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든 초콜릿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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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는 여자를 만난 어느 저녁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저녁에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교회 다니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겨우 대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이던 젊은 여자였다. 그 여자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아, 전도하는 사람이군) 아니요."
"신이 있다는 걸 믿으시나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오늘 나라는 가여운 중생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세요."

여자는 인상착의가 매우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호감형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당시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통과하고 있었으며 인생에 관한 철학적인 대화가 고팠던 상태였다. 나는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느님이 우리 곁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어요?"

화를 낸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거였다. 심지어 하느님이 있다는 걸 내가 알 수만 있다면 교회에 다닐 용의도 있었다. 솟구치는 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신에게 의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내 말투가 좀 거칠어서 여자가 오해를 한 걸까? 예상치 못한 약간의 억울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먼저 믿어야 보여요, 하느님은."

하,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나는 보여야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먼저 믿을 수가 있어요?"라고 나는 다시 한번 화내지 않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거의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 중 한 명이 "야, 왜 사람을 울려~"라며 내 팔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나는 여자와 헤어지고 말았다. "화 낸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라는 변명을 허공에 뿌리며, 가로등 불빛이 총총하던 어스름 깔린 저녁의 길거리를 찝찝한 마음으로 걸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저녁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여자의 설명을 바랐지만 여자는 울기만 했다. 여자는 왜 울었을까.


오 헨리, <마지막 잎새>

원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내게 그저 유명한 구닥다리 소설이었다. 병든 소녀가 담벼락에 붙은 마지막 잎새를 보며 다시 삶에 의지를 갖게 된다는 내용의 뻔한 이야기. 그런데 최근에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고는 '안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새롭게 읽어 보게 되었다.

폐렴에 걸린 소녀는 침대에 누워 창밖 담벼락에 붙어있는 잎사귀들의 개수를 센다.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믿는다. 의사는 소녀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환자가 올겨울에 새로 유행할 나팔 소매를 궁금해한다면 병을 이길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잎사귀는 얼마 안 남았고 밤새 비바람이 유리창을 때렸다. 그러나 다음 날 마지막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잎새는 소녀와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노인 화가가 소녀를 위해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잎새는 가짜였지만, 실제로 소녀에게 작동했다. 소녀에게는 살아갈 의지가 생겼다. 하지만 그 혹독한 밤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잎새를 그린 노인 화가는 병에 걸려 죽는다.

노인은 몇십 년 동안 걸작을 그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방에 놓인 이젤 위에는 오랜 시간 동안 걸작의 첫 붓질을 기다려 온 텅 빈 캔버스만 있었다. 마지막 잎새가 바로 그의 걸작이었다.

소녀는 마지막 잎새를 통해 살아갈 의지를 되찾았고, 노인은 걸작을 만들겠다는 오랜 욕망을 품고 살아왔다. 결국 이 소설은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에게 하느님은 살아가는 이유였을 수 있다. 물론 종교에 귀의할 마음은 없지만, 하느님이든 남자친구든 취미 활동이든 여행 계획이든 갓 구운 빵이든 초콜릿이든 그게 뭐든지 간에 그것이 한 사람을 삶에 밀착시켜 주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면, 무엇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글 | 진솔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
2023년부터 Daum에 에세이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에 매혹되고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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