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판결] 1977년 강간치상·강제추행 피해자와 가족 보복 살인 20대 '사형'

경북 상주군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나 국민학교 1학년을 중퇴한 A씨(26)는 이발사로 15년, 점원으로 2년을 근무했다. 1975년 3월 26일 강간치상 및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77년 4월 20일 가석방됐다.

강간치상죄의 피해자인 B씨와 강제추행 피해자인 C씨의 부모가 고소를 해서 3년간 옥살이를 한 A씨는 출소한 뒤 B씨와 C씨 부모에게 앙심을 품었다. 자신에게 위문 인사도 한 번 오지 않았고, 위자료를 주고 합의를 했는데도 재판에서 정상 참작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합의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1977년 5월 15일 오후 9시께 B씨의 아버지가 세를 준 이발소가 B씨 아버지 소유라고 착각한 A씨는 이발소에 침입해 주먹으로 거울 등 시가 1만8180원 상당의 재물을 손괴하고, B씨의 집 구멍가게에 낫을 들고 침입해 B씨의 아내에게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유리창문 등 시가 2만8780원 상당의 재물을 손괴했다. 밤 10시께는 강제추행 피해자 C씨의 할아버지 집에 침입해 낫을 휘두르면서 죽인다고 위협하면서 벽시계 등 시가 2만3000원 상당을 부쉈다.

경찰 수배를 받자 문경군 점촌읍 포교당에 도피한 A씨는 복수심에 불타 피해자들을 보복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977년 6월 9일 오후 7시께 흉기를 소지하고 상주군으로 다시 돌아가 보리밭 둑을 지나던 피해자 B씨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100m 떨어진 잣밭산으로 끌고 갔고, 녹이 슬어 자루가 빠진 흉기 대신 입으로 B씨 어머니의 입술과 귀를 물어뜯고 마구 폭행했다. 때마침 B씨 아버지가 만류하면서 전치 4주의 상해를 가하는 데 그쳤는데, A씨는 B씨 아버지를 논둑으로 끌고 가 돌로 B씨 아버지의 안면과 머리를 수차례 때려 살해하려다 전치 4주의 상해를 가해 실신시키기도 했다.

A씨는 집에 들러 도끼를 들고나온 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길을 지나던 행인을 도끼로 2차례 때려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마을 주민의 집에 들어가 몽둥이로 주민의 머리를 마구 때려 살해하려다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2시간 동안 흉기를 휘두르며 동네를 무법천지의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A씨는 강제추행 피해자 C씨의 집에 드어가 작대기, 도끼, 쇠스랑으로 C씨 어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하고, 중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려던 버스를 몽둥이로 내리쳐 시가 6만7000원 상당을 손괴하기도 했다.

대구지법 상주지원 합의부는 1977년 8월 25일 살인, 살인미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죄는 법치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극도로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에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여서 마땅히 가장 무거운 형으로 다스림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도 1977년 12월 15일 "원심의 양형은 타당하고, 결코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1부도 1978년 3월 28일 "피고인이 만취해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증거가 조작됐다는 피고인의 주장도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현저한 사유도 없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문 제공=한국심리과학센터(KAPS) 전성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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