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제의 잔재는, 남아있다"…정동윤 감독, '경크2'의 뚝심
[Dispatch=김지호기자]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경성크리처'가 처음 나왔을 때, 반응은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게, 많은 사람들이 '크리처'만을 기대했다. 밀려오는 1945년의 비극에, (당황스런) 고통을 느꼈을 지 모른다.
그로부터 1년, '경성크리처2'가 베일을 벗었다. 극중 79년의 시간이 흘렀다. 빌런들도 추가됐다. 스토리도 결이 다르다. 기묘한 연쇄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금 더 '크리처물' 스러워졌을까?
우선, 크리처 액션은 세밀해졌다. 쿠로코들의 기묘한 움직임, 승조(배현성 분)의 촉수 액션, 호재(박서준 분)와 크리처의 혈투 등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불친절하다는 일부 불평은 피하기 힘들 것 같다. 실제로, 곳곳에 풀어놓은 떡밥을 완전히 회수하진 못했다. 시청자의 상상과 해석에 맡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경성크리처' 시리즈의 가치는 분명하다. 크리처물과 시대극의 트렌디한 공존이다. 시즌 1에는 일제의 만행을, 시즌 2에는 그들의 잔재를 유려하게 녹였다.
"메시지를 잃지 않으려 했어요. '용서와 망각은 다르다'는 거죠. 굳이, 주인공(호재)의 입으로 이런 이야길 내뱉게 만든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피하지 않고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디스패치'가 최근 종로구 소격동에서 정동윤 감독을 만났다. '경성크리처2' 연출자로서의 뚝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메시지 | "그들의 잔재는, 곳곳에 있다"
'경성크리처2'의 메시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짙어진다. 우선, 전승제약과 '나진'이 그렇다. 일본 녹십자가 떠오른다. 실제로, 일본 녹십자도 731부대의 연관성이 제기된다.
"엔딩 쿠키 영상에서 나진이 생수병에 담겨 전국에 유통되죠. 2024년 서울인데, 지하철 광고판이며 광화문에 전승제약의 영상이 송출되고요."
정 감독은 "모습만 바꾼 그들이, 마치 친절한 기업인 것처럼 또는 그림자처럼 일상으로 파고들어가는 설정을 하고 싶었다. 이런 잔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4년에 역사가 시작된 게 아니잖아요? 1945년, 그 이전부터 이어져 왔죠. 시즌 1과 2의 관통하는 연결고리로 시대적 잔재를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시즌2의 서울도 암울하다. "영화 '괴물'이 다루는 서울도 있고, 로코가 다루는 예쁜 서울도 있다. 우린,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티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밝은 곳에서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림자 같은, 음울하고 어두운 콘셉트가 있었죠. 반대로 엔딩은 화사한 색감을 선택했어요. 어둠을 뚫고 나온 호재와 채옥을 뜻합니다."
◆ 로맨스 | "미완성의 사랑, 보고 싶었다"
'경성크리처2'가 첫 번째로 내세운 테마는 시대의 잔재다. 두 번째는,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멜로였다. "둘의 이야기가 완성돼 가는 걸 보여주는 것도 가장 큰 목표였다"고 밝혔다.
"1945년, 그 긴박했던 일주일은 당사자들의 인생에서 큰 임팩트로 남았을 겁니다. 그들의 사랑은 아픈 비극을 함께 하며 겪은 전우애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해요."
시즌 2는 79년이라는 시간을 점프한다. "그 간극을 상상해 보면, 채옥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죽었다 생각한 사람(호재)이 다시 나타났을 때 얼마나 감정이 휘몰아칠까"라고 말했다.
"만일 1945년의 그 참혹했던 시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너무 평범한 일상에서 둘이 만났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맛있는 것 먹고, 데이트하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면, 채옥은 시즌 1에서부터 그런 생활을 그려왔다. 소박하고, 안온하고, 평온한 일상을 말이다. "우리한테도, 평범한 날들이 올까요?"라며 진심으로 바랐다.
"태상은 그 여자에게 계속 평범한 날들을 만들어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시즌2에서 그녀에게 나진을 없애주고, 안테나 할머니에게 맡겨 평범한 생활을 하게 해준 거죠."
◆ 액션 | "액션에서도, 비극을 바랐다"
둘의 애틋한 멜로는 액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 감독은 "화려하게 보여지는 액션도 당연히 좋다"면서도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에 기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1부 인트로에선 쿠로코를, 3부에선 채옥의 스피드를, 5부에선 큰 스케일의 절제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채옥과 태상이 서로 만나러 가는 감정에 더 집중하게끔 말입니다."
정 감독은 "5부는 멋지게 죽이는 게 초점이 아니었다. 묵직하게 한방씩을 날리는 것"이라며 "감정 기반 액션이 중요했다.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다"고 짚었다.
"박서준과 한소희가 액션을 하면서도 얼굴에서 감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기울였죠. 이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의 활약상이 인상깊다. "액션하면서 표정을 짓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런데 박서준도 욕심이 나서, 끊어 찍어야 되는 부분에서도 계속 감정을 유지하려 애쓰더라"고 회상했다.
"한소희는 여리고 약해 보이는데, 하기 시작하면 액션을 정말 잘 합니다. 속된 말로 '간지'가 난다고 해야 할까요? 거기에 감정이 풍부한 얼굴까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 정동윤 감독 | "다시 돌아가도, 경성크리처"
시즌 1이 공개되고, 정동윤 감독의 고민은 깊었다. 불호 반응들이 신경쓰여서였다. 정 감독은 "성적이 나오고 나서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다시 편집실에 들어갔다. 회차별 시간을 더 줄이고, 불필요한 신은 쳐냈다. 다소 불친절할 수 있어도, 과감하게 잘랐다. 그는 "시청자들의 해석을 환영한다"고 미소 지었다.
"한없이 설명적인 느낌이 드는 걸 경계했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포인트에 확 이야기를 풀기보다, 파편적으로 던지고 싶었어요. 시청자들이 상상하고 해석하길 바랐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터졌다. 인기 예능 '흑백요리사'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톱 10 시리즈 2위를 유지 중이다. 글로벌 시청자들의 호응도 뜨겁다.
"결과가 좋게 나오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다시 돌아가 이 이야기를 기획한다 해도, 도전할 것 같아요. 그만큼 메시지에 공감했고, 촬영 역시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P.s. 마지막으로, '디스패치'가 '경성크리처2'의 핵심 대사(7회 오프닝)를 뽑았다. 이 메시지만으로도, 시청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승조 : 근데, 형 왜 계속 싸우는 거야? 이기지 못할 거란 거 알잖아.
호재 :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야. 잊지 말라고 싸우는 거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지 말라고. 그들이 한 짓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미안하라고. 미안함 못 느낀다면, 죄책감 정도는 갖고 살라고. 죄책감조차 들지 않는다면, 걸리적거리고 성가시라고. 불편하라고. 그래야 걔들도 잊지 않을 거 아니야.
승조 : 용서할 순 없는거야?
호재 : 사과할 맘도 없는 놈들한테 무슨 용서를 해. 그런 적 없다고, 없던 일이라고 저렇게 시치미를 떼는데. 거기다 대고 용서해준다는 거 자체가 웃긴 거 아니야?
승조 : 그래도 다 지난 과거 일이잖아. 그땐 어쩔 수 없는 시대였고.
호재 : 그렇지. 시대가 그랬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 사람이니까. 근데, 잘못된 걸 알았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훨씬 더 끔찍해질 걸?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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