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방망이 깎던 노인을 위하여

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 2023. 2.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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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소파 위에는 방망이 한 벌이 있다.

윤오영 선생님이 글을 발표한 것이 1976년이고, 그때부터 4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쓰셨다 하셨으니 이 방망이 깎는 명장 노인의 시절은 아주 오래전이다.

세대차가 나도 한참 난다.

우리 할머니의 방망이는 다듬이질에 사용되지 않은 지 30년도 넘은 고물(故物)이지만, 이제는 아버지 다리를 마사지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니 아직 짱짱한 현역이라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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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

아버지의 소파 위에는 방망이 한 벌이 있다. 할머니께서 오래도록 쓰시던 다듬이질 방망이다. 내가 중학일 때 국어교과서에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이 방망이의 용도를 잘 몰랐지만, 나는 할머니께서 풀 먹인 빨랫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토닥토닥 리드미컬하게 두드리시는 것을 자주 봤고, 때로는 돕는다며 직접 방망이를 직접 쥐어 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수필을 읽을 때면 조금 우쭐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윤오영 선생님이 글을 발표한 것이 1976년이고, 그때부터 4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쓰셨다 하셨으니 이 방망이 깎는 명장 노인의 시절은 아주 오래전이다. 세대차가 나도 한참 난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 글을 널리 사랑받는 것은, 작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드는 장인정신에 대한 감동이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리라.

우리 할머니의 방망이는 다듬이질에 사용되지 않은 지 30년도 넘은 고물(故物)이지만, 이제는 아버지 다리를 마사지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니 아직 짱짱한 현역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오래도록 다듬잇돌 위의 빨랫감을 두들겨 펴는데 쓰인 데다가, 할머니 몰래 내가 동생과의 칼싸움에 사용하기도 하고, 이제는 아버지가 수시로 굴리시는데도 여전히 모양새에 흐트러짐이 없이 견고하다. 가히 명품이다. 어쩌면 원가절감의 유행이 몰아치기 전에 만들어진 옛날 물건이라 견고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의 요즘은 조금 다르다. 사회 전반에 양극화가 심해졌는지, 이제는 모든 것이 몹시 비싼 최고급과 무조건적인 최저가의 두 가지 등급으로만 나뉘는 것 같다. 싸진 않아도 품질이 좋은 중간이 잘 없다. 널리 자랑할 수 있는 사치품이 아닌 다음에는, 무조건 저렴한 것이 바르고 착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 같다. 도리어, 품질이 훌륭하여 초저가가 아닌 상품에 대해 바가지라거나 가성비가 나쁘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슷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1977년 출범돼 1989년에 이르러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다 보니 이제 당연하게 느껴진다. 건강보험급여를 기준으로 하여 진료비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미리 보험료를 납부하여 국민건강보험에서 진료비 상당액을 부담하는 것은 급여진료, 국민건강보험에서 진료를 보장하지 않아 환자 본인이 진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것은 비급여진료라고 부른다.

치과는 비교적 건강보험공단의 보장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재료나 시술이 많은 편이어서 비급여진료비를 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므로, 이에 대해 싸거나 비싸다는 인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실은 비슷한 지역에 있거나 진료 카테고리가 같으면 대체로 의료기관별 비급여진료 비용 또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진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심하게 저수가인 기관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비용적절성 비교함에 있어서는 그 품질가치가 동일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같은 가치에 웃돈을 지불할 이유는 없지만, 가치가 다르면 비용이나 대가는 다른 것이 당연하다. 저렴하기만 하면 무조건 바르고 착하다는 인식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건강권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관할 정부기관에서 무조건 저렴한 것이 옳고 바르다는 식으로 의료적정성을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진료수가보전이나 경영타당성을 논할 때에는 공익과 희생 정신을 강조하다가, 진료비용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들어 무조건 저렴한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인의 방망이가 괄세받는 세상에서는 명품 진료도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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