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만들어 다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도로 위에 보이는 차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미약했다" 아마도 이 말이 이 정도로 와닿는 브랜드는 흔치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삼성과 이별하고 태풍 로고만이 쓸쓸히 남은 르노코리아인데요. 이번에 소개할 이 모델도 르노삼성의 창대한 시작을 함께했던 주력 제품 중 하나였습니다. 출시될 때마다 시장 1위 아반떼를 맹렬하게 위협하며 매번 2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못한 상품 개선과 후속 모델의 부재로 아쉽게도 2세대만에 단종된 르노삼성의 준중형 세단 SM3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야심차게 출범한 삼성자동차 그리고 회사의 첫 번째 자동차 SM5가 중형차라는 만만치 않은 시장에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태풍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내 모든 기업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았던 IMF 외환위기 앞에서는 굴지의 대기업 삼성도 무사할 수 없었습니다. 누적 부채는 4조 원에 달했고, 닛산에 제공하는 로열티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차를 팔수록 손해라는 보고서도 올라왔죠. 어마어마한 투자비와 그로 인한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삼성은 결국 설비값도 건지지 못할 정도의 헐값에 자동차 사업부를 매물로 내놨고, 다들 아시다시피 프랑스 '르노' 그룹에 매각되어 '르노삼성 자동차'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르노는 당시에도 닛산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닛산의 한국 공장이나 다름없는 삼성차는 르노 입장에서도 굴러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어요. 현대차를 넘어서는 종합 메이커를 꿈꿨던 삼성차의 원대한 꿈은 물 건너갔지만, 다행히 회사의 규모 자체가 비교적 크지 않았기에 예정되어 있던 신차 출시도 서두를 수 있었습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중형차 다음으로 큰 파이를 차지하는 준중형 세단 시장을 공략 접근성이 뛰어난 차급인 만큼 보다 폭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브랜드의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처음부터 닛산의 모델을 생산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 부산 공장의 생산설비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이번에도 닛산의 모델을 들여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차명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SM5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기존 삼성차의 '알파뉴메릭' 장명법에 따라 'SM3'로 명명됐죠.
2002년 하반기 드디어 르노삼성의 간판을 내걸고 처음 선보이는 신차 SM3가 시장에 참전했습니다. 닛산 '세피로'를 베이스로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디자인을 수정했던 SM5처럼 이 모델 역시 닛산의 소형 세단 '블루버드 실피' 모델을 들여와 디자인을 일부 수정, 과한 장식을 제거해 오히려 원본 모델보다 깔끔한 인상이었어요.
아반떼, 라세티 등 동급 준중형 차들이 하나같이 어울리지도 않는 중후함을 어필하고자 고리타분한 생김새로 중형차를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반면, SM3는 앞서 SM5가 내세웠던 세련된 분위기와 함께 부드럽고 단아한 디자인을 내세워 주 타겟인 젊은 소비자들, 특히 여성 고객들에게 어필했습니다. 국산차에서는 보기 드문 오렌지 색상을 메인 컬러로 내세운 것도 눈길을 끌었죠. 이 밖에 최상위 트림에 한해 리어 스포일러를, 하위 트림에도 15인치 알루미늄 휠을 저렴한 가격의 옵션으로 제공해 차를 좀 더 멋스럽게 꾸밀 수도 있었어요.
실내 역시 외관만큼이나 차분하고 단아했습니다. 일본 태생답게 경쟁차 대비 전폭이 좁은 것이 약점이었지만, 밝은 톤의 내장 컬러, 수평 기조의 인테리어로 실제 수치보다 넓어 보이도록 유도해 이를 보완했어요. 앞좌석 열선 시트, CD 플레이어, 풀 오토 에어컨 같은 편의 사양은 물론 SM5와 공유하는 스티어링 휠 등 상위 모델 못지않은 고급감도 챙겼죠. 자잘한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수납함을 센터패시아 상단에 마련한 것도 독특한 부분이었고요. 동급 최초로 앞좌석 사이드 에어백을 추가해 승객 안전성을 강화한 것도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다만 경쟁차 대비 좁은 실내 공간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전장을 비롯한 차체 크기는 꿀리지 않았지만,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휠 베이스에서 큰 차이가 났고, 이는 곧 비좁은 뒷좌석 공간으로 이어졌어요. 오히려 차가 커진 지금은 혼자 내지 2명이 주로 타는 차급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준중형 세단을 패밀리카로 활용하는 경우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동급 대비 좁은 공간은 이 모델의 분명한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래도 트렁크 공간만큼은 섭섭하지 않게 챙겼죠.
파워트레인은 닛산제 1.5L 가솔린 엔진 단일 사양으로 5단 수동 및 4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습니다. 경쟁차에 비해 수치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생김새에 어울리는 무난한 출력, 동급에서 가장 나은 연비를 제공했어요. 여기에 경쟁차들과 달리 주요 소모품 중 하나인 '타이밍 벨트' 대신 반영구 '타이밍 체인' 방식을 적용해 정비 편의성을 높인 것도 깨알 같은 장점이었습니다.
또 당시 좋은 승차감의 전형이었던 물침대 승차감을 구현하기 위해 차급에 어울리지 않는 물렁한 서스펜션 세팅으로 낭창낭창했던 경쟁차들과 달리, 비교적 탄탄하게 세팅되어 자동차 전문 매체로부터 주행 감각이 꽤나 날렵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전문가들의 평가와 소비자들의 평가가 어긋나는 경우는 흔하죠. 듀얼 링크 타입의 독립형 후륜 서스펜션을 갖췄던 경쟁 차들과 달리 일체형 토션빔 서스펜션을 장비하면서 가뜩이나 뒷좌석이 좁은데, 승차감까지 투박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후 출시 2년 후인 2004년에는 개선된 파워트레인을 추가하고 상품성을 보강한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오래전 현대 '엘란트라' 이후 자취를 감췄던 1.6L 엔진을 선보였는데, 기존 1,500CC 미만이었던 국내 소형차 배기량 규정이 이 무렵 1,600CC로 상향 조정되면서 이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었죠. 수치상으로는 기존 1.5L 엔진 대비 '5마력', '1kgf.m'라는 아주 미미한 상승이었지만, 로직이 함께 개선되면서 체감될 만큼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뿐만 아니라 최신 'CVVT' 기술이 적용돼 배기량이 늘어났음에도 연료 효율은 오히려 높아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 밖에 앞서 SM5와 마찬가지로 불소 도장, 전용 스웨이드 시트, 리어 스포일러 등으로 내외관을 꾸미고 각종 고급 사양을 옵션으로 마련한 '에디시옹 스페시알', 즉 스페셜 에디션을 3,000대 한정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델에 한해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1DIN 타입 텔레매틱스 시스템 'NATE 드라이브'가 선택 사양으로 추가됐는데, 별도 요금제에 가입하면 내비게이션과 실시간 교통정보,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지금 'T맵'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서비스였죠. 보자마자 이 코딱지만한 액정으로 뭘 어떻게 하나 싶은데, 당연하게도 선택 비율은 아주 낮아서 희귀 옵션이 됐습니다. 이때 지금 같은 애프터마켓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이걸 고를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딱히 가격이 싸지도 않았으니까요.
출시 3년 만인 2005년,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상위 라인업과 발을 맞춘 'SM3 뉴 제너레이션'이 등장했습니다. 몰라보게 달라진 생김새와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서브네임으로 세대 교체를 이룬 풀체인지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쌍용 뉴 체어맨', 'GM대우 토스카'처럼 높은 수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델이었죠.
가장 먼저 확 달라진 전면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상위 모델인 SM5와의 연관성이 크지 않았던 직전 모델과 달리, 이번에는 르노삼성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반영해 최상위 모델 SM7과 유사한 분위기로 거듭났어요. 특히 하단 범퍼의 안개등이 방향 지시등을 품고 확 커지면서 거의 헤드램프와 비슷한 사이즈가 되어버렸는데, 어딘가 맹해 보이는 느낌과 뭔가 밸런스가 안 맞아 보이는 게 이 차를 처음 봤을 때 얼굴이 과장된 만화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측면은 전작의 실루엣이 남아있긴 했지만 새로운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로 신선함을 더했고, 뒷모습도 '포드 몬데오' 같은 수입차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리어램프, 차가 붕 떠보인다는 전작에서의 피드백을 반영했는지 하단으로 옮겨 치켜 올라간 엉덩이를 조금은 차분하게 눌러주는 등 전작의 인상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달라졌습니다. 차분하다 못해 심심했던 이미지가 한결 스포티한 분위기로 탈바꿈했어요.
다만 실내에서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후방감지 센서, MP3 플레이어를 연결할 수 있는 AUX 단자를 추가하고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센터패시아의 일부 디테일을 손보는 등 내장 품질과 편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긴 했지만, 체감상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변화가 미미했습니다. 오히려 잘 쓰던 수납함을 없애고 시계를 넣어놨죠.
특히 SM3의 가장 큰 불만으로 지적됐던 실내 거주성 역시 그대로였기 때문에 공간을 중요시했던 소비자들은 경쟁차를 선택하거나 아예 SM5 같은 상위 모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파워트레인도 동일했습니다. 기존 1.5L 출력을 미세하게 끌어올린 1.6L 가솔린 엔진과 5단 수동, 4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했어요. 그래도 국내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세팅해 전작에서 지적받았던 투박한 승차감을 소폭 개선했고 연비 역시 여전히 동급에서 가장 좋은 수준이었습니다.
끝물인 2008년형 모델부터는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한 XE 트림에 블랙 베젤 헤드램프를 추가해 더욱 공격적인 인상으로 만들었고, 전용 레드 컬러와 실내 곳곳에 붉은색 스티치를 더해 내외관을 꾸민 'NEO' 트림을 신설해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했습니다.
1세대 SM3는 SM5의 후광에 힘입어 출시 초부터 열띤 관심 속에 출발했습니다. 회사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삼성이 만든 자동차'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소비자들에게 워낙에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에 SM5로부터 이어지는 '내구성과 신뢰의 삼성차'라는 이미지에 그대로 올라 탈 수 있었죠. 등장 당시부터 이미 검증된 닛산의 차대와 파워트레인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차가 겪는 잔병치레가 딱히 없었던 것도 이러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데 한몫했어요.
또 당시 르노삼성이 내세우던 불소 도장 덕분인지 20년이 다 된 지금도 별다른 부식 없이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이 1세대 SM3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동시대에 그렇게 많이 팔렸던 아반떼 XD나 세라토, 라세티 같은 경쟁차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에요. 어릴 적부터 타던 우리집 차가 너무나도 멀쩡하니 성인이 되고 나서 물려받거나 새 차를 구매해도 엄마의 마트용, 마실용 세컨카로 남겨두는 일이 흔했고, 이 밖에 가성비 좋은 중고차로 수많은 사회 초년생들의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페이스리프트 이후에도 달라진 디자인의 신선함과 르노삼성의 브랜드 신뢰도를 바탕으로 순조로운 판매량을 유지하긴 했지만, 그 사이 경쟁차들 역시 가만히 있진 않았죠. 속속 세대교체를 이뤄내며 상품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직접 모델의 좁아 터진 실내, 부실한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품은 SM3는 서서히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담으로 시트가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이 시기 닛산의 소형차들에게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로 조금만 오래 탑승해도 피로감에 시달리거나 심한 경우 허리 통증까지 초래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신형에서도 이 부분은 개선되지 않아서 한때 이 차가 경찰차로 대량 납품 됐을 때 오랜 시간 차량 안에서 근무해야 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이 상당했다고 하네요.
한편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출시 이후에도 단종되지 않았던 GM대우 '올 뉴 마티즈'의 사례처럼 'SM3 CE(클래식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후속 모델과 함께 꽤 오랫동안 병행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해외 시장에 판매되는 물량을 한동안 생산하느라 곁가지로 내수 시장에도 공급한 건데, 프라이드나 베르나 같은 소형차와 비슷한 저렴한 가격에 신뢰도가 보장된 차량이었돈 만큼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나 영업용 차량이 필요했던 기업 등에서 주로 구매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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