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걸고 만든 통증 없앤 자전거 안장, 美·日 잇따라 수출까지
휴안 김용주 대표의 창업노트
자전거 마니아들의 큰 고충 중 하나가 안장통(자전거를 오래 타면 엉덩이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자전거 안장 제조사 ‘휴안’의 김용주 대표(60)는 라이딩을 하며 수없이 안장통을 겪었다. 스스로 고충에서 출발해 ‘PPS 안장’을 개발했다. 김 대표의 자전거 안장 개발 노트를 엿봤다.
◇안장통 없앤 ‘PPS 안장’ 개발 노트
휴안의 ‘PPS’(Pudendal nerve Protection Saddle. 음부신경 보호 안장) 안장은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설계된 안장이다. 자전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장이 성기 주위의 음부신경, 동맥, 정맥 등을 눌러 통증을 유발한다. PPS 안장은 좌골결절(엉덩이뼈에서 아래로 돌출된 부분. 앉았을 때 의자에 닿는 부위다)과 음부의 신경을 압박하는 부위의 접촉면을 줄여 압력을 분산했다.
기존의 자전거 안장을 제거하고 교체하면 된다. 종류가 두 가지로 나뉜다. PPS3는 로드 바이크나 산악 지형용 자전거(MBT)를 타는 마니아용이다. 최근에 새로 개발한 PPS4는 라이더 수준을 가리지 않는다. 일반 자전거부터 MBT까지 모든 자전거에서 사용한다.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한정 최저가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1988년 강릉대 영문영어학과 졸업 후 중매업체, 건설사, 추모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업을 시도했다. 2016년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의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오래 시달렸던 통증이 떠올랐다. “학생 시절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다녀온 계기로 꾸준히 자전거를 즐겼어요. 자전거를 타는 내내 안장통을 달고 살았죠. 통증 완화 제품을 찾아보니 덮개나 패드 바지 등 부속 제품만 있을 뿐 몸에 편하게 설계된 안장은 없었어요.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오래 앉아도 괜찮은 안장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1. 없으면 만들어라(발상 및 기획, 2015~2016년)
곧바로 수요 조사에 들어갔다. “춘천의 자전거 명소인 공지천유원지에서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어요. 약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그중 98%가 ‘엉덩이가 아픈데 참고 탄다’고 답하더군요. 저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자전거는 즐기려 타는 것이지 고통을 참으라고 타는 것이 아니잖아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한림대 시니어기술지원센터를 알게됐다. “시니어 창업자를 대상으로 공동 사무실과 창업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사업에 선정되고 2016년 7월, 개인사업자를 냈어요. 창업 초반의 적응 시간을 줄이고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 대만 기업과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도움 요청한 이유 (개발, 2016~2019년)
국내에서 개발 과정을 공유할 기업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관련 자료가 적어서 막막했습니다. 대안을 찾다 세계적인 안장 전문 제조 업체인 대만 벨로(VELO)에 연락해 업무 협약을 맺고, 공동 개발에 들어갔어요.”
의료 전문가도 합류시켰다. “원주 연세대 병원에서 비뇨기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최운봉 박사와 막역한 사이입니다. 최 의사에게 자문했어요. 안장통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받았죠. 알고 보니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은 하부의 압박이었어요.”
기존 안장의 문제점도 알게 됐다. “좌골(골반을 이루는 좌우 한 쌍의 뼈. 궁둥뼈라고도 한다) 안으로 음부의 신경과 정맥, 동맥이 지나가는데요. 기존의 안장은 좌골결절을 압박하고 음부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었어요. 의학적 용어로는 ‘음부신경 압박 증후군’이라고 하는데요. 방치하면 배뇨 장애를 유발하거나 성 기능이 저하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설계했다. “쿠션을 좌, 우로 나누었어요. 안장에서 좌골결절 부위가 닿는 두 부분을 빈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편의상 빈 부분을 홀(hole)이라고 부르는데요. 음부신경과 동맥, 정맥 등이 짓눌리지 않고, 마찰도 일어나지 않도록 접촉면을 없앴습니다. 또 자전거에 오래 앉으면 땀이 차서 엉덩이에 습진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좌우로 나눠진 쿠션 사이 중심부를 U자형 홈으로 비워 안장 중앙부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제작했습니다.”
주행 중 안정감도 더했다. “주행 중 굴곡이 있는 길을 지날 때면 충격을 받아 허리에 통증을 느끼기 쉬운데요. 충격을 완충해줄 수 있도록 안장 아래 레일을 기존의 안장보다 약 1mm 가늘게 설계했어요. 레일이 가늘수록 탄성이 좋아지거든요. 탄성을 높여 완충 효과를 일으키도록 한 거죠.”
3. 직접 부품 조립(생산, 2019년)
우리나라는 안장 생산 불모지였다. 어쩔 수 없이 수작업으로 완제품을 만들었다. “안장을 만드는 데 레일, 플레이트, 안장 폼 총 3가지의 부품이 필요한데요. 각기 다른 회사에 제조를 부탁해야 했습니다. 레일의 경우 전문 제조사가 없어서 스프링 제조사에 생산을 맡겨야 했죠. 플레이트는 가장 강도가 강한 합성섬유인 나일론 66 소재로, 안장 폼은 쿠션재, 단열재 등으로 활용되는 우레탄으로 제작을 맡겼습니다. 세 개의 부품을 각 공장에서 받으면 우리 공장에서 직접 붙이는 작업을 진행해야 했죠.”
모든 과정이 난관이었다. “플레이트의 나일론 소재와 안장 폼의 우레탄 소재가 서로 잘 붙지 않더라고요. 골치가 아팠습니다. 선철실험이라는 본드 전문 연구 기관을 통해서 접착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6개월간 연구한 결과, 상온에서 공기 중의 수분과 경화해 빠른 접화를 도와줄 수 있는 본드를 겨우 찾아냈어요.”
4. 용도와 이용자 수준에 맞게 제품 세분화(최종 완성 및 출시, 2020년 3월)
2020년 3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휴안의 첫 안장 ‘PPS1′를 출시했다. “약 8일 동안 4700만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유의미한 성과였습니다. 모든 라이더가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데도 이 정도의 결과를 일으켰으니까요.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온라인 몰 등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2020년 11월, ‘볼록한 안장에 허벅지가 닿아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수렴해 안장을 평평하게 수정한 PPS2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현재 단종됐다. 2021년 PPS2의 안장코·마찰부 길이, 홀의 크기를 축소한 중·고급자용 안장 PPS3를 제작했다. “인생 안장을 찾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아요. 라이딩을 즐기는 분이었는데, 앉아도 불편하지 않은 안장을 찾기 위해 그동안 10종류가 넘는 안장을 구매해왔대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저희 제품을 구매한 뒤 정착한 거죠. 개발자이자 자전거 애호가로서 무척 뿌듯했습니다.”
2024년 상반기에는 최신형인 ‘PPS4′를 내놨다. 납작한 ‘플랫’, 두께감 있는 ‘볼륨’ 등 옵션이 두 가지인데 체형에 따라 고르면 된다. “안장 전체를 유선형으로 디자인했어요. 엉덩이에 부드럽게 밀착됩니다. 플랫은 엉덩이가 크고 살이 많은 체형, 또는 여성에게 추천해요. 볼륨은 엉덩이가 작고 살이 없는 체형이 추천합니다.”
5. 국내 시장 정착 후 아마존 진출(2021년~)
독일, 폴란드, 홍콩, 영국 등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통해 24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뒤 아마존 등에 진출했다. 올해는 일본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마쿠아케(Makuake)에서 안장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현재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한정 최저가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안장 생산 여건이 녹록지 않아서 모든 과정이 버거웠을 것 같아요.
“제품 개발, 마케팅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까지. 모두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다 관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1397′이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지원해서 현재 유명 자전거 업체 삼천리의 연구자, 농심의 마케터에게 멘토링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조언 덕분에 고충을 덜 수 있었어요. 최근에는 한 엔젤투자조합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했어요.”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좌우명이 ‘일체유심조’인데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에요. 창업하면 시련과 실패를 많이 겪게 될 텐데 그때마다 포기하지 마세요.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차근차근히 하다 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질 거예요. 저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김수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