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궁극적 목적 [기고]

최근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강제해 기업 지배 구조와 주주 환원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 내부의 현금을 회사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예방하며 유통 주식 수를 영구적으로 줄여 배당과 유사한 주주환원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법안의 초점이 대주주 견제와 주가 부양에 맞춰져 있는 반면 경제 성장은 논의에서 빠진 점이 우려된다. 1980-90년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머튼 밀러와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몇 가지 조건 하에 기업 자본 구조가 기업가치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기업가치가 원칙적으로 생산성에 비례할 뿐이지 배당이나 부채 비율 같은 재무적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도 돈이 회사 안 또는 주주 호주머니 중 어디 있느냐의 차이이지 그 자체로 기업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마이클 젠슨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같은 잉여현금의 유출은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모든 기업에 일반화되기는 어렵다는 조건도 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경제성장 보다 대주주 견제에 매몰된다면 결국 그 효과는 기업의 생산성이나 수익 창출 능력 개선보다 오히려 기업 내부에 모인 자금을 주주에게 이전하는 데만 제한될 수 있다. 또한 일률적 의무화는 기업의 지배구조 조정, 법률 자문 등 거래비용 증가라는 문제를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해외 주요국에 비해 경영권 방어 수단도 제한적이라,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로 비자발적 취득 자사주에 대한 소각 예외 등 제도 설계를 보완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소각 의무화의 궁극적 목적이다. 목적이 단기적 주가 부양보다 경제 성장에 있다면 이 규제는 합목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미·중 중심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는 해외 기업들과 비교할 때 국내 기업의 재무적 유연성과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타당성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제도 도입 비용과 세계 경제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경제 이론에 입각해 목적에 맞는지 신중히 따져보아야 한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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