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휴게소가 국산담배만 판매하는 이유
국내 고속도로휴게소의 약 80%가 여전히 국산담배만 취급하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KT&G가 민영화된지 22년이 지났지만 과거 국산 담배를 독점으로 생산·판매하던 관행이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휴게소 250곳 가운데 BAT, 필립모리스 등 외산담배를 판매하는 업체는 전체의 18%인 46개로 나타났다. 고속도로휴게소에 입점한 편의점에서도 국산담배 독점 현상은 여전했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고속도로휴게소 내 직영점 가운데 외산 담배를 취급하는 매장은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KT&G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외산 담배를 판매하는 휴게소는 100곳 이상"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과거 KT&G가 국영기업이었던 담배인삼공사 시절 군대·공공기관·고속도로휴게소 매점 등에서 국산 담배를 독점으로 판매했던 관행이 이어져 온 탓이다. 앞서 2015년 KT&G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포함한 관공서 등에서 구내매점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자사 제품만 취급하도록 하는 이면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업계에선 KT&G가 국내 담배 농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외산 담배를 견제하고 있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매점을 운영하기 위해선 먼저 한국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여기서 점주들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외산 담배를 취급하면 고객 편의와 판매량이 증대될 수 있지만 국내 엽연초 농가들이 '생존권 침해'를 이유로 시위를 하거나 민원을 넣으면 도로공사와의 재계약 평가에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영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업주들은 국산 담배만 취급함으로써 리스크를 아예 차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엽연초생산협동조합이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의 외산 담배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끝에 해당 휴게소가 외산 담배 판매를 중단한 사례도 있다.
KT&G는 전국 농가에서 생산되는 담뱃잎을 전량 구매하는 독점적인 거래처다.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국산 담배는 곧 KT&G인데 담배 농가들의 반대로 결국 독점 효과를 보는 것은 KT&G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한 외국담배업계 관계자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KT&G의 영업망을 뚫는 것은 철옹성을 뚫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KT&G는 고속도로휴게소의 국산 담배 판매는 업체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우리가 담뱃잎을 전량 매수하는 것은 맞지만 휴게소 담배 판매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압력을 넣고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2015년 이후 KT&G의 독점에 대해 따로 조사하고 있는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국산 담배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일부 업체 간의 이해관계가 성립되면서 결국 선택권이 제한된 소비자들의 불만은 깊어지고 있다. 외산 담배 브랜드는 일반담배와 전자담배 시장에선 각각 40%, 6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인 만큼 시내와 동떨어진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이 제품들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KT&G의 독점 행태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다른 담배회사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