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부르는 자존심 싸움: 영풍 -고려아연 위험한 베팅

강서구 기자 2024. 10. 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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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점입가경
갈수록 높아지는 공개매수 가격
고려아연 주가도 덩달아 치솟아
사상 최고치 경신한 고려아연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 우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고려아연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사진=뉴시스]

# 비철금속 전문업체 고려아연과 비철금속 제련업체 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쩐錢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고려아연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고려아연의 지분을 매입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문제는 경영권 분쟁 후後다. 사모펀드의 힘을 빌린 영풍, 대출로 자금을 마련한 고려아연 모두 '승자의 저주'를 각오해야 한다. 펀더멘털이 담보하지 않은 주가가 '거품'이란 것도 위험한 변수다. 더스쿠프가 영풍과 고려아연의 '밥그릇 쟁탈전'을 한번 더 취재했다. 동맹보다 무서운 탐욕 두번째 이야기다.

■ 자존심이 부추긴 쩐의 전쟁 = 영풍(장씨 일가)과 고려아연(최씨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한 건 지난 9월 13일이다.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의 지분 14.61%(302만4481주)를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동시에 거머쥐겠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그럼 고려아연의 지분구조는 어떨까. 전체 지분 중 장씨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33.13%로 최씨 일가의 지분 15.65%보다 두배 이상 많다. 하지만 장씨 일가 소유라고 보긴 힘들다. 우호지분을 모두 합치면 최씨 일가의 지분(33.60%)이 장씨 일가의 지분을 0.44%포인트 넘어선다.

영풍이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지분으로 고려아연의 소유권은 물론 경영권까지 완전히 가져오겠다는 그림을 그린 이유다. 이로써 창업주 장병희(영풍)·최기호(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영풍그룹을 함께 만든 1949년 후 75년간 이어온 양가의 동맹 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다.[※참고: 이 이야기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밥그릇 쟁탈전' 첫번째 편에서 자세히 다뤘다.]

다시 공개매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13일 영풍의 공개매수 소식에 고려아연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경영권 분쟁을 호재로 여긴 투자자들이 고려아연의 주식을 줄줄이 매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9월 2일 54만2000원이던 고려아연의 주가는 13일 66만6000원으로 치솟았다. 19일 고려아연의 주가는 70만원을 돌파했고, 20일엔 장중 73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자 영풍은 9월 26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75만원으로 올렸다. 고려아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2일 고려아연은 주당 83만원에 자사주매입(10월 4일~23일)을 단행하겠다며 맞불을 놓으면서 매력적인 조건도 붙였다.

"최소 매수 수량 기준을 없애고, 공개매수한 자사주를 향후 모두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이겠다"고 선언한 거다.[※참고: 자사주를 소각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든다. 당연히 남은 주식의 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상승할 공산이 크다. 자사주 소각을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는 이유다.]

자사주 소각 등의 변수로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이 치솟자 고려아연의 주가는 다시 출렁였다. 지난 4일 75만1000원으로 시작한 고려아연의 주가는 장중 79만1000원으로 상승했다. 그러자 시장에선 영풍의 공개매수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4일이 영풍의 공개매수 마지막날인 데다 고려아연의 주가가 영풍이 제시한 공개매수가 75만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주가는 지난 4일 77만6000으로 장을 마감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경영권 분쟁 後의 우려들 = 그렇다면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일까. 아니다. 두 회사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영풍은 4일 장마감을 앞두고 공개매수 조건을 다시 한번 변경했다.

공개매수 가격을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가격과 같은 83만원으로 높였고, 최소 매수 수량 요건도 삭제했다. 공개매수 기간도 10월 14일까지로 연장했다. 고려아연과 똑같은 조건으로 공개매수에 나선 셈이다. 고려아연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려아연은 오는 7일 이사회를 소집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가격을 더 높이려는 게 아니냐고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경영권 분쟁 후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공개매수 가격은 영풍과 고려아연 중 누가 이기든 승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영풍은 고려아연 주식매수에 2조5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영풍은 자산운용사 MBK파트너스를 통해, 고려아연은 회사채와 단기차입으로 공개매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경영권 분쟁에 필요한 돈을 외부수혈과 대출로 마련했다는 얘기다.

특히 고려아연은 2조7000억원 중 1조원을 연이자 7%의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했다. 한해 이자만 7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고려아연이 올린 당기순이익 5334억원의 13.1%에 달하는 규모다. 여기에 단기차입 자금을 합하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의 이자가 15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어느 쪽이 이기든 '승자의 저주'를 각오해야 한다는 거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경영권을 위해 영풍은 사모펀드에 1대 주주 자리를 내준 셈이 됐고, 고려아연은 막대한 빚을 졌다"며 "누가 경영권을 거머쥐든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경영권 분쟁으로 급등한 주가는 사태가 진정되면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고려아연의 지금 주가는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2022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기초체력이 담보하지 않는 주가 상승은 결국 '거품'이란 일침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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