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님 유물 내놔”…폼 잡던 유럽 박물관들이 요즘 난처해진 사연 [Books]
제국주의 시대 서구권 국가들
아프리카 현지인 예술품 강탈
최근 전시품 환수요청 잇따라
박물관 역할·방향성 고민해야
프랑스 파리 국립민족학 박물관이 파견한 수집 원정대 총무로 일했던 민족학자 겸 시인 미셸 레리가 1931년 9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쓴 내용이다. 당대 제국주의 전쟁은 유럽인들이 식민지에서 현지인들을 협박해 예술품을 헐값에 내놓도록 하거나 그냥 가져오는 상습적 약탈 행위로 이어졌다. 수집가들은 아프리카 말까지 익히고 아프리카인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친밀한 관계를 쌓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예술품을 뜯어냈다. 예술품을 모조품으로 바꿔치기해 빼앗는 부정직한 행태도 만연했다.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정치권의 부패, 내정 불안, 내전 등으로 예술품의 밀수와 절도는 끊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예술사학자 모린 머피에 따르면, 놀랍게도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나와 있는 예술품의 70%는 식민지 시대가 아닌 1960년대에 이뤄진 독립 이후에 유출된 것들이다. 아프리카에 들어간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종교의식을 ‘우상 숭배’로 몰아 관련 조각상을 주기적으로 쓸어 없앴다. 그때마다 수많은 고대 유물들이 해외로 쏟아져 나왔다. 서양인들은 이런 유물들을 박물관에 전시하면서 문화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신간 ‘박물관의 그림자’는 이 같은 문명과 야만의 역사와 함께해온 박물관의 탄생부터 발전 과정, 현재의 위기, 미래에 이르는 연대기를 짚는다. 세계적인 인류학자인 애덤 쿠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서구권 박물관들이 어떻게 타인의 유물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고 어떻게 위기를 맞게 됐는지 가감없이 드러낸다. 타국의 유물을 전시하는, 이른바 ‘타인의 박물관’의 역사다.
“1830년대에서 1840년대를 지나며 생겨난 타인의 박물관은 아주 먼 곳에서 살았거나 아주 오래 전 살았던 원시인이나 부족민의 세계를 전시한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유럽의 식민지 건설이 한창이던 1880년대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다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에 이르러 쇠퇴기에 접어든다. 미국에 있는 인류학, 믹족학 박물관들도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체성 박물관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있는 파르테논 마블에 대한 그리스 아테네의 소유권 관련 협상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21년 국제 시장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실시한 투표 결과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한 영국인 중 59%는 파르테논 조각상을 그리스에 돌려줘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스는 마블에 대한 소유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영박물관 측은 이보다는 대여와 상호 교류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책은 작금의 위기 속에서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유물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베냉의 오바와 에도 주지사가 지원하는 그 지역 협의회가 서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결국 2022년 나이지리아 국립박물관위원회는 베냉 유물에 관한 협상권은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쿠퍼 교수는 “나이지리아 국립박물관의 참담한 역량을 생각하면 회의론은 좀처럼 해소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단순히 유물의 소유권을 둔 다툼보다는 특정 국가, 인종을 넘어 인류의 유산을 함께 보존하고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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