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양의 백합은 길상이고, 서양의 백합은 성모의 꽃일까?

백합은 순백의 꽃잎과 은은한 향기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꽃입니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에서 백합이 지닌 의미는 크게 달랐습니다. 동양에서는 장수와 다산,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반면, 서양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자 순결의 표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같은 꽃이 문화권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 셈입니다.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백합은 오래전부터 혼례와 제례에서 길상화로 쓰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년해로(百年偕老)”의 뜻을 담아 혼례 장식에 사용했고, 한국에서도 백합은 부부의 화합과 다산을 기원하는 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한 백합은 뿌리가 약재로 쓰여 기침과 열을 다스리는 데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실용적 가치와 더불어 백합의 긴 수명은 ‘장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 백합은 삶의 번영과 건강, 집안의 화합을 기원하는 길상적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서양에서 백합은 기독교 신앙과 깊이 결합되었습니다. 성서 속에서 백합은 순결과 희생을 의미하며, 특히 성모 마리아와 연결되어 ‘마돈나 릴리(Madonna Lily)’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에서는 성모 마리아 곁에 백합이 자주 그려졌는데, 이는 그녀의 순결과 신성함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백합은 부활과 희망의 상징으로 장례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서양에서 백합은 신앙적·영적 의미가 강한 꽃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꽃이지만, 문화적 배경은 백합의 상징을 달리했습니다. 농경 사회와 가족 중심의 삶이 중요했던 동양에서는 백합이 실용성과 풍요를 강조하는 길상화로, 신앙과 영성이 중심이었던 서양에서는 성모와 결부된 성화의 꽃으로 이해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문화권의 의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백합이 결혼식이나 경사스러운 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서양에서는 교회 장식과 추모 의례에서 백합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백합은 결국 같은 꽃이지만, 문화적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상징으로 변주된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