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날...도시농부, 한해 농사의 마침표 찍다
오영록 / 도시농부
변화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고 사는 필자이지만 익숙한 것들이 변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요즘 사라져가는 김장도 그 중 하나다. 우리 민족에게 김장이란 단순히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행위를 넘어선다.
김장 자체가 우리 문화의 하나이자, 그 이면에는 다양한 의미가 자리잡고 있다.
김장의 가장 큰 의미는 식량비축일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려는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김장은 또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작업으로 음식문화의 전통을 전수하고 가족과 공통체 의식을 배우는 기회이자, 이웃들과 김장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정을 나누고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실천하는 마을공동체 확인의 시간이기도 하다.
음식문화와 공동체의식의 고양이라는 높은 문화적 유산을 지닌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다.
우리 도시농업공동체 마당이 떠들썩하다.
한여름부터 정성껏 재배한 배추를 잘라 소금에 절이고 무, 갓, 쪽파, 양파, 마늘 등을 다듬고 구리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품질 좋은 액젓과 새우젓도 준비했다.
공동체 김장이 10년이 넘어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각자가 맡은 일들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동체 행사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곤란하다. 한쪽에선 석화를 찌고 고기를 삶고 봉사하는 회원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음식 준비도 한창이다.
배추는 하룻동안 충분히 절여 낸 다음 다음날 세척작업을 하고 물을 충분히 빼 준다. 채소를 제외한 양념은 전날 준비해서 하루 정도 숙성해 두었고 다음날 야채를 섞어 김치속을 준비해 준다. 최고급 자재만을 엄선하여 만든 김치속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적인 맛이다.
김장의 하이라이트는 김치버무리기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TV에 나와 김장 자원봉사할 때 보면 김치 버무리는 일만 하는데 그것은 사진찍기용이라는 것은 한번이라도 김장을 해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안다.
가장 힘든 작업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는 과정이다. 행여라도 김장의 준비작업에 참여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무조건 찍어 줄 일이다. 여튼 김치 버무리는 작업은 즐겁고 유쾌하다. 게다가 틈틈이 만든 김치에 수육을 싸서 먹는 맛은 그 어떤 보쌈보다도 맛있다.
이틀 간에 걸친 김장행사가 포장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정성껏 준비한 김장김치는 회원들과 나눔도 하지만 해마다 인근 양로원에 기증하고 있다. 김치를 받으시는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장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노고가 한순간 사라지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곤 한다.
인근 양로원에 김장김치 기증행사는 10년 넘게 진행해 오고 있다.
많은 것이 변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변화, 생활 방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김장 문화가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공동체에서는 김장이 지닌 전통적 의미를 되새기고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