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의 정점, 만다린 오리엔탈

만다린 오리엔탈이라는 추억

Memories of Hong Kong

누구에게나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있고, 그런 시절은 추억과 그리움의 표상이 된다. 홍콩 센트럴 중심부에 우뚝 선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과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에서 화양연화의 시간을 보냈다.

홍콩에서 다섯 밤을 머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어느 호텔에 묵어요?” ‘만다린 오리엔탈’이라는 답을 하자마자 모두가 “와!” 하고 탄성을 내뱉는다. 까닭을 물으니 돌아온 답. “만다린 오리엔탈이잖아요. 그것도 홍콩에서!”

좋은 호텔을 가르는 기준이 숙박료라면 홍콩엔 이곳보다 더 “와!” 할 만한 곳이 많다. 하스피탤러티 업계가 저마다의 철학과 서비스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에서 ‘만다린 오리엔탈’이라는 브랜드의 지위는 늘 견고했다. 근거는 모두가 아는 사실에 있다. 2003년 4월 1일 이후 이 호텔과 늘 연동되는 이름 말이다. ‘대스타가 생을 마감한 곳’이라는 수식어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신생 호텔에겐 천문학적 액수의 광고 효과일 수도 있지만 1958년에 문을 열어 단숨에 ‘홍콩을 대표하는 호텔’로 군림해온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그런 것이 필요 없는 명소다. 그 비극은 오히려 사람들을 호텔로 더 끌어들였다. 홍콩 영화와 장국영에 대한 추억이 깊은 이에겐 더더욱. 친구에게 왜 부러워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을 했다. “장국영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잖아. 세상에 어떤 호텔이 그런 일을 치르고도 여전히 손님을 받을 수 있겠어? 만다린 오리엔탈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에서 그 어떤 사주도 받지 않은) 지인들이 나에게 보낸 질시에 가까운 부러움이 실은 어리둥절했다. 이국의 오래된 호텔이 이렇게 열정적인 팬들을 거느린 이유는 뭘까? 질문을 품고 금빛 부채 표식이 번쩍이는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으로 들어섰다.

붉은 벽과 금빛 장식장, 버터색 벨벳 소파로 꾸민 라운지를 지나 객실로 들어서면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의 원룸보다 더 넓은 욕실 한가운데엔 센트럴 지구의 마천루를 한눈에 담으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침대만 한 욕조가 놓여 있다. 귀한 이를 초대하고 싶게 만드는 응접실과 노트북 대신 양장 노트에 만년필로 일기를 써야 할 것 같은 오크 책상, 100% 실크로 만든 목욕 가운 같은 ‘디테일’을 다 둘러본 팀 포토그래퍼가 보내온 메시지 속엔 이런 멘트가 있었다. “유명한 홍콩 배우가 된 기분이에요.”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의 객실 안 풍경.

인테리어보다 더 인상 깊은 장면을 외출 후 돌아왔을 때 만났다. 응접실 탁자 위에 휘황찬란하게 부려진 다과, 값비싼 보이차엽과 고풍스러운 다구,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나간 옷을 새 옷처럼 완벽하게 갠 후 선반 위에 정갈하게 정리한 드레스룸, 각 맞춰 정돈된 책상 위 풍경을 보면 ‘집사’가 떠오른다. 자신이 돌봐야 할 존재의 동선, 취향, 상황에 맞게 배려와 케어, 순발력을 발휘하는 사람 말이다.

홍콩 귀족의 응접실을 연상시키는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의 1층 라운지.

“만다린 오리엔탈엔 오랫동안 전 세계의 귀빈을 비롯해 무수한 투숙객을 응대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곳까지 놓치지 않죠. 이곳의 운영진과 직원들은 작은 차이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최고’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다린 오리엔탈 그룹을 비롯해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홍보팀에서 일해온 마케터 L이 귀띔했다.

프렌치 다이닝 ‘앰버’의 키친 익스피리언스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

그 ‘작은 차이’는 2005년에 문을 연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The Landmark Mandarin Oriental Hong Kong, 이하 랜드마크 M.O.)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랜드마크 M.O.는 센트럴에서 가장 럭셔리한 건축물로 통하는 ‘랜드마크’라는 하드웨어와 만다린 오리엔탈 그룹의 하스피탤러티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해 탄생한 호텔이다.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에 자리한 뉴욕식 스피키지 바, 플리즈 돈 텔 (Please Don’t Tell).

호텔과 미디어에선 세계적인 스파,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모던한 인테리어와 센트럴 지구를 한눈에 담는 전망, 홍콩 최중심지라는 로케이션 등을 랜드마크 M.O.의 강점으로 꼽지만 내가 발견한 매력은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작은 진열장이다. 책상 서랍을 세로로 세운 크기 정도의 이 ‘저장고’엔 늘 투숙객을 위한 간식과 음료가 채워져 있다. 매일 홍콩의 전통 과자, 수제 초콜릿과 캔디, 아티장의 디저트가 올려진 아름다운 접시와 밀크티, 콤부차 같은 음료가 기다리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전 세계의 하이엔드 호텔을 다녀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런 어매니티를 본 적이 없어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공간 설계 단계부터 철저한 기획이 필요합니다. 만다린 오리엔탈이 머무는 이의 경험과 휴식에 얼마나 섬세하게 신경 쓰는지 잘 알 수 있는 예시죠.”

홍콩식 광둥 요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만와.

만다린 오리엔탈식 환대의 절정은 미식에 있다. 첫 경험은 랜드마크 M.O.에 자리한 프렌치 다이닝 앰버(Amber)에서 시작했다. 미쉐린 2스타와 그린 스타를 획득한 이 레스토랑은 파인다이닝의 메카로 불려도 손색없는 홍콩에서 미디어, 가이드북, 미식가가 앞다퉈 칭송하는 명소다. 올해로 이곳을 20여 년째 이끄는 총괄 셰프 리처드 에케버스(Richard Ekkebus)는 종종 ‘피에르 가니에르에게 사사받은’이라는 문구로 소개되지만 이제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이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다이닝, 앰버의 정찬 코스에서 만난 음식들.

홍콩의 식재료와 프렌치 퀴진의 화려한 조리 기술이 만난 식탁을 경험할 수 있는 앰버의 하이라이트는 ‘키친 익스피어리언스’. 이름 그대로 주방에 들어가 셰프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갓 만든 음식을 맛보는 경험이다. 셰프에겐 ‘성역’으로 여겨지는 주방 안쪽에 과감히 식객을 초대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리처드의 자신감과 예술에 가까운 플레이팅이 완성되는 과정이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다이닝, 앰버의 정찬 코스에서 만난 음식들.

홍콩식 정찬을 맛보고 싶은 이들은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으로 향하자. 11년 연속 미쉐린의 별을 획득한 만와(Man Wha)는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식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인테리어와 구룡반도의 휘황한 야경이 한눈에 담기는 뷰만으로도 들어선 보람이 있는 곳. 1968년부터 정통과 창의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광둥식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만와 바로 앞, 오브리(The Aubrey)는 홍콩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밤을 보낼 데스티네이션으로 제격이다. 2021년에 문을 연 이곳은 ‘아시아 베스트 바 50(Asia’s 50 Best Bars)’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홍콩 ‘바’ 신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모던 보이 시대 홍콩에 존재했던 살롱 같은 공간 안에서 일본의 이자카야와 결합한 바 문화를 선보인다. 일본의 질 높은 증류주와 홍콩의 식재료를 결합한 창의적인 칵테일을 비롯해 ‘칵테일 오마카세’, ‘샴페인 마스터 클래스’ 등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홍콩식 광둥 요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만와.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과 랜드마크 M.O.가 이끄는 대로 누린 홍콩에서의 여정이 끝나기 전날 밤, 첫날 품은 질문에 대한 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누구나 인생에서 그런 시절을 가졌거나 보낼 자격이 있고, 나는 만다린 오리엔탈에서 그것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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