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사던 차' 에서 '있어도 안 사는 차' 3세대 카렌스가 몰락한 이유

올란도의 공세에 맥을 못추고 있던 2013년, 기아는 야심차게 준비한 카렌스의 3세대 모델을 투입했습니다. 최신 패밀리룩을 적용해 날카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인상으로 꾸며진 전면부, LED 면발광을 더해 고급스럽게 마무리 한 후면부는 물론 스포티한 디자인의 대형 알루미늄 휠과 과감하게 높인 A필러, 극단적으로 줄인 리어 오버행으로 미니밴이라기보다는 스타일리시한 해치백에 가까운 생김새였죠. 이후 등장한 '올 뉴 카니발'을 그대로 줄여놓은 듯한 생김새라 그런지 육안상으로 좀 작아 보였는데요. 이 작아 보이는 디자인 기분 탓이 아니었죠.

실제로 휠 베이스를 제외한 크기가 전작 대비 작아졌어요. 이 3세대 카렌스는 앞서 북미 시장에서의 부진한 성과를 확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MPV가 환영받는 유럽 시장에 집중해 개발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작은 차체의 뛰어난 공간 활용성을 제공하는 B 세그먼트급 소형 MPV가 인기를 끄는 트렌드에 맞춰 다시금 플랫폼을 소형화하는 과감한 결정을 한 건데요. 신차가 나올 때마다 점점 커지는 것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외려 작아진 신차는 참 어색하게도 느껴졌습니다. 늘 같은 가격에 큰 덩치를 제공했던 혜자로운 카렌스였기에 그 분위기가 더 싸늘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작은 차체에서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디자인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렸죠. 나름 확실한 2박스 디자인을 유지했던 2세대 모델과 달리 전면 유리창을 최대한 앞으로 배치하는 '캡 포워드' 설계로 보닛이 짧아지면서 얼떨결에 1.5박스 미니밴 체형을 갖게 됐습니다.

실내 면적과 개방감을 키울 수 있고 공기저항, 차가 스포티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는 디자인이지만, 작은 차일수록 차가 짧아 보인다는 부작용이 있죠. 무엇보다 강한 선과 면을 앞세워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나와 내 가족을 거뜬히 시켜줄 것 같아 보이는 경쟁차 올란도에 비해 수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 디자인, 설치류 같은 생김새로 전작보다도 가벼워 보인다, 빈약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실내 역시 승용 감각이 두드러졌습니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2개의 패널로 입체감을 더한 대시보드, 기어 레버는 아예 보편적인 위치까지 내려와 이제는 소형 크로스오버나 세단의 실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새였죠. 또 어두운 플라스틱과 우레탄, 금속 느낌의 내장재, 기아차의 브랜드 컬러인 붉은색 조명으로 꾸며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전작의 고리타분한 느낌을 걷어냈어요.

겉에서 짐작했듯 쭉 뻗은 앞유리로 전방 시야가 상당히 쾌적했고, A필러의 쪽창은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 사각지대를 해소해줬습니다. 이 널찍한 유리창을 커버하기 위해 와이퍼 암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탠덤' 방식이 아닌 국산차에서는 보기 드문 '대향형' 와이퍼가 장착된 것도 독특했죠. 여기에 버튼 시동 스마트키, 스티어링 휠 열선, 앞좌석 통풍 시트 같은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 않는 편의 기능과 함께 후방 카메라를 포함한 8인치 내비게이션에 스마트폰으로 원격 시동, 온도 조절 등을 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시스템 'UVO'를 더한 것도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비록 차는 작아졌어도 거주성과 실용성만큼은 이름값을 충실하게 했죠. 편안한 2열 시트, 제대로 된 암레스트를 갖췄고 뒷좌석 승객을 위한 송풍구와 열선 시트, 심지어 고급 중형차에나 가야 있는 측면 커튼까지 챙겨 여전히 가족과 함께하기에 부족함 없는 뒷좌석 공간을 제공했어요. 작은 차체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거대한 파노라마 썬루프도 경쟁차 대비 우세한 부분이었죠.

이 밖에 2열 바닥, 트렁크 하단 같은 곳곳의 빈 공간들을 재치있게 활용해 꽤나 실용적인 수납 공간을 조성했고, 이번에도 등받이 부분에 경사는 있었지만 시트를 모두 접으면 차급 이상의 광활한 적재 공간이 펼쳐지는 것도 여전했습니다. 또 전통적으로 7인승만 판매해왔던 이전과 달리 기본 5인승, 3열 시트는 옵션으로 변경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했죠.

파워트레인은 모두 최신 사양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주력인 4기통 2.0L LPI 엔진은 신형 누우 엔진으로, 오래전 단종됐던 디젤은 현대기아 중형차 라인업에 두루 쓰이던 1.7L 감마 엔진으로 부활했어요. 변속기는 6단 수동 및 6단 자동 변속기가 매칭됐죠. 두 모델 다 무난한 힘을 제공했고, 소형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주행 감각도 한결 가뿐해졌습니다. 둔중한 느낌이 있었던 전작에 비해 코너링이 깔끔해졌고 고속 주행도 의외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요. 이 시기 기아차 라인업에 폭넓게 적용된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 'C-MDPS'의 이질적인 조향 질감, 특히 대대로 내려오던 후륜 독립형 서스펜션을 일체형 토션빔 서스펜션으로 갈아치운 것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힘들었습니다.

이후 2015년 하반기 출시된 2016년형 모델부터는 그 사이 엄격해진 'EURO6' 배출가스 기준에 대응한 개선형 디젤 엔진, 그리고 기존의 토크 컨버터 6단 자동변속기를 건식 7단 DCT로 변경했습니다. 덕분에 가속 성능과 효율이 개선돼 장거리 및 고속주행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알맞는 파워트레인을 갖추게 됐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는 내외관 디자인과 편의장비를 개선해 상품성을 보강한 '더 뉴 카렌스'가 출시됐습니다. 송곳니를 연상시켰던 범퍼와 안개등 디자인을 수정했고 크기를 키워 헤드램프와 하나가 된 라디에이터 그릴, 새로운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을 적용해 꽤나 공격적인 인상으로 거듭난 것이 특징이었죠.

뒷모습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했지만, 범퍼 하단에 스키드 플레이트를 덧대 전면부의 터프한 이미지를 끌어왔습니다. 직전 모델보다 조금 멋스러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형차처럼 보이는 짜리몽땅한 차체, 비대해 보이는 헤드램프의 크기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그대로였지만요.

페이스리프트 모델답게 실내 역시 큰 변화는 없었지만, 기존 4개였던 트림을 2가지로 간소화했고 통풍 시트, 뒷좌석 측면 커튼 등 최고급 트림에만 제공되던 옵션을 패키지로 묶어 하위 모델에도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외에도 후측방 사각지대 경고나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최신 사양을 탑재해 트렌드에 발맞추는 것도 좋은 부분이었죠.

끝물인 2018년부터는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에 따라 1.7L 디젤 사양이 빠졌고 주력인 2.0L LPI 사양만 판매를 이어가다 지난 2018년을 끝으로 아쉽게도 후속 없이 단종됐습니다.

2세대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 신형 3세대 카렌스에 대한 기대감 역시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확인한 결과물은 실망스러웠어요. 준중형 크루즈의 플랫폼을 쓴 경쟁차 올란도를 지나치게 의식한 걸까요? 전작의 중형 플랫폼에서 다시금 소형차 플랫폼으로 회귀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여기에 차가 작아졌다고 가격까지 작아진 것은 아니었죠. 물론 사양면에서 전작 대비 크게 좋아지긴 했지만, 이미 겉모습부터 실망한 소비자들은 내부를 들여다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LPG 연료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카렌스의 유일한 강점마저 희석됐어요.

없어서 못 사는 차였던 카렌스가 있어도 안 사는 차로 전락해버렸고 매월 500대 미만으로 부진한 성적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해외시장에서는 그럭저럭 판매되어 도합 21만여 대가 판매됐지만, 이는 전작에 비해 반토막난 수치였어요. 결국 현대-기아차 라인업 중에서 판매 기간 동안 쉐보레를 넘지 못한 거의 유일한 라인업이라는 치욕과 함께 장장 20여년에 걸친 국내 시장에서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전세가 역전되어 시장의 지배자가 된 올란도는 노를 젓나 싶었지만, 기회를 위기로 바꾸는 쉐보레의 실책에 졸지에 국산 컴팩트 MPV 시장이 텅 비어버렸고,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BMW에서 나온 카렌스라고 불리는 BMW 2시리즈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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