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인데 고작 7kg…'가을이' 죽음을, 판결해주실 판사님께

남형도 기자 2023. 6. 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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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4년 5개월, 그 시간마저 굶주리고 맞다 떠난 애달픈 아이의 삶…1심 판결은 30일, 제대로 된 벌이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가을이를 위한 '엄벌진정서'
/사진=SBS 그것이알고싶다

엄벌진정서.

사건 번호 : 2023 고합 13, 2023 고합 120(두 개의 재판)
피고인 : 가을이(가명) 친모 이혜주(가명), 둘과 함께 살았던 최수빈(가명)과 최수빈의 남편.

학대로 숨진 4살 아이의 눈으로 짐작해 봅니다. 압니다. 절반, 아니 반의 반의 반도 잘 모를 거란 걸요. 그래도 해봅니다. 김연수 소설가는 이리 말했었지요. "그 누구도 신이 될 필요는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김연수 작가 - 시절일기 中)

10여 평의 좁다란 집이 보입니다. 여긴 부산입니다. 작은 아이가 있네요. 나이는 4살입니다. 이름은 가을이(가명). 한창 잘 먹을 나이지요. 무럭무럭 자라야 하고요.

포털에 '4살 식사'라고 검색해봤습니다. 수많은 사진이 나옵니다. 밥과 국, 반찬 세 가지를 담을 수 있는 식판이 주로 보입니다. 반찬도 가지각색입니다. 불고기, 연근조림, 소시지, 미역국, 시금치, 김치, 오곡밥, 감자조림…. 기도하며 손을 모으는 아이도 있고, 환히 웃는 아이도 있고요. 서투른 젓가락질을 도와줄, 끝이 붙은 젓가락을 잡고 있습니다. 배울 게 많으니까요.

때는 2022년 6월이었습니다. 막 더워질 무렵이었습니다. 가을이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그날 식사는 다 끝났습니다. 하루 한 끼, 분유를 탄 물. 엄마는 오직 그것만을 아이에게 줬습니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요. 동갑인 친구들이 맛있는 반찬을 먹을 동안에요.

당연하게도 키가 87cm 밖에 크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키 평균은 104cm였습니다. 17cm나 더 작은 거였지요. 몸무게는 7kg입니다. 또래들보다 10kg은 덜 나가는 거였고요. 제대로 먹지 못하니 자라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걸 보고 그러셨답니다. "17kg인데 잘못 봤나 싶었다"고요. 말도 안 되는 몸무게인 거지요.

가을이가 죽었다, '미이라' 같은 모습으로
/사진=SBS 그것이알고싶다
2022년 12월 14일, 집 청소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날 오전 6시부터 엄마가 가을이를 때리기 시작했답니다. 과자를 몰래 먹었다고 때렸답니다. 딸의 머리를, 침대 틀에 부딪히게 했답니다. 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요.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마저도 엄마 주장입니다. 아이는 죽었고 말이 없으니까요.

오전 11시엔 가을이가, 그 작고 마른 아이가 다리를 쭉 뻗었습니다.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핫팩으로 마사지하는 것 말고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7시 35분이 돼서야 엄마는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가을이는 혈색은 창백하고 눈도 깜박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미이라처럼 깡마른 몸, 여기저기 폭행당한 흔적. 의사가 신고했습니다.

사인은 정수리 부위 머리뼈 골절, 경막하출혈. 외상으로 파열돼 피가 나고 뇌를 압박한 거랍니다. 급성뿐 아니라 만성도 있어서, 꾸준히 머리에 손상을 입었던 게 확인됐습니다. 9번 갈비뼈는 과거에 부러졌다가 스스로 붙은 흔적도 있었습니다.

죽은 가을이의 자그마한 몸이 곧 증거였습니다. 아이는 4년 5개월의 짧은 삶 동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걸까요.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어도 되는 걸까요.

아이가 배고파서 흙 묻은 당근을 먹었다고, 때리는 게 인간입니까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글을 쓰며, 불쾌감이 내내 들었던 어휘가 있었습니다. '엄마'란 단어입니다. 엄마는커녕 인간 같지도 않은 이에게, 엄마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어 갑갑합니다. 가을이도 그에게 "엄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듯 해서 먹먹합니다.

짧은 생(生)을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게 하다 이윽고 때려죽인 게 인간의 행동입니까. 때려서 아이가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어서, 밝고 어두움 정도만 구분할 수 있게 됐을 때, 의사가 시신경 수술을 할 것을 권유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게 인간의 마음입니까.

너무 배고파 죽을 것 같아서, 흙 묻은 당근과 감자, 사탕, 어른들이 먹다 남긴 아귀찜, 가을이가 살려고 그런 걸 몰래 먹었답니다. 그걸 알아채고 또 혼냈답니다. 그리고 본인들은 맛있는 걸 먹으러 외식하러 갔답니다. 학대 사실을 들킬까봐 아이는 집에 두고서요. 그게 인간의 상식입니까.

엄마란 인간은 학대한 걸 인정했습니다. 재판 내내 참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걸 다 적지 않았습니다.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를 적어도, 그가 벌인 일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엄마는 잘못했다며 눈물을 보였답니다. 그 모든 장면을 깨끗하게 지워주십시오. 아이가 흘렸을 눈물만, 앙상하게 말라 죽은 그 애달픈 몸만, 오롯이 기억해주십시오.

가을이를 학대한, '보호자 지위'에 있던 자
매일 꾸준히 부산법원 앞에서 엄벌 촉구 시위를 하고 있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가을이, 가을이 엄마와 함께 살았던 두 사람. 최수빈과 그의 남편. 그 둘은,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죄목을 볼까요. 최수빈은 아동학대 및 살해 '방조'. 아동복지법 위반 '방조'. 성매매 알선 혐의. 남편은 아동복지법 위반 '방조'. 방조, 방조, 방조. 방조죄는 남의 범죄 행위를 돕는 걸로 보는 거지요. 핵심이 아니라 일종의 '주변 인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최수빈은 주변 인물이 맞을까요. 하나씩 따져보려 합니다.

첫째, 최수빈이 가을이를 직접 학대했단 주장이 나왔습니다. 가을이 엄마는 "손을 편 상태로 눈 쪽을 2대 세게 때렸다"고 했습니다. 이웃 주민 증언도 나왔습니다. 그는 최수빈이 가을이 엄마인 걸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도 시끄러워서 베란다 창문을 통해 봤다. 자기 엄마가 때렸지"라고요. '심한 손찌검'이라 표현했습니다.

둘째, 주변 인물이 아니라, 최수빈도 '보호자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최수빈은 가을이 엄마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성매매를 하러 가거나, 수면을 할 때, 보호하고 양육했던 이가 최수빈이라고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최수빈은 친모의 성매매에 관여했기에, 둘은 일종의 업무 관계였다""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보호자의 지위'에 있던 자"라고 했습니다.

실제 가을이 친모가 저녁 8시부터 오전 4시까지 성매매를 했고, 아침엔 주로 취침했답니다. 가을이는 최수빈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잠도 같이 잤답니다.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라, 보호자나 다름없었던 겁니다.

셋째, 딸에 대한 학대를 유발한 실질적인 원인 제공자입니다. 성매매를 시켰고, 친모는 2400여회나 했고, 수익 1억 2000만원은 전부 가져갔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의존하는 관계였답니다. 양육에 소홀하게 했고 스트레스를 주고, 친모가 성매매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협박했답니다. 보이는 결과와 현상이 아니라 그 이면을, 면밀하게 봐주십시오.

넷째, 엄마가 학대하도록 이끈 자입니다. 가을이 친모는 "(최수빈이) 때리는 것도 여길 이렇게 팍 때려야 아프다. 자기가 보여주면서 가을이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항하고 아이를 보호해야 할 엄마는,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던 이의 말을 따랐습니다. 신뢰의 대상 이상이었답니다.

10여 평의 집에선 완벽한 통제와 감시가 이뤄졌을 겁니다. 누구와 연락하는지, 뭘 사는지도 다 감시했답니다.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학대란 맥락에서 주범은 최수빈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했습니다.

다섯째,<부산일보>에 따르면 가을이 엄마가 사망 직전 "최수빈 부부에게 119에 신고해달라고 했는데 해주지 않았다"고 했답니다. 친모에겐 당시 핸드폰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가을이가 숨질 위기에 유일하게 119에 신고할 수 있었던 사람인 게 됩니다.

이에 대해 최수빈 측은 "친모에게 성매매를 강요하지 않았다. 가을이에 대한 학대도 방조하지 않았다. 친모를 대신해 아이에게 숙박, 식사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동거인 최수빈씨 역시 '아동학대 살해에 대한 공동정범(2인 이상이 공동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길 했습니다. "관대한 처벌은 아동학대를 방조하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이야말로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짐작하고 또 짐작하여 주십시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사진=뉴스1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자이크 없는 가을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건을 접해봤음에도 너무 끔찍해서, 그만 울었습니다."

점심을 가벼이 먹고 저녁이 되었다고 벌써 허기가 져옵니다. 고작 한 끼도 안 되어서 배고픔을 느끼는데, 그 작은 아이는 하루 한 번 분유 탄 물만 먹고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굶주려야 인간의 몸이 그리 앙상해질 수 있을까요. 짐작하고 또 짐작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과 공감의 능력으로 헤아려, 잠시라도 가을이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게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의 마지막 도리가 아닐지요.

여름이 무덥습니다. 계절다운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연했던 초록 잎사귀는 진해지고, 이따금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합니다. 한여름 공원에서 한 아이는 엄마, 아빠와 장난치며 까르르 웃고, 또 다른 아이는 분수대에서 물장난을 칩니다. 엄마와 최수빈과 그의 남편이, 가을이에게서 앗아간 시간까지 묵직하게 고려해, 그만큼의 엄벌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1심 재판 선고일이 이달 30일, 이제 9일 남았습니다. 하늘에서나마 가을이가 맘 졸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세상에 남은 이들이 그 결과를 지켜볼 때입니다.

엄벌진정서를 보내시려는 분들을 위한 팁
/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진정서 양식은 정해진 게 없습니다. 다만 진정서에 들어가야 하는 걸 알려드립니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 공지한 내용입니다.

1. 첫 머리에 진정서, 엄벌진정서, 엄벌탄원서 중 하나로 쓸 것(그냥 탄원서라고 쓰면 선처탄원서와 헷갈릴 수 있습니다).
2. 사건번호 : 2023 고합 13(가을이 친모 재판), 2023 고합 120(동거인 최수빈 부부 재판)
(각 재판이 다르므로, 엄벌진정서를 각각 보내셔야 합니다)
3. 피고인 이름
4. 진정인 이름과 주민번호 앞자리, 전화번호, 주소
5. 진정서 내용
6. 날짜, 진정인 이름
7. 도장 또는 서명

이렇게 써서, 우체국 우편·등기·택배로 보내시면 됩니다. 받는 사람엔 부산광역시 연제구 법원로 31 제6형사부(나) (47510)로 적으시면 됩니다. 온라인 우체국도 가능합니다. 다만 작성글 내용 하단에 이름, 이미지 파일로 된 서명·도장을 첨부해야 합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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