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너도나도 '부정청약' 권하는 사회?

채신화 2024. 10. 1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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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청약' 열풍에 심상해진 위장전입
자금 부족해도 쫓기듯 '선당후곰' 투자
개인의 도덕성 탓할 일? "제도 전반 손봐야"

"부모님이랑 등본 주소부터 합쳐 놔. 다들 그렇게 해."

어느 자리에서였습니다. 누군가 주택 청약 가점이 낮아서 당첨은 꿈도 못 꾼다고 말하자 너도나도 가점을 높이는 방법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편법이나 불법으로요.

다행히도 그가 청약 대신 구축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해당 방법들이 실행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청약 제도의 각종 허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실제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만 돌아도 '부정 청약' 천태만상 사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의 견본주택 현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방법은 '위장 전입'입니다. 실제로 함께 살지 않는 가족 구성원을 주민등록등본상 전입시키는 방법인데요. 가족이 많을수록 청약 가점이 높아지는 것을 노린 것이죠. 

청약 가점은 △무주택 기간(15년 이상, 32점) △부양가족 수(6명 이상, 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5년 이상, 17점)을 합산하는 구조로 만점이 84점입니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오랜 시간 버틸수록 유리한데요.

부양가족 수는 단순한 서류상의 '합가'만으로도 점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직계존속인 부모를 비롯해 조부모, 증조부모까지도 3년 이상 동일 주민등록등본에 등재돼 있으면 부양가족으로 보죠. 그러다 보니 따로 살면서도 등본상 거주지만 옮기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가짜 이혼이나 가짜 결혼 사례도 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공급 질서 교란 행위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20~2023년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적발한 부정 청약은 1116건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위장 전입 사례가 778건(69.7%)으로 가장 많았고요. 당첨 가능성이 높은 청약통장이나 자격을 매매한 사례가 294건(26.3%)였죠. 그리고 위장 결혼·이혼·미혼도 44건(3.9%) 적발됐습니다. 

최근 청약 당첨 가점 커트라인만 봐도 의심이 듭니다. 올해 강남권 청약 단지는 당첨 가점이 대부분 70점을 넘었는데요. 이렇게 되려면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서 모두 만점을 받고 세대주 외에 부양가족도 4명은 있어야 합니다. 

5인 이상 가족이어야 가점 70점을 넘기는 셈이죠. '로또 청약' 단지로 인기를 끌었던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펜타스'의 경우 가점 만점자가 최소 3명이나 나오면서 위장전입 등 부정 청약 의혹이 커졌는데요.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청약 관련 민원/출처=국민신문고 홈페이지

만점을 받으려면 7인 이상 대가족이어야 하는데 사실상 주위에서 보기 어렵죠. 결국 청약 비당첨자 위주로 위장 전입 의혹 등의 민원을 제기하자, 국토교통부가 부정 청약 전수조사를 예고하기도 했는데요. ▷관련 기사: '가점 만점?' 래미안 원펜타스 당첨자 전수조사한다(8월21일)

그러자 잔여 물량이 속속 나왔습니다. 원펜타스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52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잔여 물량이 일반 공급 292가구 가운데 50가구(17%)나 나왔죠. 이는 부적격 및 계약 포기 등으로 나오는 물량으로, 부정 청약 당첨자들이 전수 조사에 겁을 먹고 발을 뺐을 거란 '합리적 의심'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로또 청약' 단지로 손꼽혔던 '디에이치 방배' 역시 1순위 청약 경쟁률은 평균 90 대 1 에 달했지만, 1244가구 중 242가구(19.5%)가 잔여 물량으로 나왔죠. 

이러니 '찐'(진짜) 무주택자들이 뿔이 날만 합니다. 부정 청약으로 의심되는 청약자들이 속속 당첨되면서 박탈감을 느끼는 거죠. 이에 국토부나 관할 지자체, 국민청원 등에는 부정 청약 전수조사 및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하지만 찾아낸다고 해도 이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의심도 나옵니다. 위장 전입은 신용카드 사용 내역, 하이패스 및 교통카드 사용 내역, 휴대폰 기지국 접속 내역 등을 통해 잡아낸다고 하는데요. 

휴대폰 명의나 카드 명의를 바꿀 수도 있고요. 현금을 썼다고 하거나 육아 등 적당한 구실을 찾아 둘러댈 수도 있다는 거죠. 그야말로 '불신 지옥'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혼란을 야기한 게 모두 개인의 도덕성이 부족해서일까요?

글쎄요. 분양가는 빠르게 오르는데 수도권 주택 공급은 위축되니 내 집 마련에 대한 조급함이 들수밖에 없는 현실이고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는 '로또'처럼 차익 기대가 커지니 준비가 안 된 청약자도 '선당후곰(먼저 당첨된 뒤 고민)'의 유혹을 떨치기가 힘듭니다. 현재 상한제가 적용된 서울은 강남3구(서초·강남·송파)와 용산구죠.

실제로 래미안원펜타스의 경우 시세차익 20억원가량이 예상됐는데요. 10월5일자 로또 1등 당첨금액이 22억7982만원이었습니다. 당첨 후 일정기간 뒤 시세대로 주택을 팔면 로또 1등 당첨금 수준의 거액이 떨어지는 거죠. 1주택이라면 양도소득세도 덜어낼 수 있으니 소득세 등을 내야 하는 로또보다 낫죠.

그러니 자금 여력이 부족해도 일단 청약에 덤벼드는 겁니다. 당첨만 되면 대출을 끌어 쓰고 모자란 돈은 사돈에 팔촌까지 빌려 채우면 된다는 거죠. 나중에 집을 팔아 이자를 쳐준다는 계약서도 작성하고요. 사실상 불법사금융 거래를 하는 셈인데 말이죠. 

결국 최근 나타난 부정 청약 (의심) 사태는 허점 많은 청약 제도에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실수요자들이 더 이상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청약 제도를 포함한 주택 공급 제도 전반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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