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세기말, 두 10대 여성이 나눈 사랑 이야기

▲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 (주)메리크리스마스

[영화 알려줌]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No Heaven, But Love., 2024)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서 매진 행렬을 일으켰던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이하 <우.천.사>)는 1999년을 배경으로 두 소녀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1999년 세기말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시대적 불안과 종말론 속에서 더 깊이 탐구하며, 청춘의 순수함과 아픔을 담담히 그려낸다.

퀴어 영화 <담쟁이>(2020년)를 만든 한제이 감독의 연출 아래, 두 주인공 '주영'(박수연)과 '예지'(이유미)는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사랑과 연대의 힘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우.천.사>는 사랑의 진정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규범이나 억압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는 소녀들의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배경은 1999년으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가득한 시기로 설정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곳곳에서 들리던 '세기말 감성' 속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주영'은 태권도 대회 준비로 바쁜 고등학생이고, '예지'는 소년원 출신으로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아르바이트생이다.

우연한 계기로 두 사람은 '주영'의 엄마가 주도하는 청소년 사회화 프로그램을 통해 한집에서 지내게 된다.

이 같은 배경은 단순한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당시에 만연했던 불안과 폭력 속에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감정을 더욱 부각한다.

또한, <우.천.사>는 1990년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폭력이 만연하던 시대적 배경을 강조하는데, '주영'의 태권도 대회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주영'은 코치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며 경기를 준비하지만, 대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순간조차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고의로 코치가 상대 코치와 미리 짜고 '주영'이 경기에서 패하게 만들려 했던 것.

이를 '주영'은 어기게 되고, 코치에게 라커 룸에서 폭행을 당하는 모습은 당시 청소년들이 겪었던 폭력적인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주영'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예지'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지켜낸다.

이러한 폭력적인 시대적 배경은 두 소녀의 연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천.사>는 퀴어 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내적 갈등' 대신, 첫사랑의 순수함을 강조한다.

두 주인공은 사랑에 빠지면서도 이를 특별한 갈등이나 고민의 대상이 아닌,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한제이 감독이 사랑의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의도와 일치한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계산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저 사랑에 빠져든다.

이는 영화가 다루는 '첫사랑'의 순수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10대 소녀들의 자유로운 정체성을 부각한다.

그리고 <우.천.사>는 1990년대 후반의 Y2K 문화를 적극 활용해 감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삐삐 번호, 고백 쪽지, 바다 여행, 진실게임 같은 당시의 아이템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제이 감독은 "'주영'의 집과 '성희'(신기환)의 집만큼은 1999년의 풍경을 고스란히 반영하려 했다"라고 전했다.

한 감독은 "당시 주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몰딩도 직접 도배한 것이다. 미술을 위해서라면 회차를 줄이겠다"라면서, "삐삐, 손 편지, 집 전화 등 아날로그스러운 것들에서 생기는 어긋남의 순간들이 사랑 이야기에서 절절함과 애틋함을 더 잘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특히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소품은 '주영'이 나간 태권도 대회에서 나왔던 머리에 쓰는 보호 장구인 호구로, 옛날 버전을 구하기가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시합장의 매트도 그 당시 쓰던 것을 찾아서 깔았다고 한다.

한편, <우.천.사>는 시각적인 요소와 더불어 청각적인 요소로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됐다.

자우림의 '애인 발견!!!', 신화의 '으쌰!으쌰!', 고호경의 '처음이었어요' 등 음악들이 영화에 나오는데, 노래의 가사 자체가 이야기의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바보 같다 생각했어 널 처음 봤을 때'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애인 발견!!!'은 '주영'과 '예지'의 관계사를 상징한다.

직접 노래를 부른 이유미는 "노래방 장면 때문에 노래를 배웠는데,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아니라 유혹까지 해야 해서 긴장을 많이 했다"라며, "가사를 곱씹으면 '주영'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서사라서 복합적인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이었어요'는 첫사랑의 설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됐는데, 이는 아티스트로 더 알려진 김사월 음악감독의 선택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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