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폰에 빠진 아이들, 교과서까지 태블릿…큰 걱정"

신수민 2024. 10. 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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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단계적 도입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문해력 학원을 찾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읽을 책을 고르고 있다. 신수민 기자
“저 사람 봐. 이제 책 많이 읽고 쓰기 연습도 열심히 해야 돼.”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서점. 주부 이모(43)씨가 서점에 걸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축하 포스터를 가리키며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책을 골라주고 있었다. 이씨는 “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 아이에게도 책을 더 많이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잖아도 요즘 부쩍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빠져 있어 걱정이 컸는데 이참에 종이책을 가까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모(41)씨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손을 잡고 문해력 학원에 들어섰다. 강의실과 책꽂이 주변은 이미 책을 골라 펼쳐 읽는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홍씨는 “내년부터 학교 교실에서 태블릿 PC로 수업한다는 소식에 고심 끝에 문해력 학원을 찾았다”며 “주위 학부모들도 난리더라. 아직 읽고 쓰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생 부모는 더욱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학부모들 사이에선 교육부가 내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교과서는 AI 기술을 접목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태블릿 PC를 기반으로 하며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1, 고1 수업에 우선 적용될 예정이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특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형성되는 시기인 초등학교 저학년생 부모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학원 문을 두드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홍씨는 “한번은 아들이 수학 문제를 풀다 ‘암탉’이 무슨 뜻인지 몰라 난감해하길래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주위 학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이제 막 책을 잡으려는 시기에 교실에서 종이책마저 사라진다니 결국엔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문해력 학원을 찾는 학부모들도 크게 늘고 있다. 대치동의 한 문해력 학원 원장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는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며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상담차 학원을 방문하는 학부모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학원은 올해 3월 개관 후 초등학교 저학년생 학부모들이 몰리면서 6개월 만에 3관까지 확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서도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균 점수는 2006년 556점에서 2022년엔 515점으로 급락해 OECD 회원국 중 하락폭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처럼 학부모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5월 국회에 제출된 ‘교육부의 AI 교과서 도입 유보에 대한 청원’에는 한 달 만에 5만 명 이상 동의했고 이에 따라 지난 8월엔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당장 태블릿 PC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얼마 전 시제품으로 연수를 받았다는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코로나19 때 초등학생들이 한동안 비대면 수업을 받으면서 기초 학력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졌는데 또다시 종이책 대신 태블릿 PC를 쓴다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도 “선생님들 사이에선 종이책과 병행할 수 있는 동안엔 태블릿 PC 대신 최대한 책으로 수업하겠다는 의견이 상당수”라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생에 대해서는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할 듯싶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7일 발표한 학생 문해력 실태 조사에서도 설문에 응한 교사 5848명 중 91.8%는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저하됐다’고 답했고 94.3%는 ‘디지털 보급으로 학생들의 필체 가독성이 나빠졌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찍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 해외 각국도 논란이 지속되자 보완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디지털 학습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도서 구입비 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또 유치원의 경우 디지털 기기 사용 의무화 방침을 백지화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쓰기 수업을 초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다시 지정했다.

정현선 경인교대 교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도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 공론화 노력마저 부족하다 보니 교육 현장의 우려만 커진 상황”이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미칠 장기적인 영향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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