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무채색 옷만 입어온 고객이 찾아왔다.그녀는 자신을 '튀지 않는 사람', '조용한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베이지, 그레이, 블랙만이 입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퍼스널컬러 진단 결과 그녀는 소프트한 파스텔 계열이 잘 받는 타입이었다. 처음 연한 민트 톤 스카프를 권했을 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답지 않아요'. 이 말은 곧 이런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믿어온 색과 다르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그 날, 잠시 다른 색안경을 써보기로 했다. 그러한 의미로 설득한 결과는 놀라웠다. 얼굴은 훨씬 부드러워졌고, 이후 주변의 반응도 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바뀐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제가 보던 제가 바뀐 거였네요." 색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시선을 바꿀뿐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향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고 말한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라는 의미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색안경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필자는 컬러 전문가로 일하며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색안경을 쓰고 산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벗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색을 쓰고 있느냐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비 오는 날을 보며 어떤 이는 '우울하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차분하다'고 느낀다. 이는 성격의 차이 이전에, 세상을 해석하는 색의 차이다. 마치 동일한 풍경을 회색 필터로 보느냐,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보느냐의 차이처럼 말이다.
컬러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만난다. "밝은 색이 잘 어울린다고 들었는데, 저는 이런 색을 입으면 더 촌스러워 보여요", "원래 제 얼굴은 문제가 많은 편이죠?"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색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특정한 자기 인식의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편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편견을 없애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편견은 대부분 아주 선명한 색을 띤다. 실패 경험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탁한 브라운이나 먹색으로 본다. 상처받은 사람은 모든 관계를 차가운 블루로 해석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은 위험 신호마저 밝은 옐로우로 착각한다.
문제는 색안경을 쓰고 있느냐가 아니다. 한 가지 색만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컬러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정답 컬러'를 강요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색을 시도해보는 경험이다. 무채색만 고집하던 사람이 뉴트럴을 거쳐 파스텔과 딥컬러까지 경험하듯, 관점 역시 확장될 수 있다. 처음엔 어색하고 과해 보이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사람은 스스로를 재정의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색안경을 벗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다른 색을 한 번 써보세요."
컬러 컨설팅은 외모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어울리는 색을 찾는 일도 결국은 자신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는 연습이다. 그 연습을 통해 사람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세상이 조금 덜 거칠고, 덜 날카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평생 색안경을 쓰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색이 너무 짙어 세상을 왜곡하지 않도록, 때때로 바꿔 써볼 필요가 있다. 회색만 보던 날에서, 은은한 파스텔을 허락하는 날로. 단 하나의 색이 전부라고 믿던 시선에서, 여러 색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이해로.
색안경을 벗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색을 써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달라 보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