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10억원 인데...5만명만 봐서 韓영화 산업을 붕괴시킬뻔한 영화

'최악의 영화 시리즈' 거장과 자본의 최악의 조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남긴 불꽃과 그 저주

2002년 대한민국,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2,500원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서울 충무로에서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제작비 100억 원의 벽을 돌파한 무려 110억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었다. 현재의 가치와 영화계 체감 물가(기술자 임금, 제작 비용 상승 등)로 환산하면 약 400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자본이 투입된 영화였다.

여기에 당시 이동통신사(SK텔레콤) 광고를 통해 'TTL 소녀'라 불리며 전 국민적인 신비주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모델 임은경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무엇보다 관객과 평단이 이 영화의 성공을 확신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메가폰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장선우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장선우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추앙받았고, 박찬욱을 비롯한 당대의 천재 감독들이 조감독을 자처할 만큼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었다. 자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철저하게 예술적 낭만주의를 고수하던 거장과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자본이 만난 결과물, 그것이 바로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이다.

콘티는 죽은 그림…'현장의 기(氣)'를 쫓던 기행의 시작

블록버스터 영화는 분초 단위로 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정밀하게 짜인 설계도가 필수적이다. 제작사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수천만 원을 들여 완벽한 콘티북을 제작했고, 국내 최고의 무술 팀까지 합류시켰다.

그러나 촬영 첫날, 장선우 감독은 정교하게 준비된 콘티북을 구석에 처박아두며 스태프들 앞에서 돌발 선언을 했다. "짜여진 콘티는 죽은 그림이다. 나는 현장에 흐르는 기(氣)를 찍겠다."

이러한 감독의 '기운 연출론'은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참사는 부산에서 진행된 대규모 해상 촬영(머니 시퀀스)에서 발생했다. 중무장한 특수부대 '시스템 요원'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 수백 명이 한여름 방탄복을 입고 땀을 흘리며 대기했고, 수십 대의 경찰차와 헬기까지 총동원된 초고가 촬영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감독이 사인만을 기다리던 순간, 모니터 앞에서 바다 안개를 바라보던 장 감독은 문득 "오늘은 기운이 안 좋네. 바다의 기가 탁하고 빛도 마음에 안 드니 오늘은 접자"며 철수를 명령했다. 그렇게 하루 만에 공중으로 날아간 수천만 원의 제작비는 오직 감독의 '영감 비용'으로 소모되었다.

불어나는 제작비를 견디다 못한 제작사가 계획대로 촬영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자, 장 감독은 심기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촬영장에서 돌연 잠적해 버렸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나보다 더 좋은 감독을 만나시오"라는 무책임한 문장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제작사가 급히 대타 감독을 영입해 현장에 투입했으나, 후임 감독은 현장에 도착한 뒤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0억 원대 영화에 마땅히 있어야 할 시나리오별 일정표는 고사하고, 단 한 장의 콘티북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오직 잠적한 장 감독의 머릿속과 현장의 느낌에만 의존해 진행된 상태였다.

로봇이 된 'TTL 소녀'와 조악한 문방구 소품

액션 신 또한 감독의 기묘한 철학에 난도질당했다. 화려한 총격전과 와이어 액션의 합을 짜온 무술 감독에게 장 감독은 "너무 인위적이다"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대신 배우들에게 "너희가 그 상황이라고 느끼는 대로 싸워봐라", "연기하지 말고 그냥 존재해라"라는 추상적인 디렉팅만을 내렸다. 이로 인해 주연 배우들이 폼나게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총을 갈기거나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기괴한 장면들이 속출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주연을 맡았던 신인 임은경이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해 세심한 지도가 필요했던 그녀에게 장 감독의 추상적인 주문은 독이 되었다. 구체적인 연기 지시를 받지 못한 그녀는 람보처럼 기관총을 난사하면서도 영혼이 가출한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국어책을 읽는 듯한 연기를 보였다. 대중은 이를 보며 "신비주의가 아니라 말을 시키면 안 되는 연기력이어서 광고에서 말을 안 시켰던 것이냐"며 조롱했고, 미성년자였던 어린 소녀는 방어막 없이 대중의 비난과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소품 또한 총체적 난국이었다. 가상현실 속 게임의 판타지를 표현하겠다는 명목하에 디자인된 총기들은 수십억 원의 소품비가 무색하게 문방구에서 파는 가벼운 플라스틱 장난감 수준으로 조악했다. 플라스틱 총을 든 배우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무게감도 실리지 않았고, 화면 속 무기들은 물이 차지 않은 물총처럼 가볍게 나뒹굴었다.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고등어 총, 그리고 "100억 원 보시했다 치자"

영화의 백미이자 관객들에게 물리적인 충격을 안긴 장면은 후반부 최강의 전설 무기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이 기대했던 최첨단 레이저 병기나 가상현실의 검이 아닌, 푸른 등의 싱싱한 생선 '고등어'가 최종 무기로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적들이 이 고등어 총을 빼앗아 쏘려고 하자, 총이 팔딱거리며 다시 생선으로 변해 주인에게 돌아가는 기이한 연출이 펼쳐졌다.

당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할 기력조차 잃은 채 상영 도중 극장을 탈출하기 바빴다. PC통신(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게시판에는 영화 단체들을 상대로 한 '성소 피해자 구원 추진위원회' 같은 패러디와 조롱의 글들이 도배되었다.

영화가 기록적인 참패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충무로를 발칵 뒤집은 것은 장선우 감독의 태도였다. 장 감독은 막대한 자본을 탕진한 것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대신 인터뷰 등을 통해 "100억 원, 그냥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布施)'한 셈 칩시다", "중성자 충돌 실험을 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는 것처럼 나는 이 영화적 실험이 그만 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식의 발언을 남겨 투자자들과 영화계의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들었다. 타인의 거대 자본을 공중 분해 시키고도 "좋은 경험이자 예술적 실험이었다"고 자부하는 오만한 태도였다.

씻을 수 없는 저주, 그리고 강제로 열린 대기업 시스템의 시대

'성소'는 전국 관객 약 14만 명(서울 관객 약 5만 2천 명)을 기록하며 극장 개봉 단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당시 손익분기점이었던 300만~400만 명의 고작 3.5% 남짓을 채운 처참한 성적이었다. 본작이 개봉한 해 한국 영화계 전체가 약 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중 약 20%가 오직 이 한 편의 영화 때문에 발생한 손실이었다.

이 실패의 여파는 지독한 '저주'가 되어 주변을 집어삼켰다.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 '기획시대'는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 사실상 공중분해 되었고, 저주는 배급사였던 '튜브엔터테인먼트'로 이어졌다. 배급사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대형 지하철 액션 블록버스터 '튜브'와 한국판 블레이드 러너를 표방한 '내추럴 시티'를 연달아 개봉시켰으나, 이들 역시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며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훗날 이 회사를 인수한 대표가 남은 자금을 들고 해외로 야반도주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결말까지 이어졌다. 성냥 하나가 출연 배우, 제작사, 배급사, 연쇄 기업들까지 모조리 태워버린 대형 화재 사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참혹한 실패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영화사에 거대한 분기점을 남겼다. '성소'의 대참패를 계기로 충무로에서 '감독이 왕이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감독의 예술적 직관과 막연한 낭만에 의존해 맹목적으로 거액을 투자하던 시대가 강제로 셧다운된 것이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대기업 자본이었다. 시나리오를 철저히 검증하고, 예산을 꼼꼼하게 통제하며, 철저한 데이터 기반으로 움직이는 '투자 배급사 중심의 시스템 시대'가 열리게 된 시발점이 바로 이 영화다.

비록 결과는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조롱받는 재앙이었으나, 가상현실과 게임 인터페이스를 스크린에 겹쳐놓고 '금강경'의 이치를 액션에 녹여내려 했던 무모한 미학적 시도만큼은 새천년(21세기)을 맞이했던 충무로의 가장 기괴하고도 거대한 몸부림으로 기억되고 있다. 장선우 감독은 이 작품을 끝으로 사실상 상업 영화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했다.

damovie2019@gmail.com(오타 신고/제보 및 보도자료)
저작권자 ⓒ 필더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