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25분 밖에 안되는 드라마인데...1위 달성에 국민 힐링작된 드라마

자극의 시대에 띄운 담백한 에세이, '박하경 여행기'가 남긴 여운

글로벌 대형 OTT 플랫폼들이 화려한 반전과 피 튀기는 복수극, 강렬한 스릴러 장르물을 쏟아내는 최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청자들이 느껴야 하는 서사적 피로감은 이른바 자극의 과부하 상태에 도달해 있다.

자극적인 서사가 끊임없이 시청자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 동안,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무해한 정적과 일상의 공간을 열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2023년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는 거대한 음모나 악당 없이 오직 한 인물의 걸음걸이와 낯선 타인과의 스침만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포개어 놓는 보기 드문 작법을 제시한다.

총 8부작으로 구성된 '박하경 여행기'는 회당 25분 안팎의 짧은 미드폼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주인공 박하경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매주 토요일 단 하루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는 간단한 전제로 출발한다.

해남, 부산, 경주 등 국내의 여러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짧은 여정들은 비장한 각오나 인생을 뒤흔들 모험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우연히 만난 사람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낯선 곳에서 한 끼 음식을 먹는 행위가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이 드라마는 극적인 갈등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상실했던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감정의 회복력을 매우 섬세한 결로 살려낸다.주연을 맡은 이나영의 연기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축이다.

감정을 과장하여 폭발시키기보다 무표정 속에 미세한 시선의 떨림을 담아내며, 무심하게 길을 거니는 박하경이라는 인물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담백하게 조형해 냈다.

특히 경주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구교환과의 호흡은 정형화된 멜로의 공식을 아득히 벗어난다.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능청스러운 인물 이창진을 연기한 구교환과 이나영이 주고받는 무심한 대화는 강렬한 애정 표현 없이도 깊은 설렘과 여운을 형성한다.

여기에 매회 특별출연하는 한예리, 심은경, 조현철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은 박하경의 여정에 우연히 개입하는 타인으로서 각기 다른 온도감의 인생적 메시지를 보태어 서사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식사를 하거나 잠들기 전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하경 여행기'는 시청자들에게 이른바 밥 친구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서지만, 작품이 지닌 평론적 가치는 단순한 힐링물에 그치지 않는다.

인물의 내면 깊은 곳을 조용히 관찰하는 영상미와 카메라 워크는 시청자로 하여금 한 편의 정갈한 에세이를 읽는 듯한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장르물의 폭력성과 빠른 속도감에 매몰되어 있던 관객들에게 '박하경 여행기'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만의 토요일을 돌아보게 만드는 쉼표 역할을 확실히 해낸다.

자극이라는 이름의 조미료를 완전히 빼고도 충만한 여운을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한 이 웰메이드 미드폼은 오늘날 플랫폼 과잉의 시대에 정주행할 가치가 충분한 인생작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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