 홈런 오육십 개 치는 선수가 아닙니다. 그래도 홍창기는 강타자라는 인식이 있죠. 꾸준한 출루와 정확한 타격이 그 인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생각을 바꾸는데 홍창기 선수와 이정후 선수가 큰 도움을 줬습니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을 슬래시 기호와 함께 쓰는 것을 트리플 슬래시 라인이라고 칭합니다. 앞의 0을 빼고 타/출/장, 3/4/5를 야구팬들은 ‘아름답다’고 말하곤 합니다. 구자욱 선수는 이 아름다운 트리플 슬래시 라인을 2015년과 16년 두 차례 작성했습니다. 2023시즌은 아쉽게 장타율 0.005차이로 달성에 실패했지만 2023시즌 리그의 모든 타자들을 통틀어 3/4/5에 가장 근접한 기록이었습니다. (2023 구자욱 0.336/0.407/0.495)

“올 시즌 달성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사실 앞서도 이야기했던 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야구를 했던 2015년과 16년에 달성했던 기록이었는데 이게 그렇게 달성하기 어려울 거라는 건 그 당시로는 상상도 못했죠.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제가 2023시즌 내내 가져갔던 마음가짐이라면 추후에도 달성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고려를 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2015,16시즌과 비교를 했을 때, 현재 리그의 투수들이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평균 구속도 그 당시와 비교를 하면 상당히 올랐고요.(시속 140km -> 시속 144km) 시속 150km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도 예전에는 팀 당 한 두 명이었다면 이제는 각 팀에 네다섯 명씩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의 투수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 당시와 비슷한 기록을 만든 것은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꼭 다시 도전하려고 합니다.”

구자욱 선수 본인은 3/4/5의 트리플 슬래시 라인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준비를 끝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몸담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라는 팀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당장에 제가 ‘우리 내년에 우승하겠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우리 팀이 점점 강해질 수 있다는 것만큼은 약속드릴 수는 있습니다. 김지찬, 이재현, 김현준, 김영웅 또 투수에 원태인 같은 선수들이요. 저도 이 선수들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이 선수들이 정말 야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고 굉장한 선수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겁니다. 몇 년이 지나고 한층 강해진 이 선수들과 삼성 라이온즈라는 이름 아래서 함께 야구를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승에 대한 말씀도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2021년 구자욱의 활약을 상징하는 10월 30일 NC전의 포효.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내년이면 구자욱 선수는 프로 1군 무대에서 10번째 시즌을 맞이합니다. 지난 9시즌이 항상 황금기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강타자가 되는 방법을 이제 완전하게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분간 주장을 계속 맡을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승엽 감독님이 마지막 시즌에 제게 조언을 해주셨던 것처럼 저도 이제 제가 가진 것을 어린 선수들에게 공유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런 책임감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처럼 구자욱 선수들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3/4/5의 아름다운 트리플 슬래시 라인을 다시 한 번 만들어 낼 수 있는 강타자로 말이죠.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