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다지만
야구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작년까지 왕좌를 두고 다퉜던 팀이 하루아침에 최하위로 추락하기도 하고,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 거짓말처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도 한다. 선수단의 구성도, 매일의 경기 내용도, 144경기 동안 기록하는 승패도 변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다치지는 않았으면’하고 바라는 마음, 기왕이면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 모든 걸 떠나서 그저 저들을 응원하겠다는 마음. 내 행복만 빌기도 좁은 마음 한편에, 따지고 보면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이들이 자리 잡고 만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왜 자꾸 채워지는지, 영원한 건 없다는데 왜 나는 아직도 벗어날 수가 없는지. 마음은 그렇게, 내 삶 어딘가에 어쩔 수 없이 녹아든다.
Editor Junghee Lee Photo @kimseryuk

독자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해요. (10월 13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야구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제멋대로 그려서 SNS에 올리고 있는 김세륙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을 알고 있었나요?
야구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잡지 아닐까요? 그래서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아, 큰 거 왔다’ 싶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더그아웃 매거진>이 맞나? 나를 왜?’ 이렇게 생각도 했고 포토카드 모은다고 열심히 사던 잡지인데 제 인터뷰가 실린다는 게 놀라웠어요. 팬 생활을 열심히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들떴습니다.

#추억을 찾아서
‘김세륙’은 어떤 의미로 짓게 된 이름인지 궁금해요.
이름의 의미를 밝히기가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이게 도박 용어거든요. ‘세륙’이라는 단어는 섰다(화투 게임의 일종)에서 쓰는 용어인데 4와 6을 붙여서 세륙이라고 해요. 두 패의 숫자를 더해서 0이 되면 ‘망통’이라고 부르는 가장 좋지 않은 패인데 그 중 세륙만 좋은 패거든요. 명절에 가끔 재미 삼아 게임을 할 때, 잘 몰라서 세륙을 잡고도 매번 죽었던 기억이 있는데 알고 보니까 괜찮은 패였어요. ‘세륙을 잡고 죽지는 말아야지’하고 기억해뒀던 건데, 사실 그냥 어감이 좋아서 외워뒀던 거예요! 야구 얘기하면서 도박 얘기하는 게 좀 그래서… 하하.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어요.
원래 전공이 미술 쪽인가요?
저는 극 문과예요. 미술 쪽은 아니고 어문 계열인데요. 지금 하는 일도 그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은 늘 취미였죠. 그래봤자 교실 뒤편에 앉아서 끄적대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림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다행히 직장인이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고 있어서 야구를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네요.
언제부터 야구팬이 됐는지 궁금해요.
2009년에 WBC(월드베이스볼챔피언십)로 야구를 처음 봤어요. 이때 야구계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게, 전해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야구 붐이 일어나던 와중이라 마침 야구를 볼지 생각하던 때였어요. 그때는 점심시간에 학교나 직장에서 TV 틀어놓고 다 같이 야구를 보는 분위기였거든요. 저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1루, 2루, 3루를 돌아 들어오면 1점이라는 것만 알고 봤는데도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가 멋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죠.
응원팀이 왜 KIA 타이거즈였나요?
팀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태어난 건 광주인데 자란 건 경기도거든요.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와 연고지인 두산 베어스 중에 고민했는데 그해 여름에 군산 월명 야구장에서 김원섭 선수가 9회 말에 만루 홈런을 날리는 걸 봤어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9회 말 역전 만루 홈런이라는 극적인 경우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이 팀은 이게 되네?’ 싶더라고요. 그렇게 팀을 골랐는데 우승까지 해버린 거죠. 하지만 그다음 해에 16연패하고… 고점에 제대로 물렸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나요?
창고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옛날 사진이나 옛날 일기장을 꺼내 보면 재밌잖아요. 한 시즌을 일기로 채워두고 돌아보면 재밌겠더라고요. 기록으로 남겨서 회상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마침 2022년 KIA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건, 제가 나성범 선수를 원래 좋아했는데 FA로 이적을 해 오신 거예요. 진짜 믿을 수가 없어서, 오셨던 첫 시즌을 기억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야구 일기였는데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다 나성범 선수 덕분이니 나성범 선수에게 꼭 Special thanks to를 부탁드릴게요.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나요?
저는 컴퓨터랑 태블릿을 연결해서 보내는 식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아이패드는 최신식 문물 같아서 앞으로도 안 사지 않을까요? 맨날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집에 앉아서 한쪽엔 야구 틀어놓고 한쪽에선 그림 그리고, 계속 그렇게 그리려고요. 컴퓨터와 태블릿이 연결돼 있으니까 그리자마자 올리고 팬분들 반응 보는 것도 재밌어요.
선수들의 캐릭터 표현 기준도 궁금한데요?
보통은 호랑이로 그리지만, 특별한 별명이 있는 선수들은 직관적인 별명 그대로 그리곤 해요. 양현종 선수의 별명이 ‘양햄’이라 햄스터, 황대인 선수 별명이 ‘뿡뿡이’라 뿡뿡이로 그리는 것처럼요. (박찬호 선수의 댓글이 화제였어요.) 딱 보자마자 이 선수는 뭘 닮았다 싶으면 그 동물을 그리는데 박찬호 선수가 원숭이를 닮았다고 생각해서 원숭이를 그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저는 왜 원숭이인가요?’라고 댓글을 남기시니까 ‘닮았잖아요~’ 이렇게 말은 못 하고 ‘귀엽잖아요~’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있네요. (박찬호 선수가 인터뷰를 봐도 괜찮나요?) 그렇지만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요? 귀엽잖아요! 수비 위치에서 계속 폴짝폴짝 뛰는 것도, 1루에서 깔짝깔짝 움직이는 것도 제가 너무 좋아하거든요. 어울리지 않습니까? 근데 그러면 호랑이 무늬를 넣어달라고 하셔서… 호랑이 무늬가 있는 원숭이로 그리고 있습니다. 절충안을 제시해 주셨어요.
캐릭터 중 최애는 누군가요?
햄스터 양현종 선수요. 동글동글 귀엽고 뽀짝하게 그리면 되는데 사실은 엄청 살벌하신 분이시기도 해서… 귀엽고 살벌한 햄스터를 그리는 게 늘 재밌어요. 귀여운 햄스터에 특유의 눈매와 빨간 안경을 그리고 ‘이건 양현종입니다!’라고 할 때 즐거워요. 그 짤 아시나요? 최원준 선수에게 웃으라고 협박(?)하는 짤이요. 그런 분을 햄스터로 그리는 게 꽤 재밌어요.
연재 주기가 있나요?
일주일에 한 번은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열정이 타오르면 매일매일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려지는 내용의 기준은 만화를 그릴 각이 나올 때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예요. ‘진 경기라도 최형우 선수의 쓰리런 홈런을 기억하고 싶으니까 이거는 그리자!’ 이렇게요.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중심이 되죠. KIA가 졌을 때의 만화가 오히려 재밌는 것 같기도 한 게, ‘이 경기 내용을 어떻게 가볍게 깐족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려요. 졌을 때 팬들이 제 그림에 공감하며 분노하는 걸 볼 때도 재밌죠.
연재를 시작한 지 2년 차이지만 팔로워가 2만 2천 명을 넘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저도 정말 모르겠어요. 그림이 수려한 것도 아닌데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KIA의 성적이 좋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입소문을 타고 공유가 돼서인 것 같기도 해요. 운이 정말 좋았어요. 개인 기록용으로 시작한 거지만 어쩌다 보니까 팬분들께서 함께 즐겨주셔서 특별해졌죠. 아, 선수분들이 팔로우해 주신 덕도 있는 것 같아요. 선수가 팔로우한 그림 계정이라고 소문이 나서도 있겠네요. 가장 처음 팔로우해 주신 분이 나성범 선수니까 다시 한번 나성범 선수께 모든 공을 돌리겠습니다. (나성범 선수는 어떻게 알고 팔로우했을까요?) 팬아트를 그려서 올렸는데 팔로우를 해주셨어요. 근데 어디 자랑도 못 하겠더라고요. 혹시나 실수로 팔로우하신 거면 어떡해요…! 그래도 저는 늘 사랑합니다. 가셔도 괜찮아요. (눈물)
타 팀 팬 친구들과의 시리즈도 유명해요.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너 만화 나왔다” 하고 보여주니까 “엄마! 나 만화 나왔어!” 막 이러던데요? 다들 좋아해요. 얘기하다가 재밌는 거 있으면 그려도 되는지 허락받고, “이런 식으로 올릴 거다”라고 먼저 보여주기도 해요. 만나서 웃긴 일이 생기면 “야, 나 이거 만화로 그린다!” 하고 선포하기도 하고요. 이젠 출연하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여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가 안 그리면 저 혼내고 그래요. 여름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안 그렸다고 방금도 혼났어요.
본인과 친구들 캐릭터는 어떤 특징에 기반했는지도 궁금해요.
예전 KIA 별명 중에 이름에 ‘개’를 붙여서 말하는 별명이 있었어요. 멸칭이긴 한데 역사가 깊은 별명이거든요. 그래도 애정하는 선수들한테 붙여주는 그런 별명이었어요. 선수들 사진 쭉 늘어놓고 ‘무등 개씨 족보’ 이런 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무등 개씨 해야겠다’ 싶어서 강아지가 됐고 친구들은 그냥 물어봤어요. 그럼 “나는 다람쥐!”, “나는 고양이!” 이런 식으로 말해주지만 복잡하거나 색이 여러 개 쓰이면 귀찮으니까 제 맘대로 쉬운 거로 그립니다!

#솔직해도 괜찮아
독자들이 ‘야구팬의 삶’ 콘텐츠에 많은 공감을 보였어요. 야구팬으로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는데 유독 김세륙의 그림이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과몰입이 심한 편이에요. 일상에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고 친구들도 다 야구팬이라 항상 그런 일상을 보내니까요. 물론 만화적인 구성이나 편집은 좀 거칠긴 하지만 제가 보냈던 일상들을 솔직히 풀어내는 거에 공감을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전우니까요.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는 어떤 내용이었나요?
계속해서 언급되는 작품은 KIA의 경기 내용보단 오히려 일상 이야기요. 시간도 상관없고 팀도 상관없으니까, 반응이 꾸준히 오더라고요. 야구팬들의 일상이다 보니 ‘이거 진짜 너 같다. 이건 너랑 다르네’ 하면서 그런 식으로 공유해 주시고요.
올 시즌 시작 전에 올린 ‘뜬뜬땅땅’ 게시물도 화제였어요. 움짤은 어떻게 작업하나요?
‘클립 스튜디오’라는 그림 그리는 툴로 그림을 그리고, 동영상 편집 툴로 편집해요. 사실 영웅출정식에서 키움 히어로즈 신인선수들이 ‘띵띵땅땅(Hoàng Thùy Linh - See Tình)’ 춤을 춘 유튜브를 봤는데 그거 보고 너무 웃겨서 야구 버전으로 뜬뜬땅땅(뜬공-뜬공-땅볼-땅볼)으로 그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그리게 된 거거든요. 키움 유튜브의 뜬뜬땅땅이랑 한 번 삶은 뉴진스 영상만 한 20번은 넘게 봤어요.
아이디어들의 소재도 궁금한데요? 다른 인스타툰과 차별화되는 소재들이 많아요.
사람 특성인 것도 있어요. 제 주위 친구들도 저와 결이 비슷해요. 친구들끼리 연말 파티를 하면, 사람 다섯이 노는 파티인데 식순을 짜고 굿즈를 뽑아와요. 파티 포스터를 디자인해서 인쇄소에 맡기고, 입장 팔찌와 티켓을 만들죠. 콘텐츠를 짜는 게 일상이에요. 원래 사소한 것에 비효율적으로 집착하는 순간 재미있어지잖아요. 엔트리를 짜 볼까, 0.5초 듣고 응원가를 맞혀볼까, 아님 <더그아웃 매거진> 포카를 뽑기도 해요. 다른 분들이 SNS에 올린 것들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요. 친구들끼리 모이면 120% 정도 야구 얘기를 해요. 각 팀 우승 하이라이트, 레전드 경기, 구단 유튜브를 서로 보여주려고 난리죠.
보통 하루의 일과는 어떤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별일 없이 보내다가 야구를 보는 게 루틴이에요. 집 가서 저녁 먹으면서 늘 야구와 함께하는 삶입니다. 다행히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야구를 꾸준히 볼 수 있네요.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올해 봄에 갔어요. 자주 가려고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근데 생각보다 갈 만해서 내년에는 좀 더 자주 가야겠다 싶어요. 박물관도 못 들러보고 인생 네 컷도 못 찍고, 못하고 온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내년에 광주에서 하는 한국시리즈는 봐야 하니까요!
퓨처스리그나 고교 야구도 자주 보나요?
교 야구를 그나마 잘 봐요. 야구 안 하는 날에도 그냥 스포츠채널 둘러보면서 야구 하는지 안 하는지 보다가 보게 되는 게 보통 고교 야구예요. (올해 신인드래프트 중에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사실은 전미르 선수를 가장 유심히 봤어요. 투타겸업을 하는 선수기도 하고, 이름도 특이하고 경력도 특이하고요. 하지만 역시 우리 (조)대현이가 최고랍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공부해서 대학 야구를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보러 갔다 와서 후기도 그리고 하면 대학 야구를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유명세를 느낄 때도 있는지 궁금해요.
얼굴을 안 드러내서 더 즐거운 게 있어요. 야구장에서 마주치는 분이 제 그림을 배경 화면으로 쓰고 계시는 걸 보면 신기해요. 평소에는 잘 못 느끼고요. 최근에는 양현종 선수 포토카드 도안을 올린 적이 있었거든요. 양현종 선수가 그간 입은 유니폼들 몇 개 꼽아서 그려본, 햄스터로 꽉 찬 그림이었어요. 근데 팬분들이 포토카드를 많이 뽑아주셨는지 카드 관리하시는 분이 “이 곰돌이 뭔데 사람들이 다 이걸로 뽑아가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으셨대요. 그때 생각보다 진짜 더 많이 사랑해 주신다는 걸 느꼈어요.
만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찾아볼 때도 있나요?
만화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올해 올린 만화 중에 ‘선수를 사랑하지 말아야지’라는 만화가 있거든요. ‘선수들을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절대로 사랑하지 말아야지’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결심을 하는 그런 내용인데 사실 올리면서도 부끄러웠어요. 순도 100%의 진심으로 만들어 냈던 거라 ‘나만 이렇게 느꼈던 거면 어쩌지?’하고 속마음을 들키는 느낌이라서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업로드 했던 만화인데 많이들 공감해 주시더라고요. 최근에도 다시 보고 싶어서 글에 달린 댓글들이랑 인용들을 훑어봤었어요.
그런 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 그림을 아껴주시는 게 너무 신기해요. 저야 제 그림 좋아하지만, 포카를 뽑는 데도 돈이 꽤 들거든요. 4천 원씩이나 주고 뽑는 건데 제 그림을 넣어주셨다는 건… 포토카드 보관도 잘해주실 거고, 더 소중히 여겨주신다는 거니까 그림 그린 보람도 있고 뿌듯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면서 그림도 아껴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됐다니 정말 운이 좋죠.
댓글 창이 공감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논쟁의 장이 될 때도 있어요. 부정적인 부분이나 논란이 일 수 있는 소재를 그릴 땐 부담이 되진 않나요?
사실 피곤해질까 봐 일부러 논쟁거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도 있긴 했어요. 근데 내년에는 그래도 좀 더 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피하지 말고 해봐야지 싶어요. 지금은 오히려 논쟁이 일어나면 구경해요. ‘그렇군요.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는 제 기록장이니까 제 시야에 맞출게요’ 이런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주시는 모든 의견은 다 잘 보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나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연료는 팀을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애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야 이걸 할 수 있는 건데 팀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을 때나 미래가 기대되지 않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떨어지죠. 야구를 보면서 당연히 화나고 열 받을 때가 많지만 어느 순간엔 그 감정을 넘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어요. 그래서 늘 야구보다 재미있는 게 생기면 바로 그쪽으로 떠나버릴 거라곤 생각해요. 하지만 세상에 야구보다 재밌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원래 인생의 묘미는 야구처럼 일희일비 아니겠어요?
야구를 보지 않던 시기도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야구가 경기 시간이 길다 보니 하루하루 야구에 둘 삶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피날레를 장식한 게 안치홍 선수의 이적이었어요. 사실 구단의 태도에 실망한 게 컸죠. 야구를 끊게 되는 게, 하락하는 성적 때문도 있겠지만 그 외의 것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너무 힘들어서인 것도 있거든요. 삶의 여유도 없고, 보고 싶은 선수도 없고, 구단에 대한 실망은 커지고 안 그래도 힘든데 야구까지 도움을 안 주는 거예요. 그렇게 야구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가 “너 야구 좋아하지? 지금 도쿄 올림픽 해. 야구를 봐”라고 하더라고요. 도쿄 올림픽 종목에 야구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죠. 정이 너무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때 너무 좋아했으니 우리 팀에는 어떤 선수가 나왔나만 대충 보는데 생판 모르는 이름의 선수만 한 명 있는 거예요. 그게 이의리 선수였고요. KIA의 자랑 우리 의리요. 야구를 다시 보니까 하루 시계가 그제야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연재하면서 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최근에 이의리 선수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낙마하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너무 힘들 거라는 걸 아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응원밖에 없으니 그림을 그려서 올리면은 이의리 선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팬들의 응원이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서 팬들의 응원 문구를 직접 받아 만화를 그렸어요. 제가 무슨 영향력이 있겠냐마는 만화를 올리면 그래도 독자분들이 의리 선수에 대한 응원과 칭찬을 조금 더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요. “우리 의리는 진짜 귀한 선수예요. 많이 사랑받고 행복해야 할 친구예요”하고 쩌렁쩌렁 외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의리 선수가 저랑 서로 팔로우 상태라 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른 팬들의 응원까지 같이 담아 그렸는데 좋아요로 흔적을 남겨줬더라고요. 메시지를 보내주신 팬들이 너무 감사했고, 이 그림만은 함께 완성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의 마음과 응원이 전달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요. 의리 선수를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메이저리그 아니면 못 보냅니다. 이왕이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으면 좋겠네요!
#야구, 내 삶의 일부
특별히 제작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앞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팬들의 이야기를 더 그릴 예정이거든요. 제 일상뿐 아니라 야구팬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KIA 팬분들뿐 아니라 다른 구단 선수들도 팬들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그려보고 싶어요.
비시즌엔 어떤 콘텐츠들이 올라올 예정인가요?
타이밍을 놓쳐서 못 그렸던 직관 후기들을 올려볼까 합니다. 아무래도 매일 그리기 힘들다 보니 놓친 것들이 꽤 있어서요.
인생에서 야구가 몇 퍼센트 정도의 지분을 차지할까요?
답하기 어려운데요? 너무 많이 차지한다고 하기에는 내 일상을 다 주는 것처럼 보이고 아니라고 하기엔… 고민은 되는데 50% 이상인 건 확실해요. 근데 살아가는 방식 자체도 야구처럼 흘러가게 되던데요? 하루를 보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괜찮아. 한 점만 주고 끝내자’ 생각합니다. ‘나 지금 투 스트라이크를 먹었지만 언젠가는 안타를 쳐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일상을 보내요.
야구의 매력이 뭘까요?
삶을 같이 살아내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친 하루의 끝에 ‘그래도 야구는 이겼네’하고 힘을 얻기도 하고, 피곤하지만 ‘주말에 직관 가야지’하고 손꼽아 기다려 보기도 하고요. 가끔씩은 누가 쓴 야구 일기를 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일상을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나 싶어요. 피곤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근처 야구장에 뛰어갈 수 있다는 게 참 즐거운 일이잖아요. 야구장은 익숙하면서 특별한 곳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야구팬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한마디가 있다면요?
세상에 영원한 건 절대 없다지만 그래도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팬이라는 거요. 애정의 정도는 크고 작기를 반복할 테고 야구도 봤다가 안 봤다가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팀의 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아무리 답이 보이지 않는 팀이라고 할지라도요. 여러분의 하루에 야구를 들이시고 평생을 약속하시기 바랍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팀이니까 영원히 같이 힘내요!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51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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