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망에서 도시의 녹색 그늘로… 프랑스 스타트업 ‘필라에(Filae)’의 친환경 도전

폐어망이 도시를 식히는 ‘자연형 냉방 장치’로 재탄생하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필라에(Filae)가 해양 폐기물을 도시 건축물의 식생 구조물로 바꾸는 순환경제 모델을 선보였다.
이 스타트업은 버려진 어망을 수거해 수리한 뒤, 이를 건물 외벽에 설치해 덩굴식물이 자라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64만 톤의 어망이 해양에 버려지고 있으며, 이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반면 유럽 각지의 도심은 여름철 폭염과 에너지 소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필라에는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버려진 어망이 도심 온도를 20% 낮춘다”
필라에는 생태복원 전문가 라파엘 기나르(Raphaëlle Guenard)와 건축가 파스칼 부셰(Pascal Bouchet)가 공동 설립했다.
두 사람은 최근 리옹에서 부동산 개발사 세프릭 프로모션(Sépric Promotion)과 협력해 첫 대형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회사 관계자는 “수리된 어망을 건물 외벽에 설치해 식물을 유도하면 실내 온도를 최대 20% 낮출 수 있다”라고 프랑스 매체 '메이드 인 마르세유'에 설명했다.
스타트업은 현재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항구 인근 지역에서 파일럿 형태의 시설 구축을 진행 중이다.

사라진 기술 ‘라망다주(Ramendage)’의 부활
어망은 대부분 손상된 상태로 회수된다. 필라에는 이를 단순 폐기하지 않고, 전통적인 어망 수리 기술인 라망다주(Ramendage)를 복원해 다시 쓸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기술은 그물의 기하학적 구조를 계산해 구멍을 메우는 고도의 수작업 기술이다. 현재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라파엘 대표는 “이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은퇴한 어부를 고용하고, 현지 어민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상 악화로 조업이 불가능한 시기에 어부들이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도시 생태계와 순환경제의 결합
수리된 어망은 단순한 조경 장식이 아니다. 필라에는 외벽 아래에 토양을 복원하고, 자연 퇴비와 미생물을 활용해 물 없이도 생육 가능한 토양 생태계를 조성한다.
이는 인공 급수 시스템에 의존하는 기존 조경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라파엘 대표는 “식물은 원래 물을 기다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흙’을 되살리는 일”이라며 “토양의 40% 이상이 생물 다양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2024년 8월, 유럽연합(EU)은 어망 등 플라스틱 어업 장비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새 규정을 채택했다.
동시에 프랑스의 도시계획법(PLU)은 ‘토양 생태계 지수(CBS)’를 적용해 신축 건물에 일정 비율의 녹지를 확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건축물 에너지 효율 기준인 RE2020 규정이 더해지며, 건물 또는 주차장에는 태양광 차양이나 식생 차양의 설치가 사실상 의무화됐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필라에 같은 친환경 솔루션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시의 냉방, 이제 식물이 대신한다”
필라에는 마르세유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프랑스 전역의 항구도시와 협력해 수거·수리·설치의 통합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유럽의 건축 시장에서, 필라에의 ‘녹색 어망’은 단순한 친환경 제품을 넘어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새로운 인프라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에코저널리스트 쿠 ecopresso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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