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날씬해지는 사회…위고비 한국 출시로 짚어본 ‘비만의 경제학’[비즈니스 포커스]

2024. 10.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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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하이브 레이블즈 소속 걸그룹 캣츠아이와 촬영한 사진. 사진=방시혁 의장 인스타그램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급격한 체중감량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 화제다. 방 의장은 10월 2일 하이브 레이블즈 소속 걸그룹 ‘캣츠아이’와 찍은 사진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공개했는데 사진 속 그의 모습이 몰라보게 ‘슬림’해졌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 인기 인터넷방송인(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찍힌 유튜브 동영상 속 모습과는 딴판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방 의장의 감량비법에 대해 추측하고 나섰다. 한 다이어트 커뮤니티에선 그가 급격한 체형 변화에도 건강해 보인다는 점, 미국을 자주 방문한다는 점을 들어 비만치료제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한편 전문적인 식단 및 운동요법 또한 가능했으리라 보고 있다. 그만큼 자신에게 투자할 만한 재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BTS) 소속사로 알려진 하이브 지분을 비롯한 방 의장의 총자산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그런 가운데 10월 15일 ‘꿈의 비만약’으로 알려진 글로벌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드디어 한국에 출시됐다.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 배우 킴 카다시안이 효과를 본 약으로 알려진 만큼 시장의 관심은 높다. 의료업계에 따르면 출시 첫날부터 병의원들이 물량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국내에선 이미 ‘위고비 품귀’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병의원, 약국 대상 위고비 출시가격은 주사 1개당 37만2025원이다. 실제 소비자 가격은 병원, 약국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50만원 이상으로 이보다 대폭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 비급여 의약품인 데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고비는 펜타입 피하 주사제로 배나 허벅지에 주 1회 주사한다. 즉 진료 및 처방비용을 제외하고도 한 달(4주)에 최소 200만원 이상이 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등 해당 제품이 먼저 출시된 나라에선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이처럼 효능이 좋은 고가의 비만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외모는 물론 건강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가속화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미 저소득층 비만율이 고소득층 비만율을 크게 웃돌고 있는 상태에서 기술 발달로 인해 부자를 위한 체중감량 수단은 늘고 있다. 인류에게 점차 비만을 극복할 수단이 주어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뚱뚱→날씬’ 달라진 부의 상징

비만치료제 출시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될 정도로 비만이 문제시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 인류 대부분이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이 탄생하기 전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확보해야 했으므로 비대한 몸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웠다.

‘절약 유전자 가설’에 따르면 이처럼 수만 년간 식량이 부족한 환경에 적응했던 인간의 특징이 물질 풍요사회인 현대까지 그대로 남아 비만을 일으키고 있다. 섭취한 음식을 최대한 빠르게 체내에서 지방으로 전환하고 저장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존 스피크먼은 절약 유전자 가설에 반박하며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포식자의 위협에 쫓기지 않게 됐고 그 결과 생존한 비만 유전자가 상당수 인류에 남게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선사시대에도 인구의 집단화, 계층화가 진행되면서 살이 찐 인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풍만한 몸을 자랑할 수 있었던 이들은 소수의 특권층이었다. 2만4000년 전 구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이상적 여성, 또는 풍요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원전 7000년부터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는 ‘농업혁명’이 발생하면서 비만 인구는 점차 늘었고 의학지식이 발달한 고대문명권에선 비만이 건강에 악영향에 끼친다는 사회인식도 생겨났다. 기원전 400~500년경 고대 인도와 그리스 문명에서는 이미 비만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살찐 사람에게서 급사가 더 흔하며 임신도 더 잘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만이 사회적인 질시의 대상이 된 것은 서구사회에서 기독교가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탐식과 나태를 포함한 ‘7대 죄악(七罪宗)’을 꼽으면서 “그 자체로 죄악이며 모든 죄의 근원이 된다”고 표현했다.

인본주의가 확산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흰 피부의 풍만한 여성이 미인으로 각광 받기도 했지만 살찐 몸은 빈곤한 국민들에게 ‘탐욕스러운 특권층’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왕정을 비판하는 민중들의 삽화에선 루이 16세가 먹을 것을 밝히는 살찐 모습으로 종종 등장했는데 실제 그는 날씬하고 왜소한 체형이었다.

‘잘 먹지 못해서 마른 빈곤층’, ‘잘 먹어서 살찐 부유층’의 대비된 이미지는 20세기 들어 본격 전환되기 시작했다. 배불리 먹는 것이 특권인 시대는 과거가 됐다. 20세기 초부터 인공 질소비료가 공급되면서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유럽 국가들은 남미에서 바닷새의 배설물이 응고돼 만들어진 구아노를 질소비료로 수입해 썼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무역봉쇄로 구아노를 수입하기 어려워진 독일에서 인공으로 질소비료를 얻는 방법을 개발해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이다.


 체중의 평등, 실현 가능할까


한편 자동차, 비행기, 대형 여객선 등 빠른 이동수단이 늘면서 중상류층은 ‘바캉스’라는 휴가문화를 즐기게 됐다. 이들 계층은 해변이나 별장에서 수영, 테니스 등 스포츠와 태닝을 즐겼는데 이로 인해 갈색으로 그을린 날렵한 몸매가 중상류층을 나타내게 됐다.

이와 달리 설탕과 고과당 옥수수시럽, 인공 감미료 등 싼값에 칼로리를 축적할 수 있는 식품이 대중화하면서 저소득층은 비만에 노출됐다. 경제발전으로 인해 도시화한 사회에서 저소득 가정은 정크푸드에 노출되는 한편 자기관리에 신경 쓸 경제력, 시간이 부족하며 이는 소아비만으로도 이어진다. 이 같은 현상은 유럽과 북미 선진국에서 출발해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와 남미 신흥국으로 확산했다.

공적 기관에서 관련 통계를 발표하면서 비만이 사회문제라는 인식은 점차 자리를 잡는 분위기다. 질병관리청에서 2022년 조사한 비만유병률(체질량지수 25 이상)은 저소득층(소득수준 ‘하’)에서 40.3%인데 비해 고소득층(소득수준 ‘상’)에선 33.5%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격차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허양임 대한비만학회 이사(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는 “질 높은 단백질을 제공하는 고기와 과일, 채소 등 건강에 좋은 식품의 가격이 높아 저소득층의 식생활이 악화했고 그로 인한 비만 유병률이 높은 편”이라며 “특히 자기관리 여력이 부족한 저소득층 여성의 3단계 비만 유병률과 소아비만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3단계 비만은 BMI 35 이상의 고도비만으로 동반질환의 위험이 크다.

그러나 큰 부작용 없이 장기투여가 가능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치료제는 가격이 높다. 위고비의 선배 격인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티드)는 10만원 정도인데 매일 투여해야 하므로 오히려 비용이 높다. 국내에선 BMI 30 이상이거나 27~30 사이에서 고혈압 등 체중 관련 동반질환을 앓고 있는 성인 비만환자에게 처방되나 건강보험 비급여 약물이다. 이들 주사제를 처방받기 위한 진료비 역시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비만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전 세계 비만인구가 10억 명에 달하는 가운데 비만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에 대해 “21세기 신종 유행병”이라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적 보험이 일반적인 미국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가입한 상품 종류에 따라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영국에선 지난해 위고비가 출시되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만 자체가 개인의 건강관리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회 인식이 여전한 데다 가격이 높고 장기투여해야 하는 비만치료제 비용을 보험으로 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건강보험(SHP)은 올해 들어 신규 비만환자에 대한 비만치료제 보험 적용을 중단했다.

허양임 이사는 “비만은 사회적, 계층적 질환이 되고 있으며 동반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일부 계층이나 3단계 비만에 대해서라도 비만치료제에 보험을 적용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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