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황제 대접을 받고'' 군화마저 끈없는 군화를 신었다는 신병

군화 끈도 묶지 못하는 신병, '똑딱단추 군화'의 탄생

1996년, 국가대표 바둑 천재 이창호 9단이 대한민국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운동화만 신던 그는 군화 끈을 묶는 법을 몰라 집합명령마다 연병장에 늦게 나오기 일쑤였다.

결국 조교가 밤새 한땀 한땀 바느질로 ‘똑딱단추’ 달린 군화를 직접 만들어주며, 이창호는 세계 군사상 처음으로 단추 달린 군화를 신고 훈련을 받았다.

황제복무의 상징, 국보급 천재에게 내려진 특례

이창호의 군대생활은 이미 입대 전부터 '국가 보물' 취급이었다.

수많은 국회의원이 보호 진정서를 내고, 군대에서도 바둑으로 국위선양을 계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 병역특례까지 제공됐다.

4주간의 신병훈련 후에는 한국기원을 부대로 배정받아 활동하며, 병영 체계에서도 최고의 우대와 자유를 보장받았다.

바둑을 두려면 1스타 이상, 영관급 이상만 대국 허용

이창호와 바둑을 두기 위해선 신병이나 부사관, 일반 장교는 엄두도 못 내고, 군 대령(1스타)급 이상만이 맞상대할 자격이 있었다.

심지어 군사령관, 사단장, 연대장이 자진해서 수시로 기회를 청하며, ‘황제복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따라붙었다.

일부 군 대회에서는 이창호가 모든 영관급 장교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장면이 전설로 남았다.

일상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 끈·머리·생활 자체가 고문관급

어릴 때부터 바둑에만 몰두했던 이창호는 세수·머리감기조차 부모나 제자가 대신해야 했고, 찍찍이 운동화만 신다 군화 끈을 평생 처음 묶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일반 생활 속 기본적인 동작에 서투르지만, 바둑에만 몰입한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일과생활의 엉뚱함마저 “천재적 결핍”으로 받아들여졌다.

군대 내에서도 조교, 동기 모두 웃으며 받아주었고, 똑딱군화는 조교들의 창의성과 이창호의 인간적 면모가 합쳐진 에피소드로 회자된다.

군대 복무뿐 아니라 병역 특례·복지까지 파격 혜택

이창호의 복무는 예술·체육요원 특례로 공식 군대 징집의 틀을 바꾸었고, 소속 부대장은 한국기원 이사장, 주요 임무도 바둑 대국과 해설에만 집중됐다.

훈련소 생활 후엔 전국 바둑대회와 국제 행사에서 명예직 병사로 활동하며, 군인 신분이지만 사실상 자유직업인의 삶을 계속 유지했다.

이례적인 우대는 당대 바둑계와 한국 사회에서 이창호에 대한 존경과 인정의 결과였다.

똑딱군화, 황제복무를 칭찬하는 사회적 반응과 후일담

묶기 귀찮은 군화 끈을 대신한 똑딱단추 군화는 천재의 특성·결핍을 이해하는 사회적 관용과 창의력의 상징이 됐다.

조교의 애정 있는 바느질과 간부들의 우대는 이창호만이 누릴 수 있는 "논란 없는 황제복무"로 기록된다.

바둑에 모든 삶을 바친 영웅에게 한국 군대조차 황제 대접을 한 사례는 지금까지도 "천재에겐 특별함이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