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전문매체 Defense Mirror는 최근 인도네시아가 예상치 못한 행보를 보이며 방산 협력국을 한국에서 튀르키예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튀르키예를 방문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의 앙카라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튀르키예의 5세대 전투기 KAAN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방산협력 선언이 아닌, 현재 한국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KF-21 프로젝트의 미래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중대한 선언으로 해석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돌발적 선언 이면에는 수년간 누적된 양국 간 불신과 재정적 갈등, 그리고 기술 유출 의혹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돈, 기술, 그리고 신뢰의 문제
인도네시아는 KF-21 공동개발 프로젝트에서 초기 약속한 1.6조 원의 분담금 납부를 지속적으로 지연시켜왔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를 6,000억 원으로 대폭 삭감하는 양보안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는 여전히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2년 발생한 기술 유출 시도 사건입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허가 없이 KF-21의 핵심 기술 데이터를 무단으로 반출하려 한 시도가 적발되었고, 이로 인해 5명의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출국 금지 상태에 놓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인도네시아가 KF-21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했던 기술 이전의 수준과 속도에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국방 자립도를 높이려는 야심찬 계획 속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기술 이전을 제공할 파트너를 모색해왔을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튀르키예 KAAN 프로젝트의 매력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튀르키예의 야심찬 KAAN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프로젝트가 영국의 전폭적인 기술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KAAN 전투기는 표면적으로는 튀르키예의 국산 전투기로 홍보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영국의 방대한 항공우주 기술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전투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엔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롤스로이스 제품이 탑재되며, 기체 설계와 스텔스 기술, 레이더 시스템, 항법 장치, 무장 시스템 등 핵심 구성요소 대부분이 영국 BAE 시스템즈의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KAAN 프로젝트에서 튀르키예에 거의 전 분야에 걸친 기술 이전을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방산기업들이 일반적으로 핵심 기술에 대한 이전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접근법입니다.
영국이 이처럼 파격적인 기술 공유를 허용하는 배경에는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의도와 더불어,
중동 및 아시아 방산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장기적 포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만약 튀르키예가 KAAN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된다면, 해외 수출시 영국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KAAN 전투기는 파키스탄과 같은 이슬람 국가나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들이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데, 영국은 이들 나라에 기술 통제권을 쥐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계산법
인도네시아의 KAAN 프로젝트 참여 선언은 단순히 새로운 방산협력 모색이 아닌, 여러 층위의 전략적 계산이 담긴 행보로 보입니다.
첫째, 영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KAAN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KF-21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 이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튀르키예와의 관계 강화는 무슬림 국가로서 종교적, 문화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더 깊은 전략적 협력의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이번 선언이 한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일 수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KF-21 프로젝트에서 기술 이전 확대와 재정적 부담 경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KAAN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한국의 딜레마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복원을 위해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인도네시아가 협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대체 파트너 모색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석종근 방위사업청장은 최근 자카르타 방문에서 "양국 간 방산협력의 정상화"를 강조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두었지만, 동시에 "한국의 방위산업 기술 보호"에 대한 단호한 입장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타협과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한국 정부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아시아 방위산업 구도의 재편 가능성
인도네시아의 이번 행보는 단순히 양국 간의 문제를 넘어, 아시아 전체 방위산업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호탄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수비안토 대통령이 언급한 "글로벌 남반구의 지도자로서 새로운 글로벌 질서 창출에 책임"이라는 발언은 서구 중심의 방위산업 질서에 대한 도전 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만약 인도네시아가 실제로 KF-21에서 이탈하여 KAAN 프로젝트에 전면 합류한다면, 이는 한국의 방산 수출 전략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KF-21은 단순한 전투기 개발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상징적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아시아 방위산업에서 중동-유럽 연합과 동아시아 진영 간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튀르키예-영국-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방산 협력 축이 형성된다면, 이는 한국-호주-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기존 구도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기로에 선 아시아 방위산업의 미래
인도네시아의 이번 움직임은 아시아 방위산업이 단순한 기술 개발과 무기 판매를 넘어, 지정학적 영향력 경쟁의 새로운 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향후 KF-21과 KAAN 프로젝트의 향방은 단순히 두 전투기의 성패를 넘어, 아시아 방위산업의 미래 지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은 이제 기술 보호와 파트너십 유지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현명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현대 방위산업에서 기술 이전의 범위와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 협상 카드로 작용하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결국 KF-21과 KAAN의 경쟁은 단순한 전투기 개발 경쟁이 아닌, 아시아의 미래 방위산업 생태계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