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표 어디로 향할까? 영광·곡성 민심 직접 들어보니

영광·곡성/주하은 기자 2024. 10. 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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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곡성의 군수 재보궐 선거에서 호남 민심은 어디로 향할까. 조국혁신당이 사활을 걸고 나선 가운데 민주당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당력을 쏟아부은 진보당이 거둘 결과도 관심사다.
9월23일 민주당은 영광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개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장세일 영광군수 후보(가운데), 조상래 곡성군수 후보(오른쪽)가 영광읍 터미널시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민주당 이야기를 하려면 담배를 한 대 피워야 쓰겄는디.” 전남 영광군 영광읍 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성재씨(65)가 말했다.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30년 넘게 민주당 계열 당원으로 살아온 그였다. 부산까지 가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선거운동에 나섰던 기억을 떠올릴 때 그의 얼굴에선 호남 정치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강성재씨는 최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당적을 정리하고 조국혁신당 당원으로 가입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나가 대통령잉께 호남은 좀 참아달라’ 해서 참았제. 그런데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때도 달라진 게 있었는가? 민주당은 우리를 호주머니 속 공깃돌로 안당께. 이번 선거에서는 군기를 한번 잡아야제.” 답답한 속을 풀려는 듯 그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10월16일 예정된 재보궐 선거는 평소 같으면 조용히 지나갔을 선거였다. 보수 색채가 강한 인천 강화군·부산 금정구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 영광·곡성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이 이 구도에 균열을 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은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를 내세우며 호남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민주당을 앞질렀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원내 3당이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조국혁신당 입장에선 자신들도 지역 선거에 승산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소수 정당의 한계로 국회 내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는 현 국면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기회에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왔다. 조국 대표가 직접 나서 ‘호남 월세살이’를 시작할 정도로 조국혁신당은 재보궐 선거에 당력을 집중했다.

조국혁신당의 전력투구에 평온하던 민주당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영광군수 선거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이자 위기감은 고조됐다. 9월23일 민주당은 영광군수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개최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뿐 아니라 전남 지역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이 총집결하며 세를 과시했다. 민주당은 영광·곡성에서 선제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며 당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박지원·한준호·정청래 의원도 호남 한 달 살이에 나섰다.

조국혁신당은 영광과 곡성에서 모두 당선을 노리고 있다. ‘호남 월세살이’를 시작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9월24일 영광군 대마면 노인대학에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영광군수 재보궐 선거의 또 다른 변수

하지만 민주당을 향한 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9월24일 영광군 홍농읍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민주당 찍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여기는 원래 민주당이면 막대기만 세워도 당선되는 곳 아녀?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해부렀어.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밀어줬는데 눈에 보이는 게 뭐 있어? 민주당도 고칠 건 고쳐야제. 만약 이번에도 민주당 당선됐는데 시원찮으면 이젠 진짜 끝이여, 끝.”

민주당을 향한 영광군민들의 ‘경고’는 이미 지난 총선에서부터 표출됐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광은 담양·함평·장성과 함께 한 지역구로 묶인다. 현역 이개호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처음 당선돼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했다. 하지만 지난 21대 총선과 비교해볼 때 이 의원을 향한 지지는 급락했다. 21대 총선에서 이개호 의원은 영광군에서 78.67%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냈지만, 22대 총선에서는 49.04%에 그쳤다. 무소속 후보와 표 차이는 약 2000표에 불과했다. 영광읍내 시장에서 어물전을 하는 한 70대 상인은 “이개호가 영광에 제대로 못했제. 통 얼굴 보기가 힘들어. 나는 이개호 얼굴 오늘 처음 봤당께”라고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민주당 역시 자신들을 향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 텃밭인 호남에서 ‘읍소 전략’과 ‘정권심판론’을 꺼내든 이유다. 9월23일 영광군수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재명 대표는 “이번 선거는 과거로 퇴행하는 정권에 회초리를 들어 징계하는 선거다. 전남도민 여러분께서 (민주당이) 흡족하지 않다는 것, 저희도 잘 알고 있다. (민주당 후보들이) 영광과 곡성에서 완전히 다른 지방자치를 한번 보여드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영광읍 터미널시장에 방문해서도 이재명 대표는 한 노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민주당이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다. 1번 부탁드린다”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호남 주민들이 민주당에 실망하면서 조국혁신당에 기회의 창이 열렸다. 조국혁신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이 ‘일당 독점’을 해왔기에 발전이 더뎠다며, 조국혁신당이라는 대안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9월18일 추석 민심 기자간담회에서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유권자들에게는 독점보다 경쟁이 더 좋은 정치구조라는 점이 너무 명확하다. 조국혁신당이 호남에 민주당 이외에 제3의 선택지를 드리고 호남 정치를 혁신하겠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조국혁신당의 ‘대안 정당’ 호소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9월24일 영광군 홍농읍에서 만난 한 50대 주민은 자신은 조국혁신당 당원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영광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골라볼 생각이다. 이번 군수 선거가 영광 지역의 변화, 더 나아가 정치 문화의 변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광군수 재보궐 선거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여론조사에서 20% 가까운 지지율을 얻은 진보당 이석하 후보의 약진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 통틀어 영광군에만 후보를 낸 진보당 역시 당력을 쏟아붓고 있다. 당원 수백 명이 영광을 찾아 ‘생활밀착형’ 선거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당원들이 마을 곳곳을 찾아가 고추를 따주고, 마을회관을 청소하는 등 주민들에게 일손이 되어주고 있다.

진보당의 열성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진보당을 뽑지 않겠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진보당은 계속 찾아와서 가족 같다” “다른 당도 진보당을 보고 배워야 한다” “주민들에게 건실하게 잘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라고 칭찬했다. 영광군 홍농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길성씨(55)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에 이번엔 진보당을 뽑기로 마음먹었다. 후보 연설을 들었는데 인물도 참신하고 진실성이 느껴졌다. 부모님과 배우자까지 설득해 적어도 네 표는 진보당에 주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9월24일 영광읍 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홀로 선거운동을 하던 한 진보당 당원은 “다른 당에서 돈을 뿌릴 때, 우리는 땀을 뿌렸다. 다음 주에는 더 많은 당원들이 영광으로 온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9월24일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영광군 대마면 노인대학 앞에서 주민과 악수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같은 전남이지만 영광과 곡성은 달라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사이 혼전으로 진행되는 영광군수 선거와 달리, 곡성군수 선거에서는 현재까지 변화의 흐름이 뚜렷이 관찰되지 않았다. 9월24~25일 〈시사IN〉이 만난 곡성 주민들 중에는, 영광에서보다 월등히 많은 곡성 주민들이 “그래도 민주당을 뽑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9월 발표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상래 후보는 60% 내외 지지율을 보이며 조국혁신당 박웅두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같은 전남 안에서도 영광과 곡성 사이 판세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주민들은 ‘후보 경쟁력’을 그 이유로 꼽았다. 민주당 조상래 후보가 곡성에서 군의원·도의원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고, 앞선 두 차례 군수 선거에서 낙선하며 쌓인 동정 여론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국혁신당 박웅두 후보를 찍겠다는 주민도 이 점에 대해선 공감한다. 조국혁신당 후보를 찍으려다가도, 후보 경쟁력이 떨어져 망설이게 된다는 평가다. 곡성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50대 여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가게는 좋은데 진열 상품이 별로’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조국당을 찍으려 한다. 당선되진 않더라도 민주당이 자극은 좀 받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영광에 비해 곡성이 더 고령화됐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 분석도 나온다. 70대 이상 농촌 거주 유권자들은 웬만해선 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영광은 32%, 곡성은 40%에 이른다. 곡성군 옥과면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정병득씨(67)는 “시골 정서가 좀 보수적이고 맹목적인 게 있제. 노인들은 무조건 민주당, 골수 민주당이여. 도시 같으면 민주당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아마 후보도 제대로 못 내지 않겄는가”라고 말했다. 곡성군 고달면 노인정에서 만난 80대 주민은 “민주당이 해준 건 없제. 먹여준 것도 없고잉. 그래도 우린 민주당이여. 뿌리가 확 박혀버렸응게”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입장에서는 조국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를 군수 후보에 대한 투표로 잇는 일이 큰 과제다. 지난 22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곡성군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 득표 차이는 216표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국 대표에 대해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주민들이 많다. 한 60대 여성 곡성 주민은 “윤석열 정권이 조국 대표를 너무 탄압했잖여. 그래서 안쓰러움이 있지”라면서도 “그렇다고 조국혁신당을 뽑겠다는 건 아니제. 조국 대표가 군수를 하는 건 아니잖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 조국혁신당 관계자는 “호남에서 민주당 이외 정당을 찍어본 경험이란 건 무시 못한다. 한번 허들을 넘어본 거다. 투표용지 저 밑에 9번을 찍어본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민주당 이외의 선택지를 고를 가능성이 있다”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그래도 민주당’과 ‘그러니까 조국혁신당’ 표심 사이, 영광과 곡성의 유권자는 여전히 고심 중이다. 유의미한 득표율을 목표로 잡던 조국혁신당은 어느새 두 곳 모두 당선을 노리겠다는 대담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대중정당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민주당이 여전히 호남 패권을 증명하게 될까. 양당 각자의 사정 속에서 도합 유권자 7만명가량인 군수 선거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영광·곡성/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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