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성부부 11쌍이 모였다...'동성혼 법제화' 가능할까?
"지아와 저는 2년 전 마포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어차피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혼인신고를 했던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마포구청도, 서울시도, 대한민국 정부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고 손문숙 씨)
한국에서 사실혼 관계인 동성부부 11쌍이 동성 법제화를 목표로 한 소송이 제기됐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동성부부들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행정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으로, 동성 간 혼인신고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민법의 위헌성을 다투게 된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동성부부 11쌍, 총 22명이다.
원고들은 11일 서울가정법원 및 4개 재경 지방법원과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등 총 6개 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을 낼 예정이다. 이후 각 법원에 민법상 ‘혼인’에 동성혼을 배제하는 현행법의 위헌성을 심사해달라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고, 신청을 기각하면 신청인이 직접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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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중 한 명인 손문숙 씨는 BBC 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동성부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차별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많이 받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친구나 양쪽 가족들이 사실혼 관계인 동성부부로 살아가는 데 꽤 많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기 때문에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꽤 안전하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는 것.
하지만 그가 느끼는 한계도 분명하다.
"주변의 선의나 호의에 의해서 저희 관계가 인정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선의와 호의는 언제든지 거둬질 수 있잖아요. 내가 시민으로서 당연하게 갖게 되는, 평등하게 주어지는 어떤 권리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해로 인정되는 관계는 불안하고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적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의료와 주거, 복지 등 사회 제도 전반에 있어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병원 응급실에서 상대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고,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음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혼인평등소송은 2014년 5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서울서부지법에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을 접수한 지 10년 만에 제기되는 소송이다. 당시 소송은 각하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씨는 “혼인평등은 인권의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인정받는 관계를 맺을 권리를 보장받는 기본권”이라며 국회와 정부, 법원의 역할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원고들의 부모님도 참석해 발언을 이어갔다.
원고 황윤하 씨의 어머니 한은정 씨는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 이야기가 ‘소송’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과정이 된 것이 몹시도 유감스럽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부로 인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 여기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동성혼 법제화 논의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더딘 이유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도 동성혼을 인정하는 결정이 속속 나오고 있다.
2019년에는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고, 지난해에는 네팔이, 올해는 태국이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홍콩 최고법원도 지난해 9월 행정부에 2년의 기한을 주며 동성 결합을 인정할 법적 틀을 마련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혼인평등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삿포로 고등재판소는 동성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에서 동성혼 법제화 논의가 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더딘 이유에 대해 종교와 법조인 집단의 보수성을 꼽았다.
한 교수는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일부 종파에서 동성혼이나 동성애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그런 경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좀 강한 편”이라며 “법률가 집단의 보수성도 상당히 강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동성결혼과 관련한 의미 있는 법원 결정이 이뤄진 것은 동성배우자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이 거의 유일하다.
지난 7월 18일 대법원은 동성배우자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려, 국내 최초로 동성부부에게 가족과 관련한 권리를 인정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한 교수는 “(사회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동성혼을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얼마 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 관한 획기적인 판단도 나왔던 만큼, 법원이 동성혼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