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가 촉발한 K-POP 정체성 논란 "무엇이 K-POP인가"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미국에서 최신 케이팝을 가장 빨리 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 'K-Pop On!'을 듣는 것이다. 이 플레이리스트의 최근 화제곡은 스페인 아티스트 로살리아가 피처링 한 리사의 곡 'New Woman'이다. 이 곡은 스포티파이의 최고 인기 플레이리스트인 'Today's Top Hits'와 'New Music Friday'에도 동시에 업데이트되었다. 아시아와 스페인 최고 스타들의 역대급 만남이니 당연하다 끄덕이는 한편, 한국인으로서 자동 생성되는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잠깐, 이 곡은 케이팝이 맞나? 몇 달 전 리사의 '록스타'가 케이팝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 나올 때도 비슷한 질문이 떠올랐지만 블랙핑크의 멤버라는 이유로 대충 납득하며 넘어갔다. 'New Woman'의 후반부를 장악하는 로살리아의 스페인어 가사를 들고 있노라니 케이팝이 대체 무엇인지 재고해볼 시기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가사로 이뤄진 케이팝 싱글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케이팝 산업은 오래 전부터 한국 밖으로 케이팝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전략 중 하나가 아이돌 그룹의 외국어 앨범이나 싱글 발매였다. BTS의 세계적 열풍과 함께 등장한 영어 싱글은 발매되기가 무섭게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 특히 '다이너마이트'와 '버터'는 서구 팝과 케이팝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케이팝을 글로벌 뮤직 트렌드로 인지시키는 음악계 대전환을 가져왔다. 더불어 '케이팝은 팝인가 아닌가'하는 헷갈리는 감별 사태가 시작되었다.
최근 여러 OTT 플랫폼에서 케이팝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케이팝 그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케이팝 감별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넷플릭스의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는 하이브와 게펜이 함께 진행한 걸그룹 글로벌 오디션을 다뤘다. 20명의 참가자는 한국식의 케이팝 훈련과 교육 과정을 거쳐 무대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케이팝 퍼포먼스를 완수하는 프로페셔널 케이팝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최종 우승한 6명은 걸그룹 '캣츠아이'로 활약을 시작한다.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가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들의 근본은 케이팝이 명확하다.
애플TV플러스의 '웰컴 투 케이팝: 아이돌 이야기'에는 한국 기획사 DR뮤직의 걸그룹 '블랙 스완'이 등장한다. 블랙 스완은 한국계가 아닌 벨기에, 미국, 브라질/독일, 인도 멤버가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 곡을 소화한다는 이색적인 콘셉트의 걸그룹으로 케이팝 아티스트의 국적 다양성에 일조한다. 글로벌 마켓을 지향하는 한편으로 한국 케이팝 문화의 자장 안에서 활동하고 한국 팬들과 소통하는 등 기존 케이팝 그룹의 행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기획사에 한국어 싱글을 선보이니 케이팝 정통성 점수가 부가돼야 할까?
BBC 온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북미 법인과 영국 문&백 미디어가 함께 만든 보이 밴드 '디어 앨리스'의 탄생을 기록한 '메이드 인 코리아: 케이팝 익스피어리언스'를 선보였다. 문&백 미디어는 대표적인 오디션 프로그램 '더 엑스 팩터'와 '갓 탤런트'를 만든 팀이 창립한 회사로 '디어 앨리스'의 멤버들을 발굴했다. 다섯 명의 영국 소년들은 한국을 방문해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고 즐기면서, 케이팝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한국식 아티스트 훈련을 받고 미션을 수행한다. 2010년대 최고 보이 밴드로 영국 '더 엑스 팩터'를 거쳐 결성되었던 '원 디렉션'의 노스탤지어가 케이팝의 기운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가운데, '디어 앨리스'는 케이팝 밴드일까 아닐까?
케이팝은 기존 '가요'와 선을 긋고 글로벌 팝을 지향하면서 성장한 용어다. 서구권에서는 자신들이 전유해 온 팝과는 다른 공정을 거친다는 이유로 케이팝과 케이팝 아티스트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비교적 단일한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팝과 달리 케이팝은 팝, 힙합, 알앤비, EDM, 록, 라틴 리듬이 자유자재로 뒤섞이고, 압도적인 외모가 두드러지는 소년과 소녀 아티스트가 정교한 안무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하는 이미지다. 한국 내에서 케이팝은 가요를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한국 밖에서 케이팝은 '아이돌' 음악만을 의미하는 다소 스테레오타입적 용어다. 케이팝 아티스트는 소셜 미디어에서 퍼포먼스 챌린지를 선보이고 적극적으로 팬과 소통한다는 특징도 있다.
솔직히 팝과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테일러 스위프트, 레이디 가가, 찰리 XCX, 포스트 말론, 배드 버니를 비롯 콜드플레이까지 팝으로 퉁쳐지는데 유독 케이팝은 케이팝이다. 정국의 'Seven'과 지민의 'Like Crazy' 모두 케이팝이고, 리사의 'New Woman'은 지난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VMA)에서 최고의 케이팝 상을 받았다. 'New Woman'은 아무리 K의 흔적을 뒤져보아도 리사가 케이팝 아티스트였다는 근거밖에 없다. 케이팝을 창조한 나라에서는 케이팝인가 아닌가 헷갈려하지만, 서구 음악계는 오히려 쉽게 케이팝의 판정을 내린다. 혹시 영어 발음으로 감별을 하는 걸까?(농담이다)
케이팝도 팝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는 현재, 세상의 케이팝 정의는 중구난방이다. 한국 기획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 케이팝, 케이팝 아티스트가 부르면 케이팝, 한국어가 들어가면 케이팝, 케이팝처럼 들리면 케이팝 등 어디에도 확실한 기준은 없다. 케이팝과 팝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오리라고 대부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K는 분명 '코리안'의 약자이지만, 케이팝은 한국 음악계가 발명한 장르, 스타일, 수익 모델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미래의 케이팝은 이 모든 요소가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케이팝 슈퍼스타인 리사 또한 케이팝이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거대 레이블과 솔로 계약을 맺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싱글과 앨범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케이팝 아티스트로서 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 모른다. 그때도 세계는 리사를 케이팝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있을까? 캣츠아이, 블랙 스완, 디어 앨리스가 음악 차트를 점령하고 더 대중적인 그룹으로 성장을 하게 되면 케이팝의 K는 더 이상 중요한 알파벳이 되지 않을까? 케이팝의 글로벌 진화 시대. 본격적인 '케이팝 어디까지 가 봤니?'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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