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한 칸영화제, 자세히 봤더니...
[칸 리포트] 쥐디트 고드레슈가 쏘아 올린 '미투'..여성의 목소리 주목한 칸
지난 1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개막해 26일 새벽 폐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의 화두는 '여성의 목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이자 감독인 쥐디트 고드레슈의 단편영화 '나도(Moi aussi·Me Too)'가 공식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개막작으로 선보이면서 올해 칸 국제영화제는 프랑스는 물론 세계 영화계계의 '미투(#MeToo·성폭행 피해 고발 운동)' 캠페인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공간으로 떠올랐다.
칸 국제영화제 공식 소식지인 미국의 할리우드 리포터는 최근 "프랑스의 '미투' 순간이 드디어 도래했다"면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이고 프랑스 업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촉발한 것은 쥐디트 고드레슈였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자크 두아용과 브누아 자코 감독으로부터 미성년자 시절 각각 성추행과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하며 프랑스의 새로운 미투 운동에 앞장섰다.
쥐디트 고드레슈는 앞서 2월 열린 프랑스 최대 영화상인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강간죄로 고발당한 남성들이 영화계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서 프랑스 영화계의 성폭력 범죄를 향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가 연출한 '나도'는 1000여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쥐디트 고드레슈를 비롯해 이 작품의 공동 제작자들은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영화제 메인 무대인 팔레 데 페스티벌의 계단에서 자신의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 구찌,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어링 그룹은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 프로그램을 마련해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여성 인사들을 초대해 그들의 생각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5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쥐디트 고드레슈를 비롯해 줄리안 무어, 케이트 블란쳇 등과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에밀리아 페레스(EMILIA PEREZ)'의 조 샐다나와 또 다른 경쟁부문 상영작 '르 콩트 드 몬테 크리스토(Le Comte de Monte Cristo)'의 아나이스 드무스티어 그리고 NBC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룹의 데임 도나 랭글리 회장이 연사로 참여했다.
개막식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힘을 발휘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메릴 스트립이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15일 개막식에서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당신은 영화에서 우리가 여성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당신은 우리가 영화계에서 여성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면서 "우리가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35년 만에 칸 국제영화제 무대에 선 메릴 스트립은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고,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었다"면서 "제 커리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랑데부 아베크'에서 그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 배우들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 22편 중 여성감독 연출작은 단 4편으로, 21편 중 7편을 차지했던 지난해와 비교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대신 '바비'의 그레타 거윅을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선정해 의미를 더했다.
경쟁부문 초청작인 데미 무어 주연의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가 화제작으로 떠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데미 무어의 전신 노출 연기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복용하면서 젊음과 미모를 얻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의 모습으로 공포를 안긴다.
첫 상영 이후 무려 13분여간 박수갈채를 받은 '더 서브스턴스'는 젊은 여성의 육체에만 환호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통해 올해 영화제의 히든카드로 떠올랐다.
전성기를 지난 중년 배우 역을 맡은 데미 무어의 과감한 열연 역시 화제를 뿌렸다. 2017년 개봉한 '리벤지'의 코랄리 파르쟈 감독이 연출했다.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더 서브스턴스' 기자회견에서 프랑스에서 확산되고 있는 '미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저는 그것이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3000년 동안 특정 방식으로 조직된 사회는 변화하기 어렵겠지만, 이 영화가 그 변화를 위한 작은 돌멩이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