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41조원·순익 2조원 등 큰 성과
은행에서 증권사로…‘머니무브’의 구조화
CET1등 온갖 규제가 ‘증권 시프트’ 야기
“동일기능·동일업무·동일규제 적용해야”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축이 은행업에서 증권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은행업이 아닌 자본시장 중심의 ‘증권업 시프트’는 예고된 변화로 볼 수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시장 권력 시프트’는 숫자가 말해줍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 2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증권업계 최초의 ‘2조원 클럽’ 입성입니다. 미래에셋증권도 영업익 기준으로는 2조원에 육박합니다. NH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도 순익 1조원을 넘겼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해 농협은행은 1.8조원, 우리은행은 2.9조원의 순익을 시현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장부상 총자산이 100조~150조원 수준이고,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각 500조원 내외임을 감안하면 자산운용 효율성에서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증권사와 은행계열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증권업 대표 주자인 미래에셋증권의 시가총액은 2월 말 기준 41조원으로 59조원의 KB금융이나 46조원의 신한금융에는 못 미치지만 34조원의 하나금융과 26조원의 우리금융, 21조원의 기업은행을 넘어섰습니다.
시가총액은 시장이 평가하는 기업의 실질적 몸값입니다. 미래에셋증권이 우리금융·하나금융 시총을 앞질렀다는 것은 시장이 금융지주에 대해 자산은 크지만 성장성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입니다. 반대로 미래에셋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장부상 자산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투자와 글로벌 확장성 덕분에 '돈을 벌어올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일업종의 증권사 시총이 은행 증권 보험 신용카드 등 다수의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금융지주를 앞질렀다는 것은 단순한 주가 이벤트가 아니라 금융업의 지형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사상 유례없는 반도체 초호황과 이를 기반으로 한 증시 활황 추세가 지속된다면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대형 증권사가 5대 금융지주를 ‘체급’에서 추월하는 장면이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우리금융 시총 앞지른 미래에셋
국내 증권사들은 한동안 증권시장이 좋을 때만 돈을 버는 ‘천수답’ 산업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IB 트레이딩 자산운용 글로벌 법인 수익이 결합되며 체질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투증권의 2조원 순익 돌파는 단순한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 변화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미래에셋 삼성 NH 키움 등 다른 대형사들도 1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며 체급을 키웠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급격한 ‘머니무브’ 현상입니다. 시중 자금흐름이 완전 달라졌습니다. 증권사 고객 예탁금이 올들어 100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증권사가 취급하는 CMA 잔고 역시 10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반면 증시 활황에 따라 은행의 저금리 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뚜렷합니다. 요구불예금은 5대 은행에서 1월 한 달 동안만 20조원 이상 감소했습니다. 2년 이상 장기 예금 잔액도 통계 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줄었습니다.
퇴직연금 시장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안정적 자산운용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퇴직연금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증권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이후 낮은 수익률의 은행 퇴직연금 자산이 ETF(상장지수펀드) 투자 등이 가능한 증권사 계좌로 대거 유입되고 있습니다. 자산운용의 주도권이 이제 증권사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증권사는 은행을 제치고 국민의 노후연금을 직접 굴리는 ‘자산관리 허브’로서 자리매김하는 중입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증권사에 허용된 발행어음과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초대형 IB에 허용된 IMA(종합투자계좌)는 사실상 3~4%의 확정금리에다 수신 기능을 수행하며 은행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합니다. 지난해 말 한투증권이 출시한 1호 IMA는 나흘만에 1조원을 모집하며 완판될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을 보였습니다.
예금도 퇴직연금도 ‘증권사 시프트’
은행업에서 증권업으로의 ‘파워 시프트’는 단순히 이익 증가나 머니무브 현상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에셋증권과 박현주 회장이 보여준 글로벌 테크 투자 전략은 시장의 평가를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미래에셋은 스페이스X 등 글로벌 유니콘 기업에 대한 투자로 ‘국내용 증권사’ 이미지를 벗었습니다. 미래에셋그룹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스페이스X에 2억7800만달러(41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미래에셋캐피탈이 펀드를 조성하고 미래에셋증권(2300억원)과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 주요 출자자(LP)로 참여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와 xAI의 합병을 공식화하면서 합병 법인의 가치는 약 1조2500억달러(18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래에셋은 상장시 그룹 전체적으로는 3조원 이상, 미래에셋증권은 1조원 중반의 차익이 예상됩니다.
이런 성과들이 공개되면서 미래에셋증권은 단순히 국내 브로커리지와 PF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비상장 혁신 기업에 접근하는 플랫폼형 투자은행으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을 ‘국내에서 일론 머스크 생태계에 접근 가능한 유일한 프록시(Proxy, 대리) 주식’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됐습니다.
사실 국내 금융사 CEO 가운데 박현주 회장처럼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글로벌 전략가’입니다. 박 회장이 발굴한 스페이스X나 인도 증권사 인수도 모두 이런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현재 미래에셋 고객 자산 1100조원의 30% 정도가 해외 자산인데 이를 10년내 비약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박 회장의 계획입니다.
물론 미래에셋의 해외 투자는 아직은 상당 부분 미실현 평가이익이고, IPO 일정이나 기업가치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스토리입니다. 미래에셋은 이제 ‘글로벌 테크 자산에 베팅하는 투자 플랫폼’으로 인정받습니다. 이는 주가에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주요 은행들이 예대마진이라는 전통적 수익 모델에 머무는 동안 미래에셋은 ‘우주·AI·글로벌 유니콘’이라는 평가를 확보했습니다.
박현주가 만든 글로벌 플랫폼형 투자은행
그러나 이같은 권력 시프트를 증권사의 혁신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규제의 차이’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과 함께 금융산업의 증권업 시프트를 주도하는 한국금융지주의 김남구 회장은 지난해부터 은행업에 대한 꿈을 접었다고 주변 사람들에 자주 말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와 우리금융지주의 과점주주로서 역할해 보니까 은행업과 은행계열 금융지주에 대한 규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 역량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금융지주는 2016년 출범 당시 50% 지분을 갖는 카카오뱅크의 최대 주주였으나 지금은 27.1%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은행업에 대한 미련은 접고 오히려 보험사 인수를 적극 추진 중입니다.
은행업은 바젤Ⅲ 체계 아래에서 CET1(보통주자본)비율을 12~13% 이상 유지해야 합니다. 자산을 늘리면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하기에 자본을 더 쌓아야 합니다.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NSFR(순안정자금조달비율), 예대율에 지급준비금 의무까지 겹칩니다. 이익을 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은행들이 증권사와의 수익성 경쟁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족쇄' 중 하나가 바로 유동성 규제인 LCR과 NSFR입니다. 이 두 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 갑작스러운 자금 인출 사태(뱅크런)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바젤 III(Basel III) 규제의 핵심입니다.
김남구가 은행업 꿈 접은 진짜 이유
증권사는 대신 NCR(순자본비율)이라는 바젤 III의 CET1 비율 규제보다 훨씬 유연한 자본 건전성 지표를 씁니다. 그 결과 증권사는 발행어음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자금을 조달하고 바로 운용에 투입해 더 높은 수익률을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4%대 발행어음을 내놓지 못하거나 증권사보다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LCR과 NSFR이라는 '규제 안전벨트'를 매고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행과 증권사는 같은 금융회사지만 적용받는 규제와 철학이 다릅니다. 은행법은 ‘보호’ 중심이고 자본시장법은 ‘성장’ 중심입니다. 결국 은행과 증권사는 경쟁 전에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규제의 차이는 같은 증권업종 내에서도 차이를 만듭니다. KB증권 신한증권 하나증권 NH증권 등 은행계열 증권사는 금융지주사의 연결 CET1 규제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습니다. 따라서 성장이 구조적으로 제한받습니다. 반면 미래에셋 한투증권 삼성증권 등 비은행계 증권사들은 자본 배분의 자율성이 아주 높습니다.
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규제는 CET1 LCR NSFR같은 건전성 규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상생금융, 생산적 금융 같은 정책성 대출 압박에다 CEO 연임 제한이나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간섭까지 더해집니다.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은 법상으로는 주식회사지만 정부산하 공공기관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나 한국금융지주의 김남구 회장이 양종희·진옥동·함영주·임종룡 회장처럼 온갖 규제와 간섭에 시달렸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금융산업의 ‘증권업 시프트’를 놓고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은 “증권사는 이제 ‘그림자 은행’이다, 미래에셋 한투 삼성증권 등이 발행어음이나 IMA를 통해 사실상 은행의 역할을 하면서도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동일기능, 동일업무, 동일규제’ 원칙이 상식입니다. 과거라면 증권사가 망해도 파장이 미미하겠지만 이제는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발행어음이나 IMA는 확정금리가 보장되는 예금인데 그렇다면 예금보험료도 내야 하고, 엄격하게 CET1 비율도 맞춰야 합니다.
금융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은행업
그러나 정부당국의 생각은 다른 듯합니다. 증권사 자본은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에 투자해야 할 ‘모험자본’인 만큼 기능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금융당국은 기껏 초대형 IB에 대해서는 유동성 규제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이거나 부동산 PF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핀셋 규제를 검토하는 수준입니다.
결론적으로 은행은 당장 망하거나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금융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날 것입니다.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구조가 고착되고 성장의 서사가 증권으로 이동한다면 은행은 ‘안전하지만 성장이 둔한 산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은행이 방패를 들고 증권은 창을 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한쪽만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경쟁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형 증권사에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면 최소한 은행이 떠안는 ‘상생 금융’이나 ‘생산적 금융’ 같은 사회적 책무라도 분담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은행업과 증권업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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