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되찾은 ‘정주영의 꿈’... 아픈 손가락 됐죠"
HD현대오일뱅크 IPO 무산
폐수 불법 유출 혐의 파장
IPIC → 현대중공업 매입
지난 8월 HD현대오일뱅크가 공개한 디지털 영상광고 ‘오일 전사’가 하루 만에 누적 조회수 100만 건을 돌파하며 MZ 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HD현대오일뱅크는 현대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며 정주영 선대 회장의 꿈이 좌초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다면 HD현대오일뱅크는 왜 현대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을까?
HD현대오일뱅크의 전신은 1964년 장홍식 창업주가 부산에 설립한 극동정유로 확인됐다. 당시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극동정유의 지분 일부를 1977년 현대그룹이 취득한 바 있다. 이후 재정난과 걸프전으로 인한 유가 급등의 타격을 입은 극동정유는 1993년 7월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을 통해 인수했다.
당시 회장이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인수한 현대정유를 조카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에게 맡겨 운영하도록 했다. 정몽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정신영 전 동아일보 기자의 아들로, 독일 유학 중 서른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생을 안타깝게 여긴 정주영 회장이 정몽혁 회장에게 계열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특히 정신영 전 동아일보 기자의 타계 이후 큰 충격을 받은 정주영 회장은 생애 유일무이한 열흘 휴무를 가지는 등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이듬해인 1998년 오일뱅크 브랜드를 론칭했고 3년 만에 435개였던 주유소 수를 1,020개로 늘리고 한화에너지를 인수해 인천정유를 만드는 등 활발한 사업을 이어간 HD현대오일뱅크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게 됐다.
1999년 지분의 50%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IPIC)에 5억 달러에 넘기면서 계열에서 분리한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01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IPIC에 경영권을 넘겨주게 됐다. 다만 2010년 현대중공업 그룹이 IPIC과의 법정 분쟁 끝에 경영권을 다시 가져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대그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이별했지만, 선대에서 일군 회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HD현대오일뱅크를 다시 찾아올 기회를 노리며 철저하게 그룹의 미래 사업 방향과 현대오일뱅크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수를 결정했다. 이에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선대 회장의 꿈과 같았던 계열사를 다시 가져오게 된 것이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의 인수를 통해 2010년대 중반 극악의 조선업 침체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 권오갑 회장이 현장 경영, 스킨십 경영 등에 시동을 걸며 느슨해진 조직에 기강을 잡으며 ‘솔선수범’이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HD현대오일뱅크는 다시 현대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지난 202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되며 에너지 현대그룹 에너지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대산 공장에서 발생한 폐수를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접한 HD현대 오씨아이 공장으로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HD현대오일뱅크의 페놀 폐수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검찰은 계열사 사이의 배관을 통해 흘려보낸 폐수에서 리터당 페놀 2.5㎎(마이크로그램)과 페놀류 38㎎이 검출돼 배출할 수 있는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판단해 HD현대오일뱅크의 경영진을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물환경보전법에 명시된 폐수배출시설에서 배출되는 폐수의 페놀 허용치는 리터당 1㎎, 페놀류는 3㎎ 이하를 위반한 혐의다.
이에 환경부는 해당 행위를 무단 배출로 규정하고 2022년 10월 HD현대오일뱅크에 1,509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HD현대오일뱅크는 검찰의 기소에 맞서 입장문을 내며 “이번 사안은 ‘물 부족에 따른 공업용수 재활용’의 건으로서 위법의 고의성이 없고 실제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HD현대오일뱅크 폐수 유출 혐의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며 검찰과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업계에서는 페놀 유출 의혹이 HD현대오일뱅크의 IPO 재도전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의 IPO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번 페놀 유출 의혹이 장기화하면 HD현대의 친환경 수소 사업 로드맵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IPO 계획이 없다”면서 “올해 들어 HD 현대마린 설루션 영향인지 계속 IPO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 따르면 연내 증시 입성 계획이 없는 만큼 IPO를 위해 꾸렸던 태스크포스(TF)도 해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HD현대오일뱅크가 IPO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연초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HD현대오일뱅크 부회장으로 합류한 것에 따라 정유업 의존도를 낮추고 친환경 신사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는 2030년까지 정유사업 비중을 40%대로 줄이고 친환경 사업 비중을 70%로 높이겠다는 ‘비전 2030’을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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