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설록은 최근 작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2022년 매출 813억원, 영업이익 87억원. 모두 역대 최고치입니다. 최근 3년 사이, 연평균 31%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죠.
더 큰 의미는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는 겁니다. 장수 브랜드지만 3년 전만 해도 적자를 벗어난 해가 거의 없었습니다. 44년 전 뿌린 씨앗이 비로소 꽃을 피운 셈입니다.
최근 오설록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설록 팀은 “차를 마시는 경험에 집중한 시간이 쌓여, 브랜드가 됐다”고 말합니다.
Chatper 1. 시작 : 원료 향한 집착, 티메이커가 되다
오설록의 씨앗은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이 뿌렸습니다.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워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로 키워냈죠.
서 선대회장은 ‘원료’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동백기름을 직접 짜서 팔던 어머니에게 배운 자세였죠. 그가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60년대. 해외 출장에서 각국의 차 문화를 접하며 생각했대요. ‘우리나라 차는 왜 없을까.’
1979년,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에 돌밭을 사들이면서 아모레의 녹차 사업이 시작됩니다. 돌이 얼마나 무성했는지, 지금도 ‘돌송이차밭’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서성환 회장은 무수한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차 사업이냐. 그게 돈이 되겠느냐. 기록을 뒤져보니, 이 질문에 그가 1985년 남긴 답변이 있더군요.
“우리 국민이 꼭 커피만 마셔야 하나요. 우리 차가 커피인가요? 우리는 1200년 전인 신라 시대부터 차를 마셔왔어요. 전통을 찾아야 해요.”
당장 돈이 되지 않을 거란 것, 서 회장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투자예요. 우리는 몇십억을 투자해 작년에 5000만원어치를 팔았어요.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밑진 걸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때 가서는 녹차 사업이 복이 될 거예요.”

왜 제주도였을까요. 녹차 재배는 까다롭습니다. 연평균 14℃ 이상의, 다습한 기후가 필요하죠. 마침 제주 중산간 지역이 그랬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온화한 땅. 일본의 유명 차 산지와도 비슷한 환경이었죠.
그럼 왜 하필 돌무더기 땅을 산 걸까요. 함께 제주도 땅을 개간했던 한 임원은 이렇게 전했어요.
“제주말로 ‘멀왓’이라고 해요. 자갈도 아니고 암반이 쫙 깔린 밭이요. 회장님께 ‘좋은 땅 다 두고 왜 이런 땅입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말씀하세요. ‘좋은 땅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잖아요. 이 땅은 우리가 아니면 황무지가 됩니다.’”
도로도, 수도도, 전기도 없던 땅. 서 전 회장은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제주를 들러 밭을 직접 돌봤다고 합니다. 점심을 빵으로, 저녁을 막걸리로 때우면서요. 그렇게 20년간 일군 차밭이 100만 평에 달합니다.

Chapter 2. 한국 최초의 녹차 브랜드, 시장에 씨앗을 뿌리다
돌밭을 개간한 이듬해인 1980년, ‘설록차’란 브랜드가 출발했어요. ‘눈 덮인 한라산에서 생산된 깨끗한 녹차’라는 뜻입니다. 시작은 티백이었습니다. 건강에 좋다는 메시지를 담아 천수, 만수와 같은 이름의 제품을 출시했어요.
하지만 녹차가 단숨에 대중화되지 못했어요. 커피믹스가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커피믹스에 비하면 녹차는 씁쓸하고 떫었죠. 웰빙 붐을 타고 매출은 천천히 성장합니다. 1996년 연 매출 300억원을 넘기지만 이내 정체기가 찾아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설록이 아모레에서 분사하던 2019년까지. 녹차 사업의 연 매출은 400억~70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진출한 이후, 한국의 커피 시장이 무섭게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오설록만의 가치를 발굴해야 했어요. 오설록은 직접 찻잎을 길러 차를 만드는 ‘티 메이커’ 브랜드로서의 위상에 주목했습니다.
의외로 세계적 차 브랜드 중에서도 찻잎까지 직접 생산하는 메이커는 거의 없습니다. 싱가포르 브랜드 TWG나 영국 브랜드 포트넘앤메이슨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찻잎을 사들여 다양한 맛을 만드는 딜러죠.
오설록은 티 메이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갓 수확한 햇차, 직접 손으로 딴 찻잎… 2001년 제주 녹차 산지에 세운 오설록 티 뮤지엄은 이런 스토리텔링에 힘을 실어줬어요.
프리미엄의 길을 택했지만, 좀처럼 브랜드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래 팔아 온 ‘현미 녹차’ 티백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2014년, 아모레는 중대 결단을 내립니다. 설록차 브랜드의 티백 사업을 아예 접기로 한 거예요.
“설록차 티백의 매출 비중이 80%일 때였어요 굉장히 과감한 결정이었죠.
서경배 회장님은 브랜드에 가치를 더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당시 마트에서 녹차 티백이 1+1 할인 경쟁을 하던 때였거든요. 이대로는 프리미엄 차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다고 봤던 거예요.”
_서혁제 오설록 대표
2015년, 아모레는 모든 녹차 제품을 오설록이란 브랜드로 통일합니다. 찻잎을 기르고 팔던 장원이라는 농장 이름까지 오설록 농장으로 바꾸죠.
그리고 2019년, 오설록은 모기업에서 독립해요. 아모레 설록사업부에 입사해 24년간 마케팅과 상품기획을 맡은 서혁제 대표가 대표를 맡습니다. 화장품 중심 기업의 유일한 F&B 브랜드잖아요. 타 브랜드와 시너지가 크지 않다면, 독립해 경쟁력을 키우라는 게 이유였죠.
“위기감을 느꼈어요. 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분사라는 건 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거잖아요. 바깥에선 ‘그래도 모기업이 도와주지 않겠냐’고도 했지만,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철저히 홀로 생존해야 했죠.”
_서혁제 오설록 대표

Chapter 3. 공간 : 사람들은 프랜차이즈에서 추억을 남기지 않는다
오설록의 지난 5년 행보. 가장 눈에 띄는 건 매장의 변화입니다. 오설록은 ‘티하우스’라 불리던 매장을 한때 전국 20곳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이 티하우스가 지금은 단 5곳에 불과합니다. 제주의 티뮤지엄을 합쳐도, 오설록을 경험할 수 있는 매장은 전국 6곳에 불과한 거예요.
“다른 카페 브랜드들처럼 비슷한 매장을 늘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접점을 늘리면 고객도 늘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매장이 늘어도 고객이 따라 늘지 않더군요. 결국 차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지 않았던 거죠. 매장 수는 적더라도, 한번 오면 차를 제대로 즐기게 해야 한다는 게 새로운 방향성이었습니다.”
_서혁제 오설록 대표
숫자는 줄었지만, 경험은 증폭됐어요. 개별 매장은 모두 독립된 디자인과 콘텐츠를 품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 가회동에 들어선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을 볼까요. 이곳은 1960년대 세워진 양옥을 고쳐 만들었어요. 층마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인테리어와 콘텐츠를 채웠습니다.
1층 숍에선 ‘동백 플라워 가든’, ‘구운 녹차’처럼 매장에서 갓 볶은 차를 팔고 있어요. 2층 카페에선 기와 모양을 닮은 찰깨 와플 ‘북촌의 기와’ 같은 티푸드를 먹을 수 있죠. 3층 바설록에선 ‘볼케닉 한라티니’, ‘탠저린 북촌 슬링’ 같은 무알콜 티 칵테일이 마련돼 있어요. 모두 이 매장에서만 파는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티하우스 북촌은 매달 2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어요.
“공간마다 깊이를 달리했어요. 여러 번 오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했거든요. 꼭 그 매장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려면, 좀 번거로워도 매장마다 인테리어와 콘텐츠가 달라야 했죠.”
_유정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 팀장

한강진역 인근 페이스갤러리에 있는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은 어떤가요. 이곳은 다양한 스피릿을 섞은 티 칵테일을 팝니다. 이태원 인근의 힙스터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녹차를 제안하고 싶었던 거예요. ‘로키 포트레이트’란 칵테일은 제주화산암차에 싱글몰트 위스키 탈리스커를 섞은 음료예요.
2023년 3월에 리뉴얼한 오설록 티하우스 현대미술관점은 ‘프레시 말차 샷’이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말차를 에스프레소 잔에 담아 말차 초콜릿과 함께 마실 수 있게 했어요. 에스프레소 바의 유행을 녹차에 접목한 거죠.
하나하나의 매장에 특별한 콘텐츠를 부여한 전략. 방향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5곳 매장의 매출이 과거 더 많은 매장을 운영하던 때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2년 오설록의 매출은, 20곳 훨씬 넘는 매장을 운영하던 2015년의 매출보다 1.5배 가량 높습니다. 온라인 판매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소수의 매력적인 공간도 성장에 한몫했죠.
더 큰 수확은 브랜딩입니다. 압도적인 매장 경험은 브랜드 가치를 단숨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죠. 최근 오설록 매출이 급증한 건 온라인 선물하기의 영향이 큽니다. 이 역시, 오프라인에서 다진 단단한 브랜드 덕분이라고 회사는 분석합니다.

제주 티뮤지엄을 리뉴얼하고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며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는 오설록.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롱블랙에 가입해서 아티클을 더 읽어보세요!
#지식토스트_프리미엄 #롱블랙 #오설록 #녹차 #오설록티뮤지엄 #제주오설록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